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격인터뷰] 시운 인턴활동가님, 고생 많았어요! (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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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7-09-01 11:51 조회1,850회 댓글0건본문
여세연 사무국장 혜만입니다. :) 그간 여세연에는 많은 인턴 분들이 와주셨습니다. 덕분에 여세연도 성장하고 넘치는 에너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8월 31일은 여세연에서 "최고의 보람이네여"를 외치며 활동해준 시운 인턴활동가의 마지막 출근일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남성 인턴이기에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도 '왜 여세연에?' 하는 물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런 우려를 모두 날려줄 정도로 시운씨는 두 달의 시간 동안 너무나 잘해주었고, 오히려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장난삼아 놀리기 좋은 사람이라며 시운씨를 설명했었는데 그만큼 상대를 편하게 하는 능력은 아무나 가진 것이 아니기에, 너무 감사했어요. 인턴 기간은 끝났지만 여세연 회원으로 가입해, 영화 소모임을 이끌어주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ㅎㅎ 탁현민 퇴출을 외치며 시작되었던 시운씨의 인턴 활동. 그 후기를 들어보았습니다. :)
◆ 여세연이란 단체에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안녕하세요. 저는 여세연에서 7월과 8월, 여름 동안 근무 했던 인턴활동가 김시운이라고 합니다. 여세연은 서강대학교 현장실습 프로그램을 통해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제대 이후, 인권, 정치운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는데 적절한 기회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중에 모집 공고를 보고 여세연에 관심이 생겼어요. 여세연은 정치와 페미니즘, 두 분야에서 쌓인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논쟁이 있고, 사람마다 생각하는 바는 다르겠지만 여성, 소수자, 약자들의 인권 운동은 결국 현실적인 차원에서 법, 제도, 정치의 영역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페미니즘과 정치가 결합되어있는 여세연의 특수성이 저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여세연이 남성중심적인 정치 구조에 비판을 가하고, 성평등한 정치 시스템을 만들자고 주장해온 활동 방향에 너무 공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활동이 끝난 현재, 이번 방학은 정말 후회 없이 보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ㅎㅎㅎㅎ
◆ 여세연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여세연에서의 제 활동은 탁현민으로 시작해 탁현민으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다보니 아무래도 탁현민 퇴출 기자회견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 출근한 날부터 기자회견 준비에 정신이 없었어요. 또 얼떨결에 기자회견문 낭독을 하게 되서 부담스럽기도 하고, 누를 끼칠까봐 걱정이 됐습니다. 근데 결과적으로 기자회견은 잘 마무리되었고(물론 탁씨는 여전히 청와대에 있지만), 생각했던 것 보다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이전의 저는 그렇게 나서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엄청나게 어렵고 대단한 일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자회견 이후 뭔가 나를 가로막던 거대한 장벽이 깨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누구나 의지만 가지고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구나. 언제까지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직접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구나.’하는 그런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보니 비가 지저분하게 내렸던 그 날의 날씨부터 젖은 청바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서 했던 생각들 하나하나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요.
또 탁현민 논란을 총망라해보는 기사를 썼던 것이 너무 생생하게 기억에 남네요. 사실 저번 주에 기사가 나간 거라 기억이 안 남는 것이 더 이상하겠지만ㅎㅎㅎㅎ 기자회견이 마무리가 되고, 대표님이 여세연이 주도했던 탁현민 퇴출 운동의 마무리 차원에서 총정리 기사를 써보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해주셔서, 약 6주간 기사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재밌겠다는 생각만 막연히 했지만 직접 네이버에 쏟아지는 기사들을 엑셀로 정리하고, 나름대로 분석해보는 과정에서 여러 난관에 봉착하자 정말 울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혜민쌤, 연주쌤이 계속 용기를 북돋아주시고, 대표단 선생님들도 너무 열심히 피드백을 해주셔서 결국 기사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후원금을 보내주신 분도 계시고, 기사를 읽은 주변 사람들도 다 수고했다고, 칭찬하는 말들을 많이 해줘서 참 보람찼습니다. 물론 페이스북 댓글을 읽고 슬픈 마음에 술을 마시긴 했지만 말이죠.
아무튼 이제 탁현민 사진만 봐도 경기를 일으킬 것 같네요. 대한민국에서 저보다 탁현민 사진을 많이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하도 얼굴을 많이 보다보니 미운정이 들었는지 최근 급격히 수척해진 그의 얼굴이 신경 쓰이긴 합니다. 청와대 일이 많이 힘들 텐데 건강 챙기려면 하루라도 빨리 나오는 게 본인한테도 좋을 텐데요. 탁현민이 자진사퇴하는 날에 여세연 사무국은 잔치를 하도록 하죠.
◆ 남성이 여성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의 의미는? 사회적 효과가 있다면?
