[220310] 제20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의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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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22-03-10 22:47 조회771회 댓글0건본문
제20대 대통령 선거 결과에 대한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의 논평
남성 정치가 지운, 그러나 투표로 존재 증명한 여성들
페미니스트 정치가 세상을 바꾼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결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0.73%p 차로 신승했다. 2월 마지막-3월 초 여론조사(오마이뉴스-리얼미터) 결과에서 20대 여성 중 양당 후보를 제외한 다른 선택을 한 20대 여성의 비율이 약 40%(심상정 지지, 안철수 지지, 지지하는 후보 없음, 부동층)였다. 그런데 출구조사 결과는 제3의 선택을 고민했던 20대 여성 중 상당한 비율이 이재명 후보를 선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제3의 선택을 고민했던 20대 여성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선택하게 된 데는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당대표, 하태경 의원 등이 선동해온 여성과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혐오·배재의 정치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공포와 동시에 이를 막아야겠다는 절박한 의지 때문이었다. 훨씬 더 큰 차이로 패배할 수 있었던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후보가 역대 최소 득표율차로 패배하고, 50%를 넘었던 정권교체 열망에도 불구하고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가 50%를 넘지 못하는 득표율로 당선된 데는 20대 여성들의 투표 선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동안 여성 유권자의 표심은 남성 유권자의 것보다 관심을 받지 못했으며, 제대로 해석되지 못했다. 최소한 지난 20년 동안 20대 후반(25-29)과 30대 여성은 같은 연령대 남성보다 더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19세 투표율에서도 18대 대선(2012) 때부터 여성이 남성보다 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고 20대 초반(20-24)에서도 19대 대선(2017년) 때부터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또한 최근 설문조사 결과들은 20대 여성이 동연령대 남성보다 더 진보적인 정치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주고 있다. 더욱이 20대 여성은 작년 4.7 서울 재보궐선거에서도 20대 남성과 다르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급격하게 철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안희정·오거돈·박원순으로 이어진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고,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를 일삼았으며, 2가 가해자들을 선거캠프의 중요 직책에 등용하는 등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했던 20대 여성들을 배반하는 행위를 저질러 왔다. 더 나아가 20대 남성의 표심을 얻겠다며 여성혐오로 점철된 온라인 커뮤니티를 방문해 표를 구걸하고, 페미니즘 성향이 있는 곳과는 인터뷰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후보만 20대 여성 유권자를 외면한 것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도 똑같았다.
이렇듯 남성 기득권 정치가 20대 여성 유권자를 납작하게 만들어버렸고, 없는 취급해버렸지만 20대 유권자는 모멸감과 소외와 배제를 뚫고 투표했고, 표를 통해 스스로 존재를 증명했다.
20대 여성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선택한 것은 결코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양당체제라는 정치적 구조 때문이고, 이러한 양당체제를 고착화시킨 책임은 더불어민주당에 있다.
한편, 이러한 양당체제에도 불구하고 소수정당 후보를 지지한 여성들이 있다. 특히 정의당 심상정 후보를 찍은 여성들의 표는 더 이상 양당체제를 이용해 여성 유권자의 표를 협박하지 말라는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경고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소수정당 후보의 완주 때문에 낙선한 것이 아니라 원래 낙선할 운명이었고, 그나마 최소격차로 낙선하게 만들어준 것이 여성 유권자들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번 대선의 여성 유권자의 표심을 더불어민주당이 제대로 이해한다면, 더불어민주당이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페미니스트 정치, 성평등 정치를 앞당기는 데 앞장서는 것이다. 무엇보다 당장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가동시켜 지난 총선(2020년)을 앞두고 개악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지난 30년 동안 새로운 정당과 정치인이 성장하는 것을 막는 구질서의 양당체제를 해체하는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더불어 남성 중심의 정당구조를 성평등 관점에서 전면 개혁해야 한다. 여성의 표를 모으기 위한 수단이나 상징적 존재로 여성을 앞에 내세우는 행태에서 벗어나 여성이 실질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당내 의사결정 조직에 여성들을 과반 이상 배치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권력형 성범죄를 비호했던 의원들과 정치인들이 더 이상 공직을 맡지 못하도록 조취를 취해야 한다.
