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5] (논평) 지금은 입 닥치고 여성들의 절규에 귀 기울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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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20-07-15 21:15 조회1,440회 댓글0건본문
한국의 남성 정치인들에게 고함
지금은 입 닥치고 여성들의 절규에 귀 기울일 때
-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한 정치적 책임과 박원순 이후의 정치
우리는 지난 3년 동안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 세 명(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이 성범죄에 연루된 처참한 현실을 마주했다. 지방자치가 부활된 199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광역단체장 중에 여성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은 광역단체장이라는 자리가 남성 정치인들이 여성 정치인들에게 결코 뺏기고 싶은 않은 자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만큼 권한과 권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안희정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광역단체장이 되면 대권을 꿈 꿀 수 있으며, 서울시장은 광역단체장들 중에서도 대권의 꿈을 실현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막강한 권한과 권력을 가진 광역단체장들이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권한과 권력을 이용해 여성직원에게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이 현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그건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에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여성은 아직도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정치적 주체로서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여성시민들의 분노는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남성의 정치가 만들어온 성폭력적인 구조와 질서, 제도, 문화 등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따라서 이 사건들은 한 남성 정치인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이며, 이러한 구조가 만들어진 데는 소수 기득권 남성들이 정치를 지배해왔기 때문이다. 남성 정치인들은 성폭력 사건을 두고 아무말 대잔치를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동안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왔는지 성찰하고 이 사건들에 대해 어떻게 정치적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해 심사숙고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우리는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도 지키지 않는 남성 정치인들의 무례한 말들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 김부겸 전 의원, “고인이 어제 우리 곁을 떠났으니 조금 이른 질문”, “법적인 주장인지 혹은 그냥 이분들의 자기 심정을 표현한 건지 판단을 해봐야 될 것 같다.”
# 정청래 의원, “박원순 피해자 기자회견 꼭 오늘이어야 했나”
‘때 이른’ 요구는 무엇인가. 무엇이 성급하다는 것인가. 오늘이 아니면 언제여야 하나. 누구를 위한 시의적절함이며, 그 시의적절함을 왜 당신들이 판단하나.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성폭력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고 하는가. 왜 당신들에게는 성폭력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더 중요한가. 왜 당신들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의심하는가. 당신들이 갖고 있는 정치권력이 공적인 것이라면, 그 권력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들이 공적 책임감을 갖는 정치인이라면 피해자를 함부로 재단해서도 피해자의 입을 막아서도 안 될 것이다.
2018년 미투운동 이전부터 여성들은 정치에서, 직장에서, 일상에서 겪는 폭력과 차별을 끝내야 한다고 요구해왔다. 이를 위해 용기 낸 여성들에게 ‘때’는 한참 지났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여전히 목숨을 건 말하기를 해야 하고, 공개적인 말하기를 할 경우, 2차 가해가 난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오래 전에 국제규범이 된 성평등이 한국에서는 모범을 보여야 할 정치권에서도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지 못하다. 성폭력 범죄의 피해자 보호를 우선해야 하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책임이고 의무이다.
# 이동진 도봉구청장, “공적 영역이 아닌 사적 영역에 대한 평가의 문제는 저희가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업무 중에 일어난 일이 어떻게 사적 영역에 해당하는 일인가. 공적인 개인이 자신의 공적 지위를 이용한 권력형 성범죄가 어떻게 사적 영역에 해당하는 일인가.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은 여성과 남성의 불평등한 권력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가장 정치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사적인 것으로 치부해온 그 사고방식과 행태가 지금의 비극적인 사태를 만든 것이다.
