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25] "남녀동수제"(제9회 맑스코뮤날레) 세션이 개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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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9-05-29 11:57 조회1,473회 댓글0건본문
지난주 토요일(5월 25일), 서강대학교 정하상관에서 맑스 꼬뮤날레 〈남녀동수〉세션이 진행되었습니다. 〈남녀동수〉세션은 여성문화이론연구소와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의 공동주관으로 진행되었고, 남녀동수의 철학적, 정치적 논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여성정치연구소의 김은주 소장님은 “남녀동수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초”라는 발제문을 통해 헌법을 통해 동수정신을 담지 않고 하위법에서만 명시할 경우 위헌의 소지가 생길 수 있으니 헌법에서 남녀동수를 명시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멕시코의 사례를 들어, 멕시코 상원과 하원에서 동수에 가까운 여성대표성을 확보했는데 이는 2013년 헌법 개정을 통해 실현이 가능했으며,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명문화한데 의미가 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더불어 남녀동수는 정체성의 정치를 이야기하는게 아니라 권력의 공유를 이야기하는 것이라 지적했는데요. 동수를 통해 대표되는 여성은 어떤 여성인가. 여성이 여성을 대변하지 않는 여성을 50퍼센트 넘는게 무슨 의미일까. 여성대표성 확대가 여성이익을 대변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것을 말하지 않고 하지 않는다해서 비판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며, 동수가 가진 페미니즘 철학의 몇가지 문제들을 이야기했습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의 이진옥 대표님은 “남성지배 해체의 기획, 동수”라는 발제문을 통해 정치가 작동하는 여러 가지 법적인 맥락을 삭제한 상황에서 동수가 문제적이고 성소수자 배제적이라는 것은 인식론 문제이고 현실 정치판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동수가 할당제보다 진취적 가치가 있다고 하면 할당제는 적극적 조치로서 사회적 약자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동수는 인구구성에 있어 여성이 남성보다 많고, 여러 가지 측면에 있어 어떤 것이 좋은 대표성인가. 다양한 여성의 이해관계라는 것을 여성으로 묶는게 아니라 이것은 기본적 권리임을 지적했습니다. 여성이 대표를 해야한다고 하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이 성소수자, 청년, 장애 등의 대표성인데요. 이는 여성과 대비되는 것이 아니고, 여성은 홀로 대표되지 않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여성-노동. 여성-청년. 여성-장애. 교차적 범주를 생각해야하고, 남성은 그냥 남성이면 됨을 지적했습니다. 여성이 누구냐 질문하는 순간 다양한, 여태까지 정치적으로 저대표되었던 집단에서, 덧셈의 정치지 뺄셈의 정치가 아니며, 대표의 다양성과 풍부함을 가져다주지 여성이 다른 집단을 배제하는 것은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유서연 선생님은 “프랑스 남녀동수 이론과 운동의 역사와 실제”라는 제목으로 프랑스 사례를 이야기했습니다. 1992년에 “여성시민들에게 권력”을 이라는 책을 내는데 남녀동수에 대한 초기 이론을 제공하였고, 남녀동수라는 부제를 붙임으로서 완전한 보편을 추구한 책입니다. 좌파인 사회당 총수인 조스펜이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두 가지 법을 통과시키는데. 남녀동수법(빠리떼), 시민협약(결혼하지 않아도 법제화할 수 있는)이 그것입니다. 근데 동거는 인정하는데 동성애자들의 출산, 결혼을 인정하지 않아서 문제였고, 이것은 이성애적인 거라고 하면서 얘기되면서 보수화가 됩니다. 초기 남녀동수이론 힘을 잃고 아가젠스키의 이론이 힘을 받게 됩니다. 아가젠스키는 본질주의 페미니즘적인 글을 썼고 이는 아가젠스키의 “성의 정치-남녀동수의회 구성의 논리”라는 책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서연 선생님은 동수 논의가 철학적인 담론 속에서 나오게 되는데 철학적인 담론과 정치적인 담론은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이것이 보수적 본질주의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연구위원인 김은희 선생님은 “한국에 온 ‘남녀동수(Parité)’: 페미니스트정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여성정치세력화운동에서 할당제의 대안으로서 제시된 남녀동수가 갖고 있는 한계점들을 지적했습니다. 보수적 여성단체에서 남녀동수와 양성평등을 이야기하고, 진보에서는 성평등을 이야기하며 뒤섞이고 혼재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 필요한 것은 정체된 정치세력화운동이 전환되는 국면이라는 것입니다. 페미니즘이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여전히 정체되어있는 정치세력화운동을 돌파해야하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니까” 50대 50이라는 남녀동수에서 보편 성차라고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것이 어려움을 지적했습니다. 할당제가 갖고 있는 한계는 같이 극복하면서 추가적으로 논쟁적인 지점을 동수도 갖고 있기 때문에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김남이 선생님은 토론에서 한국에서 진행되는 남녀동수제에 관한 담론지형을 보면 아가젠스키 식의 본질주의적 왜곡을 경계하면서 추상적이면서 동시에 성적인 개인이라는 남녀동수의 공화주의적 보편주의에 기댄 초기 이론가들의 논의에 더 호의적인 것 같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는 페미니즘의 중요한 축들 중 하나인 퀴어 문제에 대해 아가젠스키는 그렇다 할 만한 대답을 하지 못할뿐만 아니라 그녀는 오히려 성차를 남성과 여성의 상보성의 차원으로 설명함으로써 수십 년간의 페미니즘 담론을 후퇴시키고 기존의 성별 규범을 재생산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그런 이유로 한국에서 남녀동수는 초기 이론에 더 주목하려는 경향에도 동조한다고 말합니다. 