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대표님께

김 대표님은 이제 새누리당의 대표최고위원으로서 최장기간 경력을 보유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집권 여당의 대표를 넘어 차기 대권의 유력한 후보로 정치적 지도력을 검증받고 계신 것처럼 사료됩니다.

김 대표님은 2012년 새누리당의 대통령 선거를 총괄하고 당내 이견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 후보를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박근혜 후보의 여성성을 강조하며 “여성 대통령의 탄생이 대한민국의 실질적인 변혁이고 개혁의 상징”이라고 주장했고, “여성은 깨끗하다. 그것이 여성이 정계에 더 많이 진출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김 대표님은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 행사에 참여해 ‘양성평등 남녀동수’ 캠페인에 동참하고, “성평등은 모두를 위한 진보”라는 내용의 유엔 히포시(HeForShe) 캠페인에도 참여한 바 있으시지요.

허나 최근의 비례대표 축소 당론은 지금까지 김 대표님의 여성 친화적 행보와 절대적으로 배치되는 것이지요. 이전에 김 대표님은 2014년 11월 3일 중앙여성위원회 임명식에 참여해 “정치권은 (여성 진출이 활발한 다른 분야와 달리) 시험 쳐서 되는 게 아니고 당선될 사람을 공천해야 하기 때문에 ‘여성 공천을 (전체 의석에서) 30% 내놓아라’는 이거는 다 거짓말”이며 그러기에 “(여성 할당인) 30%를 채우기 위해선 비례대표 여성 숫자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참고로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지역구 전체 공천자 230명 가운데 16명(7.0%)만이 여성이었습니다. 더구나 새누리당이 “공천권을 국민에게” 개방하겠다고 내세우고 있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도입은 특히나 정치 신인과 여성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제도라는 조사 결과가 있는데 이를 어떻게 뒤집을 묘안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5선 의원으로서 그동안 경험한 바는 비례대표를 확대한다는 것이 정치 발전에는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을 밝히며 선거구 재획정안을 지역구 의석 확대와 비례대표 축소 당론 굳히기에 들어간 듯합니다.

저도 지금까지 다수의 사례에서 비례대표에 환멸을 느낀 바가 없지 않습니다.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친박연대 대표였던 2008년 총선 때 비례대표 후보자들에게 공천을 주는 대가로 특별당비 명목의 돈 30여억 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았지요.

비례대표의 의미를 퇴색시킨 장본인이 아직까지 집권 여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은 것도 모자라 최고위원직에 있으며, 비례대표의 색깔론과 무용론을 내세운다는 것이 참으로 뻔뻔스러운 작태입니다. 그리고 김 대표님은 비례 확대를 주장한 그 자리에서 “아기를 많이 낳는 순서대로 (여성) 비례 공천을 줘야 하지 않나 고민을 심각하게 하고 있다”며 여성 대표성에 대한 심히 위협적인 발언을 하시며 비례대표의 의미를 퇴색시킨 장본인이지요.

비례대표는 지역구 대표성을 넘어서 우리 사회의 전문적인 현안과 다양한 소수 집단의 정치적 이해를 반영하기 위해 마련된 다원적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보루입니다. 새누리당 소속의 유능한 비례대표 의원들은 한국 정치의 자산입니다. 비례대표 축소는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반역사적인 획책입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석 비율인 2대 1은 헌법적 가치에 부응합니다. 의원 정수 확대에 동의할 수 없다면 지역구 의석을 줄이십시오. 비례대표를 축소하고 지역구 의석을 지켜서 자신의 기득권을 고수하겠다는 새누리당의 집권 야욕으로 눈이 먼 선거제도 개혁은 정치 개악입니다.

성평등은 입었다 벗었다 하는 조끼가 아닙니다. 소속 당의원의 성폭행 범죄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비례대표 축소를 통한 여성과 정치적 소수자의 대표성을 약화시키는 집권 여당의 대표는 정치적 지도자로서 미래가 없습니다. 김 대표님이 악수를 두면 둘수록 박근혜 대통령을 유력한 승자로 만들었던 책임과 유승민 의원의 존재감이 더욱 커져 갈 것입니다.

비례대표 축소는 결코 좌시되지 않을 것입니다.

2015년 8월 10일

(사)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이진옥 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