여세연에 근무한다는 얘기를 하자 주변 남자사람들의 반응은 비슷했습니다. ‘너는 그래도 남자인데, 왜 굳이 여성단체에서 일을 하는 것이냐’하는 식으로 말이죠. 저는 ‘페미니즘이 민주주의를 완성시킨다’라는 말에 너무 공감을 하고, 그 가치를 위해서라면 본인의 성별과는 상관없이 함께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성과 여성을 흑백논리로 나누어 페미니즘에 접근하는 것은 결국 여성운동이 나아갈 수 있는 다양한 길들을 축소시키는 거죠. 너는 남성이니까 남성편이고, 그래서 여성혐오 이슈가 촉발될 때 굳이 나서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은 그 의도가 무엇이든지간에 민주주의의 후퇴에 일조하는 것입니다. 본인이 여성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다양한 맥락에서 기득권으로부터 배제된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므로, 이러한 억압과 배제를 함께 타파하자는 목소리를 남성vs여성의 이분법적인 구도로 해석하는 것은 지능과 공감능력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사회구조와 분위기가 더 근본적인 문제겠죠. 또한 여성단체 내부에서도 여성주의적 관점을 가진 남성의 목소리를 배제하지 않고, 함께 소통하며 다양한 생각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남성들도 여성단체에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다’라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하면 페미니즘이 여성의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라 오해하는 왜곡된 사회적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개선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큰 소망을 가져보았습니다.
◆ 한국 남성들은 변화할 수 있을까?
저 역시 20, 21살에는 인권감수성이 낮은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부족하지만, 그때는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렇게 무지했을까’싶을 정도로 끔찍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바뀔 수 있었던 공간은 군대였습니다. 군대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며 마초적인 집단인데, 역설적이게도 그 속에서 보낸 2년을 통해 저는 인권의식과 페미니즘에 눈 뜨기 시작했습니다. 인권유린과 여성혐오가 일상적인 군대 속에서 살아가다보면 ‘생존을 위한 적응’을 위해 그것들을 따라하고, 체화하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 머리에 빨간 불이 들어오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옳지 않은 것이다. 군대문화가 이렇고, 구조와 분위기가 이렇다는 이유로 내가 하는 언행들이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지금에야 생각해보니 저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군대를 통해 약자에 대한 폭력, 차별, 인권 유린을 직접적으로 경험해본 것입니다. 군대라는 조직에서 사병은 최말단의 약자이니까요. 물론 탈출이 담보된 시한부의 ‘약자 체험’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제가 그렇게 현장에서의 폭력과 혐오를 생생하게 겪어보지 않았다면 저 역시 변화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 사람은 약자로서 위치되어본 경험, 그로부터 겪은 생생한 분노, 무력감, 상실감을 통해 공감 능력을 키워나가고, 그것을 바탕으로 서로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사회 대다수의 군필 남성들은 군대에서 배워온 마초문화, 권위주의, 여성혐오의 논리를 사회에 나가서 적극적으로 재생산합니다. 뿌리 깊은 남성문화를 이미 체화한 이들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약자에 대한 폭력이 정당화되는 분위기를 후대에 물려주는 거죠. 왜냐하면 본인은 이미 군대에서 차별과 폭력을 ‘아무 탈 없이’ 감내했으니까, 문제가 있더라도 내가 당해본 결과 그냥 시끄럽게 떠들 필요 없이 참으면 된다는 겁니다. 아니, 그 이전에 여성혐오 문제에 대해서 남성들은 그것이 문제라는 것조차 인식을 하지 못하는 현실이 솔직히 암담하기까지 합니다. 성차별적 사회를 살아가는 한국 남성들은 성별의 영역에서 ‘남성’이라는 성별이 본인의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인정하지 못합니다. 성별 구도에서 약자로서 겪어본 배제감, 억압의 경험이 전무하다보니 오히려 ‘남자가 역차별 받는다.’라는 어처구니없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나 항상 당사자인 사람만이 약자의 목소리에 공감할 수 있고, 응원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앞에서는 당사자로서의 직접적인 경험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당사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권은 시혜적인 것이 아니라 당연하게 지켜져야 하는 진리이다’라는 식의 명제가 상식처럼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는 전체적으로 타인의 고통에 쉽게 공감하지 않는 한국의 현재 분위기와도 연결되어 있고, 인권 교육이 아예 배제된 교육과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실 한국 남성들이 변할 수 있을까?하는 것에 낙관적인 대답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메갈리아와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확실히 분위기가 변해가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제 주변의 남자 친구들만 봐도 그대로인 사람도 있지만 먼저 관심을 가지고, 저에게 질문해오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점차 변해갔으면 좋겠고, 제가 거기에 일조했으면 하는 소망을 조심스럽게 가져봅니다....ㅎㅎㅎㅎㅎㅎㅎ
◆ 여세연에서의 경험을 향후 어떻게 활용하고 싶은지?
일단 머리로 막연하게 생각해오던 것들을 실제 현장에서, 저와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경험을 통해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막연한 느낌에 불과했던 것들이 더 확실하게 각인이 된 것 같아 여세연에서 근무했던 경험은 앞으로도 든든한 지원군처럼 남을 것 같습니다. 여세연 사무국과 대표단 선생님들과도 계속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 도움을 주는 사이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사실 모르겠지만ㅎㅎㅎㅎ 그리고 조그마한 행사를 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실무자들의 보이지 않는 피땀 어린 노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 여세연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
계속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학교를 다녀야겠죠. 학업과 동시에 하고 있는 대외활동도 있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할 수 있다면 정당 활동도 열심히 해보고 싶습니다.
사무국장님과 대표단 선생님들 그리고 함께 인턴을 했던 연주씨의 도움이 없었다면 제 방학이 이만큼 풍요롭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알게 모르게 많이 배려해 주신 것 같아 항상 감사하게 생각했는데 부끄러워서 직접 말하지는 못하겠네요. 아무튼 정말 감사했고, 앞으로도 같이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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