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616](경향) 여자는 무조건 ‘핑크’?···고정된 성역할 강요하는 코레일 캐릭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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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6-06-21 11:29 조회4,382회 댓글0건본문
여자는 무조건 ‘핑크’?···고정된 성역할 강요하는 코레일 캐릭터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저는 작은 일에도 잘 감동하고 눈물을 보여요, 소심하고 수줍음도 많지만 매사에 조심하는 성격이에요.”
코레일의 마스코트 아로의 소개글이다. 성별이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외모에서 드러나는 지금까지의 성별 기호 체계를 따르자면 여성 캐릭터라고 알 수 있다.
눈물이 많고, 수줍음을 잘 타고, 소심하다는 아로의 성격 묘사에는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갖고 있는 편견이 담겼다.
아로의 성격은 남성 캐릭터로 보이는 키로와 대비된다. “여행과 모험을 좋아하는 곰” 키로의 소개글을 보면 “여행을 통해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새로운 곳을 알게 되는 것을 좋아해요. …장난꾸러기에 성격이 급하지만 좋아하는 아로에게 잘 보이려고 침착한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라고 나와있다. 아로에 비해 진취적이고, 활달한 모습이 강조된다.
코레일은 캐릭터 상품화사업을 위해 2007년 자체적으로 케이티엑스미니(KTX-Mini)를 개발했고 이어 외부 업체에 용역을 맡겨 미니의 친구 ‘키로와 아로’, 귀여운 악당 ‘퉁스’, 그리고 ‘뭉클 아저씨’와 ‘치요’ 등을 만들었다. KTX 열차를 의인화한 ‘미니’를 빼고는 모두 동물을 의인화했다.
트위터 사용자 ‘행복찾기’(@imidazoles)는 코레일의 공식 캐릭터가 “여성에 대한 그릇된 성역할을 전파하고 있다”며 “후진적 성차별적 캐릭터 사용을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사용자는 서울시의 수돗물 브랜드인 ‘아리수’의 캐릭터를 비롯해 여러 단체들의 캐릭터에서 사례들을 모아 성차별적 요소를 지적했다. 그는 “여자는 속눈썹을 붙이고 핑크색 범벅을 해야만 표현될수 있는 별종의 존재”라며 “여성은 언제까지 보조적 핑크 역할만을 맡는답니까. 나는 싫어요”라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 기업의 마스코트는 곧잘 의인화가 된다. 곰이나 소, 새나 혹은 상상 속의 동물들이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성을 구분하기 위해 보통 여성 캐릭터의 색깔은 분홍색으로 표현되고, 간혹 머리에 꽃이나 리본을 꽂거나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성에 고정된 역할을 부여하고 그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면 이와 다른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자연히 차별과 구속감을 느끼게 된다.
전문가들은 코레일의 마스코트는 성별을 특정하지 않아 그 자체가 ‘성차별적’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정형화된 성별 기호 체계를 차용해 고정적인 성역할을 재생산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퀴어 이론’에서 보게되면 아로는 충분히 게이 남자일수 있다”며 “코레일의 키로와 아로의 캐릭터를 남성과 여성 캐릭터로 해석하는 것 자체가 성차별적 요소를 재생산하고 강화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시했다.
이진옥 대표는 “문제는 공공기관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굉장히 정형화된 성별 구도로서 지속적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단지 마스코트의 문제가 아니라 소방서나 경찰 등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고용될 수 있는 공공영역의 직장이라 하더라도 여성은 돌봄의 위치라는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고 그 특별한 역할이 그 직업 체계 내에서 평가절하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오혜진 문화연구자는 “성별’을 특정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 자체로 ‘성차별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며 “다만, 누가 봐도 키로가 ‘남성’, 아로가 ‘여성’이라고 인식되는 것은 이 캐릭터들이 매우 자연화된 이성애적 성별체계의 기호들을 아무 고민 없이 차용하고, 그것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오혜진 문화연구자는 “엠블럼이나 캐릭터, 마스코트 등은 대상의 특성을 간소화·단순화함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명료화하는 전략을 취하기 때문에 대상의 복합성을 담아내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며 “그럼에도 대중을 상대로 한 (특히 공기업 및 공적 기구들의) ‘기표’가 보다 섬세하게 고안되어야 하는 것은 성체계를 비롯해 소수자의 주체성이 누락된 지배적인 이성애 중심의 성별체계와 고정적인 성역할을 자연화하고 재생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그는 “엠블럼이나 마스코트 같은 ‘기호화된 상징’은 기존 ‘정상성’의 규범에 기대어 제작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 자연화된 ‘정상성’의 규범에 도전하면서 모든 주체들의 인권과 주체성을 포괄하고 가시화하는 것이 국가기구를 비롯한 공적 기구의 ‘상징’을 고안할 때 중요한 과제가 돼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충분히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내용이다”며 “캐릭터 개발 초기에 만들어진 내용이고 지적재산권이 걸려 있는 문제라 개발부서와 협의해서 이 내용을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수정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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