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6] (연대성명) 사법부는 신뢰를 스스로 내팽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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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20-07-07 10:20 조회1,075회 댓글0건본문
오늘 오전 10시, 서울고등법원 제20형사부 강영수, 정문경, 이재찬 판사는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한다는 판결을 냈다. 2018년 1년 6개월형을 받았던 손정우는 오늘 바로 출소했다.
범죄인인도심사청구 결정문에서 이번 재판부는, 적용법규와 그에 따른 인도범죄의 해당 여부를 살펴보았을 때 “이 사건 인도범죄는…(중략)…이 사건 조약에서 정한 인도범죄에 해당한다”고 했으며, 또한 손정우 측에서 범죄인 인도가 필요 없다고 주장한 쟁점 세 가지에 대해서도 전부 “범죄인의 주장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법부는 “범죄인을 청구국에 인도하지 않는 것은 이 사건 조약에 의하여 주어진 합리적인 재량에 따른 판단”이라며 결국 송환을 거부했다.
즉, 해당 사건은 조약 및 범죄인인도법에 따른 인도 대상 범죄에 해당하고 손정우와 그의 변호사 7인이 주장한 내용 역시 받아들일 수 없지만, ‘합리적인 재량’으로 그를 인도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강영수 판사을 비롯한 이번 재판부가 ‘합리적인 재량’을 발휘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청구국으로 범죄인을 인도함으로써 법정형이 더 높은 청구국의 형사법에 따라 범죄인을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 이 사건 조약이나 범죄인 인도법의 기본취지나 입법목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보다 근본적으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 관련 범죄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중략)…발본색원적인 수사가 필요하다…(중략)…손씨를 인도하지 않는 것이 대한민국이 아동·청소년 음란물 제작을 예방하고 억제하는 데 상당한 이익이 된다.”
우리는 사법부가 ‘손정우가 한국에 있어야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를 발본색원할 수 있다’는 문장을 진심으로 쓴 것인지 궁금하다.
첫째, 손정우는 2018년 5월 구속 송치되었으나, 그가 받은 것은 지극히 평범하고도 안일한 ‘한국식 성범죄 형량’이었으므로 국내에서는 전혀 이슈가 되지 않았다. ‘웰컴투비디오’와 손정우가 한국에서 알려진 것은 2019년 10월, 미국 법무부 공식 사이트에서 해당 사건의 조사 결과가 공시되고 외신을 통해 알려지면서부터이다. 그리고 당시 한국의 사법부와 경찰은 ‘웰컴투비디오’의 한국인 이용자 223명에게 이미 솜방망이 처벌(대부분 150만~1000만원의 벌금형, 대량 이용자 두 명에게 집행유예 선고)을 내린 상태였다. 사실 손정우가 구속될 수 있었던 것도 미국 워싱턴 DC 연방 법원 소속 판사가 구속 영장을 발부했기 때문이었다. 이러고도 한국 사법부가 아동청소년 성착취 근절 의지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가?
둘째, ‘웰컴투비디오' 건은 성범죄 혐의로는 판결과 형이 이미 다 끝난 사건이다. 일사부재리와 이중처벌 금지의 원칙이 있으므로, 해당 사건은 다시 판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오늘 출소한 손정우는 이제 이번 사건에 대해 완벽히 자유롭다. 이런 상황에서 수사 지장이니 범죄 예방이니를 늘어놓는 궤변이 과연 사법부의 수준인가?
이런 맥락에서, 전 세계 피해 아동과 이 판결에 영향을 받을 사람들의 인권을 염려하는 내용은 손정우를 한국에 남겨두겠다는 주장과 도무지 병립할 수 없다. 해당 결정문은 차라리 ‘한국의 사법부가 못하는 단죄를 미국 사법부가 한다’는 불명예를 피하기 위한 사법부의 견강부회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손정우는 2년 넘게 4개국이 공조하고 32개국이 협조하여 겨우 검거한 범죄자이다. 심지어 기존의 아청법으로도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적용했다면 국내 현행법으로 최대 무기징역까지도 가능한 인물이었다. 그런 자에게 2년을 구형한 검찰이나 1년 6개월을 선고한 법원은 모두 피해자들을 적극적으로 우롱했다.
기실 한국 사법부의 이러한 행태는 한두 번이 아니었고, 운이 없게도 이번에는 하필 국제 기준을 갖다 댈만한 사건이어서 망신을 샀다고 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시민은 국가가 판결을 통해 사회에 던지는 공적 메세지를 수신한다. 지금까지 국가는 성범죄와 여성 대상 범죄를 저지른 남성들에게 한없이 관대하고 따사로웠다.
사법부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가해자 등의 신상을 전시하며 ‘이 사이트의 서버는 해외에 있으니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쓰라'고 공지한 ‘디지털 교도소’ 등을 보고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가? 여성들은 법과 제도가 자신을 지켜주리라는 기대를 버린 지 오래되었다. 한국의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는 이미 붕괴되었고 사적 보복에 대한 열망과 무기력만이 넘실대고 있다. 이 불신은 전부 사법부가 만든 것이다. 그러고도 사법부가 자국의 사법 시스템에 자신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게 뻔뻔하다.
판결권이 보호받는 이유는 이따위 판결을 내놓고도 판사가 책임을 회피하고 변명이나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법의 권위는 신뢰에서 나온다. 사법부는 자신의 권위를 스스로 땅바닥에 내던졌다.
신뢰를 내팽개친 사법부를 시민들은, 여자들은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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