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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13] (칼럼) 강모연과 진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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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6-05-14 13:59 조회2,7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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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강모연과 진선미

지리멸렬한 총선 과정에서 정치 세계의 기득권 남성 집단은 바닥을 향한 경주를 생중계했다. 비례대표 7석이 선거구 재획정 과정에서 희생되었고, 새누리당 19대 비례대표 여성의원 중 지역구에 도전한 10명은 전원 본선 진출도 실패했으며, 19대 총선에서 300여명의 오디션을 통해 청년비례로 국회에 입성하여 맹활약을 한 더불어민주당의 김광진, 장하나 의원도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 결과 20대 국회에서 새누리당 여성의원 비율은 19대 6.9%에서 6.5%로 줄었으며, 전체 의원 중 20~30대 청년은 19대 9명에서 3명으로 줄었다. 더불어 이번 총선에서 간통죄 부활과 동성애 금지 등을 외쳤던 기독자유당은 2.63%, 기독당은 0.54%의 비례대표 득표율을 기록해 지난 총선과 비교해 두 배 이상 증가했던 반면, 정의당이 얻은 7.23%에 원외인 녹색당, 민중연합당, 노동당의 몫을 모두 합해도 9%에 머물러 19대 통합진보당의 ...10.3%에도 못 미쳤다. 이러한 20대 총선의 우려스러운 결과에도 청와대와 집권 여당의 독주를 견제해냈다는 것은 큰 성과이다.

총선 직후 시청률 40%를 찍었다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태후)를 내가 집중적으로 시청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안도감 덕택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부끄럽지만 ‘태후앓이’를 한 시청자 중 한 명이다. 40대 아줌마가 ‘태후앓이’를 했다는 게 뭐 그리 부끄러운 일이겠느냐마는, 총선 평가라는 엄중한 과제를 안고 있는 단체의 대표가 페미니스트의 입맛을 맞추기에는 영 불편한 태후를 보고 ‘심쿵’했다는 욕망의 속살을 드러내기는 민망한 일이다. 허나 태양의 후예는 한편 국가주의를 재생산하지만 그것이 국가 중심적이지 않으며, 기존의 젠더 역할을 고수하지만 동시에 변화된 젠더 질서를 반영하면서, 또한 젠더 규범의 변화에 대한 여성 시청자의 욕망을 투영한다는 점에서 그리 고루하지만은 않다.

태후는 ‘총’에 의한 안보 패러다임 속에서 ‘보호하는 남성’과 ‘보호받는 여성’의 이원화된 성별 구도를 재현하며, ‘안보는 군인이 지킨다’는 군사주의적 문화를 재생산한다. 아, 사실 모든 여성이 아니라 ‘노인, 미인, 아이’에 해당하는 보호받을 여자의 자격을 취득한다. 하지만 태후가 지니는 ‘심쿵’ 포인트는 위험한 총격전에서 불사조로 살아남는 ‘그 어려운 걸 해내는’ ‘섹시한 뒤태’의 대위 유시진과 수술실에서 되게 섹시한 ‘이쁜이’ 의사 강모연이라는 고전적인 성별 역할 수행에 있지 않다. 군인이 지키고자 하는 국가는 기득권 집단의 정치적 결사체로서 국가가 아니라 일개의 국민으로 구성된 국가라며 ‘명예로운 군인’의 정신을 이야기할 때, 세월호 구조에서 책임을 방기한 해경과 강정마을에 34억 원 손해배상을 청구한 해군, 방산 비리로 점철된 국방부라는 현실 대신 대위 유시진에서 시청자들은 국가의 존재를 다시 희구했을 것이다. 또한 자기를 차버린 여자들을 스토킹하고 안 만나준다면 살해하는 남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요즘, ‘열 번 치면 안 넘어지는 나무 없다’는 ‘도끼 정신’으로 무장한 남자 대신 ‘방법이 없지 않다’며 들이댄 합의되지 않은 키스가 사과할 일인 줄 알고 사과하라면 사과하고 가라면 재빨리 사라져주는 당연한 예의를 갖춘 ‘잘 생긴’ 유시진에 여자들은 열광했을 것이다.

군인의 직업 윤리에 충실한 시종일관 멋진 유시진은 가상 세계에나 있을 법한 허구적 남성인데 반해, 교수 자리 얻으려고 지도교수 논문 작성을 해주고도 교수 임용에 퇴짜 받은 직후 복받치는 분노와 서러움의 눈물에도 대타 방송을 준비하고, 성추행한 이사장에게 당당하게 사표를 내던진 후 은행에서 대출 불가 통지를 받고 바로 이사장실로 직행해 자신의 어리석은 처사를 반성하며 다시 빡센 응급실행을 마다하지 않는 강모연은 현실 세계의 평균적 여성의 삶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이런 강모연의 굴욕은 20대 총선에 도전한 여성 후보들이 겪었던 굴욕에 비하면 양호한 것일 수 있다. 하기에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며 결혼 대신 동거로 지내온 진선미 의원이 지역구 당선을 위해 “33년 전에 만난 남자와 혼인신고를 할 만큼 절박했다”는 심정이 이해가 가고 남음이다.

원칙과 대의는 (마치 제 집인 양) 지역구 사수를 위한 포장지에 불과한 남성들의 이권투구 속에서 진선미 의원처럼 절박하게 선거에 임했던 17명의 더불어민주당 지역구 여성 당선인들의 노고 덕분에, 20대 국회는 여성 비율 증가세를 미약하나마 1.3%p 견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존재는 20대 총선을 그나마 심쿵하게 이끌었던 테러방지법에 맞선 장장 192시간의 필리버스터에서 빛났다. 성추행한 이사장은 의사 강모연을 좀 더 속물이 돼서 살아남을 전략을 궁리하게 했지만, 유시진 대위는 그녀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상기시켰다. 20대 국회에서 17%에 불과한 51명의 여성의원이 ‘심쿵’한 정치를 보이려면, 안타깝게도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의원 중 가상 세계의 유시진 코스프레라도 하는 원칙과 대의에 충실한 의원이 좀 더 많아져야 한다. 노회찬, 박주민, 금태섭, 표창원, 홍익표, 김병관, 김병기 등등의 소수 남성 의원들이 ‘그 어려운 걸 해내기’를, 더 나아가 유시진에 기대하기 어려운 성평등 정치를 실현하기를, 유시진이 없어도 히포크라테스 정신을 실천하는 강모연이 여성 의원의 대세이기를 소망하며 20대 국회의 개원을 기다린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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