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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27] (여성신문) [여성운동 30년, 용기와 연대의 기록] ⑩ 여성 세력화 30년, 민주주의 과정의 갈등과 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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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7-12-14 15:43 조회2,8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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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운동 30년, 용기와 연대의 기록] ⑩ 여성 세력화 30년, 민주주의 과정의 갈등과 분투
 
입력 2017-11-27 13:14:42 | 수정 2017-11-29 오후 6: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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례대표 여성할당·
남녀교호순번제 등
제도화 성과 이뤘으나

여성정치 주변화로
희망과 우려 교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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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9월 ‘제20대 총선 여성 국회의원 30% 실현을 위한 여성공동행동’이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한 정치개혁 방안 발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치적 목소리를 드러내다

피 흘린 여성 참정권 운동의 역사 이후에도 페미니즘 정치는 역설적 공간에 발 딛고 있다. 이 공간은 여전히 배타적 남성성의 공간이다. ‘공적 공간’인 정치에의 접근은 여성들에게 언제나 중요한 도전이었고, 한국 여성운동의 경험도 다르지 않았다.

촛불광장 이후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기대가 분출하고 있는 지금도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개입해야 할 정치현안들이 적지 않다. 당장 보다 민주적인 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비례대표제 확대 선거제도개혁이나 내년 지방선거 여성참여확대를 위한 방안 등이 모색되어야 하고, 여성혐오를 쏟아내는 남성연대에도 비판의 날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정치적으로 가장 큰 이슈는 개헌이고, 성평등 개헌 논의도 뜨겁다. 주권자의 권리장전이자 국가의 최고규범인 헌법에 여성들의 목소리가 누락되지 않도록 젠더민주주의를 기입하기 위한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직선제 개헌을 쟁취한 87년 민주화와 맞물려 ‘진보적’ 여성운동 연합체로 출범한 여성연합은 창립 당시인 1987년부터 “여성이 바라는 민주헌법에 대한 우리의 견해”를 발표하고, 1988년 총선을 앞두고는 “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즈음한 여성유권자선언”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정치적 의견을 표명해왔다.

여성들의 정치적 말하기는 직접 정치영역에 주체로 등장하고자 하는 ‘참가의 정치’로 이어졌다. 또한 남성 중심적인 정치구조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은 단순히 여성의 정치참여만이 아니라 기존 정치문화의 변화를 통해서 가능하다는 입장에서 ‘영향의 정치’를 표방했고, 성평등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개혁과 제도개선 노력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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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11월 29일 70여개 여성단체들이 모여 생활자치 맑은정치 여성행동 발족식을 열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의 이름으로 정치적 주류화

여성 세력화는 정치 부문에의 여성 참여 확대를 위한 운동이자 여성운동의 정치전략이다. 여성연합은 창립 당시 “여성운동세력의 조직적 연대를 이뤄나가며 민중들의 결집된 힘으로 사회 민주화와 자주화, 여성해방을 쟁취함”을 목적으로 내세웠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성운동세력’ ‘민중’ ‘민주화와 자주화’ ‘여성해방’이라는 단어들이 빠진 대신 ‘성평등’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게 됐고 여성 세력화 전략에도 변화를 모색하게 된다. 특히 1995년 베이징 제4차 세계여성대회를 전후해 성주류화(gender mainstreaming) 전략이 도입되고, 정치·의사결정 과정에의 여성 참여가 강조되면서 여성의 정치세력화에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여성의 정치적 주류화는 과거 타도대상으로서의 국가관에서 여성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국가관으로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진보적’ 여성운동은 정부 비판세력으로서의 정체성을 강고히 갖고 있던 1980년대와는 다르게, 다양한 여성들의 차이를 획일화하지 않으면서도 ‘여성’의 이름으로 정치세력화를 시도함으로써 정치권에 여성주의적 개입의 대변자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방향 전환을 하게 된 것이다.

 

지방자치 부활과 풀뿌리 여성정치

적극적인 후보 전략은 지방의회 선거에서 먼저 시도됐다. 1991년 지방자치제의 부활을 계기로 비례대표제 도입을 촉구하는 등의 활동과 함께 지방자치 참여가 대중운동으로서 여성운동의 지평을 열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 것이다. 적극적인 후보 발굴과 모금운동 등을 통해 1995년 지방의회 선거에서 여성의원을 당선시키기 위해 전력투구했고, 이런 노력의 결과로 17명 후보 중 14명을 당선시키는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이 경험은 후보 출마 전략을 통해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여성단체들에게 적지 않은 후유증을 남겼고, 이후 개인 몇 명을 정치계에 진출시키기 위해 운동단체가 조직적으로 총력을 기울이는 후보 전략은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정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지방선거에서도 후보 전략뿐만 아니라 정책 개입과 제도개혁운동이 병행됐는데, 2002년 지방선거 당시 발표한 ‘여성이 행복한 생활자치 10대과제’ 공약에는 ‘남녀동등공천제’와 기초의회 선거구를 조정하는 ‘남녀동수 선출제’가 제안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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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2월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여성신문이 개최한 ‘남녀 동수 19대 국회 만들기 토론회’ 모습. 이날 토론회를 마친 후 여성단체 대표들과 회원들은 ‘남녀 동수 19대 국회 대비 여성행동’을 구성했다.   ©여성신문

 

여성정치할당제 제도화의 성과

제도정치에의 참여가 강조되면서 여성 정치 참여의 수적 확대를 위해 ‘보수’와 ‘진보’를 넘어 하나 되는 ‘범여성계’ 연대활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됐다. ‘할당제도입을 위한 여성연대’(할당제여성연대)가 그 본격적인 시작점이다. 할당제여성연대 활동의 제도적 성과로 2000년 2월 제16대 총선 직전에 이뤄진 정당법 개정에서 국회의원 비례대표 후보의 30% 여성할당 조항이 처음으로 만들어졌고, 2002년 지방선거 전에 광역의회 비례대표 후보의 50% 여성할당 조항이 신설되는 정당법 개정이 이뤄졌다.