초기 남녀동수론의 철학적 논쟁은 실질적 사회정의나 평등 논쟁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으며 마차간가지로 초기 이론이 겪은 왜곡과 수정에 대한 우려로 남녀동수제의 본질주의적 흐름을 경계하면서 정치외적 담론에서 사용하지 말자고 장 보겔은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치 외적 담론에서 남녀동수론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같은 논리로 경제, 사회, 문화에서의 재현 혹은 대표의 성불균형 현상을 문제삼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고 지적합니다.(남녀동수의 초기 이론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기술적 대표성이었지 실질적이고 사회적인 대표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정치적 대표성과 실질적/사회적 대표성을 이원화해야 한다는 주장인지, 그리고/혹은 그것이 정말로 가능한 것인지,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래서 정치적 대표성을 기술적 대표성에 국한한다면 우리는 정치라는 개념의 정의를 다시 써야하는 것은 아닌지를 지적했습니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의 권수현 부대표님은 오늘을 끝으로 프랑스 동수의 사례에 대한 얘기는 넘어서야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말하며, 프랑스에서 말한 빠리떼parite 자체를 한국에 적용할 수 없을 때, 빠리떼의 어떤 개념을 어떻게 담을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철학적 기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한국 맥락에서 사상적, 철학적 맥락 갖는 것 중요한데 이제 그 이야기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철학과 정치를 분리하는 것은 위험한 부분이 있지 않나 싶은데, 정치/민주주의가 철학적 기반 하에서 존재하는데 이를 어떻게 분리시켜서 운동을 하고 존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며, 한국의 정치체제 관련해 철학적, 사상적 기반이 없음을 지적했습니다. 지금까지 외국에서 수입된 여러 이론을 활용한다고 할 때, 할당제, 동수 개념이 한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철학적 기반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보며, 이 자리 이후의 자리가 그런 자리였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동수를 얘기하거나 양성평등을 말하고 성평등을 말하든 저는 여성을 이런 이야기를 할 때, 남성과 여성 이야기할 때, 성소수자를 배제하는 것이라는 거에 대해서 왜 여성이 여성을 호명할 때, 왜 이성애 여성으로만 상상되는지, 왜 그렇게 얘기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지적 또한 하였습니다.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서의 다양성이 있을 수 있고 계급도 다양할 수 있고. 수많은 여성들의 집합이 있는데 마치 여성을 호명하거나 여성과 남성의 평등, 양성평등 이런 걸 얘기할 때, 그 여성을 성별정체성, 등을 기준으로만 해서 이성애 여성만을 챙기는 것으로 얘기하는 것이 오히려 지금 한국사회를 성별이분법으로 보고 있는 인식에 기초해서 양성평등, 동수를 바라보는 것 아닌가. 여성이 호명되는 건 상징적인 측면있다고 본다고 말하며, 그간 이성애 남성이 독점해온 정치, 사회가 배제해온 이들을 상징적으로 호명한다고 보고. 여성이라는 호명에 대해 다양한 상상을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는 이야기로 마무리하였습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박선영 선생님은 미투, 혜화역 시위 이후 한국사회에서 정치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를 질문하며 미투는 권력에서의 불평등, 비대치성이 근본적인 원인이 작용한 것이라고 보고 여성의 균등한 참여, 이런 것이 굉장히 중요한 방향으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법률정책을 다루는 사람이어서 몇 개 법안들 보곤 하는데. 1) 법과 현실과의 관계. 2) 법이 특정 대상으로 대상으로 볼 때, 가져오는 정형성. 이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보여진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경단법을 제정했던 당시에 여성노동시장의 상황에서 여성의 경력단절이라는 건 노동시장을 이탈하는 문제가 개인적인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였고, 경력단절을 개인의 것으로 보았을 때 성차별적인 조직, 성차별적인 구조, 미래가 보이지 않는 노동시장의 문제가 사장되어버린 효과를 낳았다고 지적합니다. 이 문제가 법이 대상을 설정할 때의 문제이며, 이 예를 든 건 입법지형이라고 하는 게 늘 변화하고 그 안에서 이 프레임이 만들어지고 바꿔내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동반한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여성의 정치참여는 거의 입법투쟁의 영역이어서 쉬운 영역 아님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렇다면 권력의 재배치성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요. 현재 한국사회에서 촛불 이후 많이 바뀌고 신자유주의적인 주체들이 나오며 공정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걸 어떻게 정책의 프레임으로 가져갈 것인가. 능력주의가 공정성 만나서 시너지 효과 내고 있는데 동수라는, 이게 할당제랑 뭐가 다르고 어떤 차별성을 갖는 프레임이고 어떤 법제도적으로 할 것인가 고민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대상이 갖는 정형화의 문제. 여성의 정치참여 문화 바꾸는 제반환경이 투 트랙으로 같이 가야함을 이야기했습니다.
당일 발표와 토론을 통해 한국에서의 남녀동수의 논의는 이제 시작이고, 정치철학이 부재한 한국 상황에서 어떻게 한국식 동수민주주의를 실현시키고 진전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많이 들기도 했습니다. 역차별 주장과 같은 백래시로인해 여성 대표성 확대 논의의가 후퇴되는 이 시점에 2020 총선과 더불어 앞으로 운동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같이 들었어요.
남녀동수 세션에서의 발표문은〈여/성이론 40호〉에 실렸으니, 동수논의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여/성이론 40호〉를 참고해주세요!
남성지배 해체의 기획, 동수 / 이진옥
남녀동수 민주주의의 철학적 기초 / 김은주
한국에 온 ‘남녀동수(Parité)’: 페미니스트정치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 김은희
프랑스 남녀동수이론과 운동의 역사와 실제 / 유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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