또한 계속 ‘나중’으로 미뤘던 차별금지법을 당장 제정하고,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포함해 101명이 동의했던 ‘성평등 국회 실현을 위한 실천 결의안’을 통과시켜야 한다. 국회에 쌓여있는 산적한 인권 과제와 개혁 의제들을 책임지고 처리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당, 진보당 등이 반페미니즘 흐름에 편승하지 않을 수 있었던 데는 각 정당에서 오랜 시간 고군분투해온 페미니스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페미니스트들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일부 여성/페미니스트들은 차별·혐오·배제의 정치를 선동하는 정치집단을 막기 위해 더불어민주당에 표를 던졌고, 일부 여성/페미니스트들은 당내 페미니스트들의 노력과 헌신이 존중받을 수 있도록 진보정당에 표를 던졌다. 여성/페미니스트들의 표는 모두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 어떤 표도 사표가 아니며, 모두 성평등을 염원하는 표이다.
한편, ‘이대남’ 기획은 실패했다. 20대 청년남성을 ‘이대남’으로 묶을 수 없으며, 그렇게 묶이지 않는다는 것이 확인됐다. 국민의힘은 허구의 ‘이대남’을 만들어놓고 자신들이 청년을 대표하겠다고 포장했지만 모든 청년남성이 그 거짓말에 속지 않았다. ‘이대남’이라는 호명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지, 청년남성의 현실을 사실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득표를 위해 청년남성을 이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거부하는 ‘다른’ 20대 청년남성이 있고, 그 비중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도 확인됐다. 20대 남성의 40%가 윤석열을 거부했다.
당선 직후 윤석열 당선자는 “통합과 번영”, “야당과의 협치”를 수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자신이 대선 기간 동안 해왔던 선거 전략과 캠페인이 혐오와 차별에 기초해 있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이에 대해 반성하지 못한다면, 윤석열 당선자가 말하는 통합은 허울 좋은 수사일 뿐이고 기만일 뿐이다.
이번 선거는 정치교체도 시대교체도 아닌, 말 그대로 정권교체일 뿐이다. 성평등과 지속가능한 내일이라는 시대정신이 빠진, 기득권 욕망에만 충실한 선거였다. 따라서 더불어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맞이한 상황을 국민의힘도 똑같이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약 50일 후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열린다.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뽑는 선거이며, 대선만큼이나 우리의 실생활에 영향을 주는 선거이다. 지금의 여성/페미니스트 요구가 더 적극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낙담하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의 존재와 요구를 외쳐야 한다.
무엇보다 안티페미니즘에 편승한 남성정치인들 때문에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던 여성대표성 확대 논의가 시급하다. 광역의회 여성후보 30%, 기초의회 여성후보 50%(현재 광역의회 여성비율 19%, 기초의회 여성비율 30.8%), 광역과 기초 자치단체장 여성후보 30%(광역자치단체장 여성비율 0%, 기초자치단체장 여성비율 3%)를 의무 공천해야 한다. 그리고 남녀 불문 공천심사 시 성인지/성평등 관점에서 후보를 검증해야 한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은 이 과정들을 모니터링하고 사람들에게 알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소수정당 후보들의 완주와 이들이 얻은 득표율, 그리고 이들이 선거기간 동안 던진 메시지들을 기억해야 한다. 거대 양당이 말하지 않는 존재들을 호명했고, 거대 양당을 흔들어 놨다. 현재의 부정의와 타협하지 않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자 했으며, 제3지대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들 정당이 3개월 후에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더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도록 이들 정당이 내보이는 후보들에 주목하고 관심을 갖자. 그리고 더 이상 차별과 배제, 혐오와 공포를 조장하는 선거가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선택할 수 있는 선거를 만들자.
2022년 3월 10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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