17대 총선을 앞두고는 그 어느 때보다 정치개혁과 여성 정치세력화에 대한 열망이 집중적으로 분출되었다. 321개 여성단체들이 연대해 ‘17대 총선을 위한 여성연대’(총선여성연대)를 발족했고, 적극적인 정치개혁운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국회의원 정수가 273석에서 299석으로 늘어나고 비례의원직이 10석 증석돼 56석이 되면서 그 중 50%를 여성에게 할당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성과를 거뒀다. 2000년 여성후보 공천할당을 정당법에 명시한 이래 공직선거법상 비례대표 50% 여성할당 및 남녀교호순번제 그리고 지역구 선출직 30% 여성할당 권고를 명시하고 있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2010 지방선거 남녀동수 범여성연대’(남녀동수연대)가 출범했다. 남녀동수연대는 제도개선 압박활동을 위해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연대체로 꾸려졌으며, 그 성과로 처음으로 지역구 선출직에 여성공천할당을 강제하는 여성의무공천제가 도입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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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4월 여성단체들이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할 ‘2010 여성유권자희망연대’(여성유권자연대)를 꾸려 활동에 나섰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운동가의 제도정치 진출

여성 정치 참여 확대를 위한 제도개혁운동과 함께 시도된 전략은 ‘리스트 운동’이었다. 후보가 될 권리를 요구하는 여성들에게 기성정당들은 입버릇처럼 “사람이 없다”고 말해왔던 탓이다. ‘맑은정치여성네트워크’(맑은넷)는 2004년 총선 당시 여성의 정치세력화에 동의하는 개인회원으로 구성된 모임으로, ‘여성 100인 국회보내기’를 기치로 해서 여성후보 추천운동을 벌였다. 맑은넷 운동은 리스트에 포함된 여성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공천을 거머쥐고 당선이 되는 성과를 거뒀지만, 정치세력화 방식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여성연합 내에서도 여성후보 추천 ‘리스트 운동’을 포함해 이후 여성 정치세력화 운동의 방식과 연대범위 등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이어졌다.

여성연합이 ‘진보적’ 여성운동의 대표성을 행사하는 역할을 수행하면서 직면한 제도화·권력화, 여성연합 위상과 연대방식에 대한 비판의 중심에는 정치세력화 운동이 있어왔다. 특히 여성연합 대표 등 주요 인사들의 제도정치 진입을 둘러싼 논쟁은 여성연합 안팎에서 끊이지 않았고, “여성단체장의 정계진출, 여성운동의 위기인가”가 질문되기도 했다. 거슬러 올라가보자면 여성연합 지도력의 정치권 진출은 여성연합 창립 초기부터 이뤄졌는데, 이후 계속되는 제도정치 진입사례는 결과적으로 조직적 판단이라기보다 ‘개인적 결단’이라는 측면이 강했다. 총선여성연대와 맑은넷 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대표적 여성운동가들이 다수 국회와 정부로 옮겨간 지금, 개인적 ‘흡수’에서 나아가 기득권 제도정치 지형에 균열을 내고 변화를 촉진하는 방식이 어떤 것인가 하는 차원에서 여성운동의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향해

여성의 정치적 주류화를 모색한 지난 20년을 돌아볼 때, 1997년 이후 10년간은 여성 지위 향상을 위한 법과 제도가 정비되고 사회서비스의 확대도 이뤄진 기간이었다. 민주정부와의 거버넌스 속에서 명실공히 여성정책과 지원시스템이 제도화된 ‘낙관의 시대’였다. 그러나 이 시기는 급작스럽게 닥친 경제위기와 IMF 관리체제 아래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작동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 후 보수정부 10년이 정치문화의 보수화 속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때 이른 역차별 논란과 반페미니즘이 강화된 비관적인 시대였다면, 지금 문재인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외치고 여성장관 30% 약속을 지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젠더 정의를 훼손하고 여성정치를 주변화 시키면서 희망과 우려를 교차하게 한다.

87년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적지 않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성 정치세력화 운동의 한계 역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젠더정치 각축장이다. 지난 기간 여성주의 정치는 공식적제도적 정치의 차원과 공사의 경계를 허무는 정치와 시민성의 두 차원을 아우르는 실천과 논의를 벌여왔다. 전자의 여성 정치세력화 운동이 과도하게 공식적 제도정치에서의 여성 대표성 증진을 강조한 한계가 있다면, 후자의 여성주의 정치는 게토화의 우려를 동반한다. 젠더정치는 이 양자의 결합을 통해 ‘정치적인 것’(the political)의 공간을 확장하는 여성주의 정치를 모색해야 하고, 보편성의 경계를 허물면서 배제되는 이들이 없도록 확장해 가면서 정치공간의 주체로서 스스로를 조직화해 나가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극단으로 치닫고 지속가능성에 관한 지구적 위기에 직면한 지금, 여성 정치세력화 운동 역시 시대적 상황과 적극적으로 대면하면서 젠더정의가 구현될 수 있는 정치적 상상력의 확장과 실천을 진지하게 모색해야 한다.

 

<ⓒ2017 여성신문의 약속 '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무단전재 배포금지>

 
김은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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