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15] “변화를 만드는 우리, 여성단체 활동가 역량강화 캠프”에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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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9-06-07 13:03 조회1,357회 댓글0건본문
“변화를 만드는 우리, 여성단체 활동가 역량강화 캠프(이하 캠프)”에 다녀왔습니다.
이 캠프는 지난 5월 15일부터 17일까지 2박 3일동안, 다른 지역과 영역의 여성단체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고민을 나누고, 활동의 비전을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3년차 이하 여성단체 활동가를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글로벌 젠더 규범, 한국여성운동사 등의 강의와 함께 진행되었는데요. 이 후기에서는 ‘활동가’로서의 고민을 중점으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나는 ‘활동가’인가에 대한 물음 - 과거, 현재, 미래
2017년 7월,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의 청년젠더활동가 프로그램으로 약 3개월 동안 여세연에서 인턴 활동하고, 주1회 근무하는 비상근활동가로 전환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여세연 안팎으로 ‘활동가’로서 나를 소개하긴 하였으나, ‘비상근’이라는 근무형태는 직업으로서 활동가라고 이야기하기엔 어딘가 멋쩍은 부분이 있었다. 올해 상근으로 전환되면서 이러한 나의 고민들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 생각했으나, 이 활동가의 세계 속에서 나의 방향과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되묻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싫지만 해야 하는 것, 잘하고 싶은 것. 그리고 나의 과거, 현재, 미래. 활동가로서의 경력은 하루 하루 쌓였지만 나를 ‘n년차 활동가’라고 이야기하기엔, 그 n년의 시간으로는 규정할 수 없는 나의 경력과 고민들. 가족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정확히 뭘 하는지 모르지만 정치 또는 사회운동 하는” 나의 현재와 나의 비전을 어떤 언어로 구성할 수 있을지. 이러한 고민들을 잔뜩 안고 있던 와중, 캠프가 내가 나고 자란 곳인 제주도에서 진행된다 하니, 마음이 복잡했다.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나의 과거(고향, 제주)로 돌아가는 그 길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던 고민을 마주하게 만들었다.
나를 알기, 활동가인 ‘나’는 누구인가? LCSI 성격검사로 보는 활동가인 ‘나’
성격 검사에 앞서, 캠프에 참가한 활동가들에게 자기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기소개. 웬만한 발표를 할 때도 긴장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벌벌 떠는 시간. 내가 모르는 이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마다, 나도 모르는 나를 제한된 단어로 묘사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발가벗겨진 기분이 든다. 아마도, 나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지 않을까.
“고집스럽다.” 내가 꼽은 나를 설명하는 서술어였다. 사주에 흙()이 많아 굉장히 고집이 세다는데, 이게 한편으로는 흙이 모여 산이 되는 것처럼 누군가에겐 듬직한 존재일 수도 있단다. 활동가로서 나는 어떤 고집(페미니즘과 같은)을 갖고 주장하고 일을 해나가는 한편, 여성단체에서 일하는 나에게 내 주변 사람들이 기대하고 의존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모두 고집스러운 존재이고, 이 성질이 활동을 이어나가게 해주는 요소가 아닐까. 라고 자기소개를 마무리하였다.
LCSI 성격 검사 결과는 간략하게 다음과 같았다.
응답일관성 : 성실응답(-) >> 마음이 혼란스러운 상태이거나 주변환경이 혼잡한 경우
긍정왜곡 : 자기방어낮음 >>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일 가능성이 높음
사교성 4.6% (“내면의 스트레스나 긴장을 잘 해소하지 못하여 신체적 이상 징후가 나타날 수도 있다.”),
신중성 13.8% (“대인관계에서 경험하는 부적절한 감정으로 인해 자기 관리에 어려움을 느낀다.”),
안정성 21.5% (“성격왜곡이나 외부 스트레스로 인해 효율저하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감정이 예민한 상태이고 사소한 것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다. 대인관계에서 느끼는 심리적 긴장으로 인해 신체적 불편증세 등이 있을 수 있다.”)
그 결과 캐릭터 예측 불가.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지 못한 상태라고.
활동가로서의 ‘나’를 객관적으로 알아보고자 했던 시간이었으나, 지난 몇 개월 동안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차곡차곡 쌓여갔던 내면의 스트레스를 객관적으로 보여줄 뿐이었다. 활동가 이전의 나를 잘 챙겨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페미니스트 활동가로서의 삶과 나 개인의 삶을 딱 분절시킬 수는 없다. 일상에서의 차별과 폭력을 경험했고, 그로 인해 활동가가 되기를 결심했기 때문에, 활동가로서의 의제와 내 삶의 의제는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서 퇴근을 해도, 주말이라도, 휴가를 가더라도, 끊임없이 일을 하는 것같은 기분은 모든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느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 활동가들은, 특히나 나처럼 스트레스에 취약한 활동가들은, 자신을 더 행복하게 돌보는데 몰두해야 한다고 느꼈다. 건강해질거고, 행복해질거다!
성평등한 조직문화, 누가 만들어주면 좋겠는데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니까
시민단체 영역에 들어와서 다른 신입 또는 저연차 활동가를 만나다보면 조직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열정을 갖고 들어갔던 그 곳은 열정 페이를 강요하는 곳이고, 권력과 싸운다는 그 곳은 정치적이어야 하는 곳이고. 각자 갖고 있는 고민들은 다르지만 비슷했다. 그래서 조직문화와 관련한 워크숍 프로그램에 갖는 기대가 컸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서 프로그램을 마련해주셨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지난 몇 년간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 해결하고 다른 단체에도 그러한 노력을 공유하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누가 만들어주면 좋겠는데 누가 만들어주는게 아니니까 우리가 직접 만들자는 그 취지에는 다들 동감할지 몰라도, 직접 부딪히고 만들어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고난의 연속일거다. 생각보다 너무 별로인 ‘나’를 마주해야하고, 내가 괜찮다 여겼던 언행들이 누군가에게 불편함이자 폭력일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드려야하고, 성격의 차이인지, 무례함인건지, 구분하기가 어려워지는 지점에서 평등한 자세로 토론을 해야하고. 엄청난 일이지만 그것을 시작할 수 있게 워크북을 만들어 변화의 시작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데 있어서, 아주 멋진 작업이라 생각한다.
다만, 당일 내가 참여한 프로그램은 3년차 이하 경력의 활동가들만 있었기 때문에, 이것을 우리끼리 한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개별 조직의 문화를 이야기하는데, 마치 성토대회 같았다. 사례를 역할극으로 재구성하여 문제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보여주는 시간을 가졌는데, 대부분의 조에서 똑부러지게 문제를 제기하고 갈등을 해결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무슨 마음인지는 잘 알겠지만, 평등하지 못한 조직 속에서 저연차 활동가가 문제 제기를 하는 것부터 어려울텐데-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활동가가 원하는 모습의 조직을 ‘우리’가 문제의식을 갖는다해서 바뀔까. 대표단과 사무처를 포함한 모두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이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있었고, 그래서 다음에 이런 자리가 한번 더 마련되었으면 했다.
이 캠프를 통해 활동가로서의 복잡한 마음은 풀리지 않았지만, 많은 활동가들을 만나 각자의 생각과 고민을 공유하면서, 나만 하는 외로운 고민은 아님을 알았다. 활동가로서의 경험과 생각을 구체적으로 언어화할 필요가 있고, 그것을 통해 나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잘 돌봐야겠구나 싶었다. 행복한 활동가, 누가 만들어주는게 아니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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