# 윤준병 의원, "미투처리 모범…2차 가해 막으려 죽음으로“
지금 누가 2차 가해를 하고 있는가. 피해자의 입장문을 보기는 했는가. 서울시 행정부시장 출신이라면, 본인이 그 범죄가 일어나게 하는 구조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라. 본인이 기득권 구조에 속해 있어 피해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음을 인정해라. 피해자의 말을 두고 ‘오해 가능성’이 있다고 자만하지 마라. 가해자는 “미투 고소 진위에 대한 정치권 논란과 그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등을 방지하기 위해 죽음으로서 답한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가해자를 용서를 할 기회조차 빼앗아 간 것이다.
# 진성준 의원, “박원순 가해자 기정사실화는 사자 명예훼손”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사실을 이야기할 때 가해자들이 ‘무고죄’ 운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명예훼손을 빌미로 피해자의 입을 막으려고 하는 것 아닌가. 피해자를 가해자로 뒤집어버리고 피해자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권력이다. 성평등에 동의한다면,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서울시가 성평등 정책을 추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한때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던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책무 아닌가.
정치영역에서 성범죄 사건이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여전히 다수의 남성정치인들이 성범죄를 범죄로 인지하지 않기 때문이며, 권력을 이용해 언제든지 피해자를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실제 그렇게 권력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범죄로 징역을 살고 있는 정치인을 성범죄자가 아닌 동료로 감싸 안고 그의 정치적 건재함을 확인해주는 데 기꺼이 동참하며, 지지자들이 고소인의 신상을 색출해 2가 가해를 할 수 있도록 하며, 고소장이 접수되자마자 피고소인이 고소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며, 피해자의 고통을 무시하고 길거리마다 추모 현수막을 걸고 코로나 시국임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장례를 진행함으로써 50만 명의 청원을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것이 한국의 정치권력이다.
# 이해찬 당대표, “그건 예의가 아닙니다” … “XX자식 같으니라고”
막강한 권력의 가졌던 사람에게는 예의를 갖출 것을 강조하면서 권력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왜 예의를 갖추지 않는가.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는가. 당대표, 그것도 스스로를 진보라 자칭하는 당의 당대표가 말 한마디로 기자의 입조차 막아버리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여성 노동자들이 자신의 상관인 정치인이 가하는 성폭력에 저항할 수 있으며, 조직의 보호를 기대하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단 말인가. 선거 때만 유권자에게 고개를 숙일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피해자와 여성시민들에게 예의를 갖추라.
# 홍준표 의원, “박원순 피해자 여러 명에 채홍사 있었다는 소문도"
안희정, 오거돈, 박원순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성폭력 사건들은 이들 남성 정치인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 문제이며, 이 문제에서 야당 남성정치인들도 자유로울 수 없다. 여당에서 문제가 터지고 있다고 해서 제1야당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여당을 비난하고 공격하기 이전에 자당의 상황에 대해 살펴보길 바란다. ‘돼지발정제’ 사건이 왜 문제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고 끝까지 방어한 정당이 과연 말할 자격이 있나. 여성비하를 일삼아 온 정치인이 정치인의 말이 지닌 무게를 인지하지 못하고 ‘소문’을 떠벌리며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행태는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왜 부끄러움은 시민의 몫이어야 하는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은 그의 동료와 지지자뿐만 아니라 피해자 그리고 피해자와 연대하는 여성들에게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법적·정치적 책임만 지면 됐다. 그러나 그가 떠났기에 이 문제를 해결할 책임은 우리에게 남겨졌고, 우리의 책임은 성차별과 성폭력을 당연하게 여기는, 기득권 남성정치인들이 만들어온 남성지배의 정치구조를 성평등한 정치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가해자의 죽음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성폭력 행위에 대해 법적 판결을 받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권력은 시민의 투표로 뽑힌 (국회·광역·기초의회) 의원들과 (광역·기초) 단체장들에게 있다. 정당들은 이들이 자신들의 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며, 앞으로 권력을 잡고자 한다면, 성평등을 민주주의의 핵심가치로 인정하고, 성평등 사회를 위해 복무할 의지와 능력을 가진 인물들을 대표로 내세워야 할 것이다.
2020년 7월 15일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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