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08] (논평) "도전하는 페미니스트 정치에서 승리하는 페미니스트 정치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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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21-04-08 20:25 조회1,084회 댓글0건본문
4.7 재보궐선거 논평
“도전하는 페미니스트 정치에서 승리하는 페미니스트 정치로 가자”
전임 시장의 성폭력 문제로 공석이 된 자리를 채우는 서울시장 및 부산시장 재보궐선거가 지난 4월 7일 치러졌다. 선거 결과, 서울시장에는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57.5%, 부산시장에는 국민의힘 박형준 후보가 62.67% 득표율로 당선이 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원래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성폭력 사건으로 치르게 된 선거로 시작부터 잘못된 선거였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여성 시민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 대신 ‘피해호소인’이라는 단어로 피해자의 피해를 부정했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후보자를 내지 않는 것만이 책임 있는 선택은 아니”라며 당헌을 개정하는 등 책임 없는 정치를 이어갔다. 피해자의 존재를 부정하고 정권 재창출을 위해 나선 선거에서 성평등 정책이 실종된 것은, 일련의 과정 속에 너무나 당연하게 도출될 수밖에 없던 결과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지자체장의 성폭력 사건을 통해 책임 정치를 배웠어야 했지만, ‘그래도 선거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잘못 배웠다. 더불어민주당은 2018년 안희정 성폭력 사건 이후 치러진 6.13 지방선거에서 광역자치단체장 후보를 모두 남성으로 공천했으며, 성차별‧성폭력 구조를 해체하라는 여성들의 절박한 요구를 ‘집단이기주의’나 ‘젠더갈등’으로 일축했다. 2020년에 치러진 총선에서는 지역구 여성 후보 공천 30%를 이행하지 않고 비례위성정당을 내세워 남성 중심의 양당 체제를 공고히 했으며, 180석이나 되는 거대 의석을 가지고도 차별금지법에 대한 논의를 후순위로 미뤘다.
또한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의 첫 공판을 재보궐선거 뒤로 연기하는 꼼수를 부렸고, 오거돈 전 시장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가 김영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 공동선대위원장직을 맡는 등 남성정치인의 지독한 남성연대를 보여주었다. 그 결과 국민의힘에 비해 더불어민주당이 그나마 나은 선택지라고 여겼던 유권자들은 반성과 쇄신 없는 더불어민주당을 떠나기로 선택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나아가야 할 길은 국민의힘으로 지지를 돌린 20대 남성 유권자가 아니라,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에게 표를 던진, 그리고 다른 선택을 한 20대 여성 유권자에게 응답하는 길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국민의힘이 더 나은 선택지는 아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달랐는가? 재보궐선거를 치르게 된 이유를 적극적으로 성찰하고 폭력과 차별의 문제를 시정하려 했는가? 아니다.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를 자당이 “소생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고,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성폭력 사건을 정쟁의 도구로 사용했다.
국민의힘의 시장 후보들은 제대로 된 성평등 정책을 내놓지 않았고 여성의 안전 문제를 보호주의 담론에 가둬놓았다. 서울시 성폭력 사건의 경우 채용부터 성차별적이었던, 전통적인 성역할을 수행하도록 한 성차별적 구조로부터 기인한 것이었지만 국민의힘 공약과 정책에는 이 성차별적인 구조를 어떻게 타파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성평등 실현을 어떻게 하겠냐는 정책질의에 답변을 거부함으로써 국민의힘의 태도는 분명히 드러났다. 어느 때보다도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시대에서 ‘시대착오적인 페미니즘’이라 말하는 것으로 국민의힘은 시대의 가치를 읽을 수 있는 정치적 능력도, 비전도 없음을 입증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실책으로 국민의힘이 반사이익을 누린 것은 공고해진 거대 양당 구조와 국민의힘 안철수 후보와의 후보단일화로 대안을 원하던 일부 유권자의 표를 가져갔기 때문인 것이지 국민의힘이 잘해서 당선된 것은 아니니 착각하지 말길 바란다.
‘지금’과 ‘내일’을 말하는 여성청년과 페미니스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다양한 여성 청년 후보들은 정치 영역에서 배제되어 왔던 ‘여성’, ‘청년’들의 정치적 주체성 회복을 시도했다.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권리를 이야기하며 그동안 배제되고 박탈되어온 이들을 대변했다. 재보궐선거의 의미를 이해하고 성희롱·성폭력 대책 공약을 내놓았으며, 양당 정치의 이분법적인 구조를 타파하기 위한 시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거대 양당 체제 아래서 소수정당의 자리는 마땅치 않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적대적 공생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양당 구조를 공고히 했다. 군소후보만 모아놓고 발언 시간을 n분의 1로 배당해버리는 TV토론회, 선거자금 부족으로 한 페이지로만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선거 공보물, 주요 언론 매체가 거대 양당 후보를 중심으로 보도하는 관행 속에서 소수정당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페미니즘을 내건 여성 후보들의 득표율이 합 1.78%에 지나지 않은 것은 여전히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줬다. 우리는 더 이상 페미니즘 가치를 내건 후보가 선거에 등장했다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지긋지긋한 차별과 폭력의 고리를 끊고 승리의 경험을 축적하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다.
삶의 다양한 영역에 페미니즘/성평등 관점이 일상으로 자리 잡는 것이 필요하다. 페미니즘/성평등 관점이 일상이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구성원들과의 끊임 없는 대화와 소통,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 무엇보다 그동안 정치적으로 주변화되고 차별과 억압을 받고 있는 이들의 이해와 경험을 계속해서 드러내고 이들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주체를 다양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때로는 각자 표방하는 단일 의제 정치를 하다가도, 소수 연합 정치를 통해 진보 정치의 확장성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결집되지 못한 페미니즘 정당들의 공통분모를 찾고, 함께 시대의 문제를 진단하고 운동 방법을 고려하는 것이 그 방안이 될 수 있다. 사안에 따라 연합하거나 대립할 수 있으나 각자도생이 아닌 연대와 상생이 목표임을 명확히 하고, 문제 설정을 계속해서 확장해야 한다.
4.7 재보궐선거를 지켜본 많은 여성 시민들이 깊은 분노와 좌절감을 느꼈다. ‘투표하기도, 양당을 찍기도 싫으나’ 그럼에도 나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던 여성들에게 선거결과는 좌절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좌절은 페미니스트의 선택이 아니다. 백래시는 언제나 있었고, 페미니스트들은 언제나 길을 찾았고, 새로운 길을 열었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뒤에 남겨지지 않게 페미니즘과 성평등의 깃발을 높이 들자.
2021년 4월 8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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