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409] (여성신문) 정의당, 미래를 점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페미니스트 비전을 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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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6-04-14 17:25 조회4,05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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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신문은 이번 해명이 나오기 전에 집필된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의 칼럼이 여전히 성평등 정치문화를 착근시키는데 중요한 문제제기가 될 것이라는 판단 아래 칼럼을 게재한다<편집자주>.
3월 29일 정의당이 중식이 밴드와 테마송 협약식을 체결한 후 점화된 여성혐오 논란은 일주일이 지난 현재까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정의당 중앙당에 있다. 첫째, 선거운동 전략팀에 페미니스트 기획자가 부재했다. 둘째, 정의당은 이에 대한 당 차원의 적극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셋째, 중식이 밴드의 노랫말과 그후 논란을 대처하는 과정이 정의당이 추구하는 가치와 상충한다는 점이다.
페미니스트 기획자가 배제된 선거운동 전략본부
2000년대 이후 선거에서 젠더는 번번이 주요한 논쟁적인 변수가 됐다. 2002년 대선 기간에 발생한 개혁당 성폭력 사건에 대해, 보궐선거를 준비하고 있던 당시 개혁당 집행위원이었던 유시민은 “해일이 일고 있는데 조개 줍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고 폄훼했다. 가깝게는 2012년 19대 총선 전에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비키니 사진 논란에서 김어준을 비롯한 진행자들은 논란이 시작된 지 2주가 지나서야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입장 표명으로 결국 본인들의 반성 없이 넘어갔다.
이 외에도 유사한 사건들에서 공통된 것은 여성들의 비판적 목소리를 ‘분열’ 세력으로 치부하고 경쟁적 선거구도에서 사소한 문제로 치부하며 배제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막은, 페미니즘 의제에 대해 성찰하지 않는 소위 ‘진보’ 세력은 그러한 성별화된 상징적 사건들을 전후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는 점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는 위대하거나, 부수적이거나 종속된, 남성의 필요에 따라 모순적으로 규정돼 왔다. 정치는 이런 문화적 습속과 별개로 움직이지 않으며, 따라서 가장 일차적인 권력 관계인 젠더를 둘러싼 이러한 사건들이 모든 사회 영역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특히 권력 쟁취를 위한 경쟁을 목표로 하는 선거라는 초남성화된 정치적 공간과 시간에서는 젠더를 둘러싼 갈등이 불가피하게 다수 발생한다. 중요한 것은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선언이 지난해 대대적인 반응을 일으키며 한국 사회의 주요 담론으로 자리 잡은 2016년의 시계에도 진보 정당임을 표방하고 있는 정의당이 이전의 경험에서 여전히 그것을 대비하고 대처할 수 있는 페미니스트 기획자를 선거운동 전략의 핵심부에 구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가 목격하고 있다시피 이는 커다란 실책이다.
정의당은 당의 강령에서 “끊임없이 혁신하고 진화하는 진보정당이 될 것이다. 식민과 분단, 억압과 착취에 맞서 온 진보정치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계승하는 한편, 현실에 맞지 않는 오류와 한계는 극복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정의당이 지난 통합진보당 사태를 겪은 후 민주적 비례대표 경선에서 보여준 태도와 마찬가지로 ‘성별화된 사건’을 통해 학습하고 성숙했음을 증명해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중식이 밴드가 남성 청년의 삶‘만’ 고달프다고 노래하고, 여성은 자기 처지도 생각하지 않고 “아기를 갖고 싶어 하는” 철부지(아기를 낳고 싶다니)이거나 “빚까지 내서 성형”하거나 “빚 갚으러 몸 파는 소녀들”(Sunday Seoul), “명품을 줘도” 안 사귀어 주는 된장녀(좀 더 서쪽으로)로 묘사하는 가사에 여성혐오적 요소가 있었다는 점을 ‘놓쳤다’.
우에노 치즈코는 저서 『여성혐오를 혐오한다』(2012)에서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 여성의 대상화, 타자화,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여성 멸시를 ‘여성 혐오’라고 의미를 확장해 정의했고, 이러한 정의는 지난해 정의당이 주요한 선거운동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핵심어였다. 정의당의 선거운동본부는 어찌 ‘여성혐오’에 관련된 수많은 글들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일까? 설마 여전히 여성의 발화를 소수 여성들의 생떼 쓰는 소리로 치부하는 것일까?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와 중식이 밴드의 리더 정중식 씨가 3월 29일 국회 본청에서 열린 정의당 4.13 총선 공식 테마송 협약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뉴시스·여성신문
정의당 선거운동 전략본부의 오랜 침묵
중식이 밴드와 협약 맺기 전 이에 대한 사전 성인지적(gender sensitive) 검토를 못했더라도, 사후적 문제제기에 대한 대응 태도가 정의당의 성평등 싹수를 증명하는 시험지가 될 수 있다. 한창민 정의당 대변인의 반성은 여성신문 보도에서 간접적으로 밝혀진 것인 만큼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었다고 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이 논란의 핵심은 여성혐오적 요소가 담긴 중식이 밴드의 노랫말이 아니라 이것이 20대 총선에서 정당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테마송으로 채택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의 문제였으나 그 쟁점은 중식이 밴드를 ‘여성혐오’로 볼 수 있는가의 해석의 문제, 예술·창작의 자유에 대한 허용치, 더 나아가 페미니즘 일반의 문제, 총선 대응의 분열 조장, 경쟁 세력의 음해 공작 등으로 옮겨가며 차별과 낙인, 혐오적 발언들이 당원 게시판에 가득 차게 됐다.
이에 침묵하는 중앙당을 대신해 4월 1일 중식이 밴드의 정중식이 해명의 글을 개인 블로그에 올리고, 4월 2일에는 정의당이 중식이 밴드와 테마송 협약을 맺을 것이라는 사전 인지도 하지 못한 여성위원회가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허나 이는 중앙당의 책임 전가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위원회는 당에서 성평등의 가치를 침해하는 여러 사건들의 사후적 해결사가 아니라 당내 성평등을 촉진할 수 있도록 적극적 활동을 개진하기 위한 설립된 정의당의 부문위원회다. 그리고 여성위원회는 이 논란을 계기로 “놓친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을 수용하고, 비판을 토대로 더욱 성평등한 감수성, 소수자의 감수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이 입장이 당원게시판에 공개된 후, 여성위원장과 더불어 이 사건에 관해 중앙당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표명한 비례대표 후보 이현정 후보가 사퇴해야 한다는 원색적 비난의 글마저 당원게시판에 등장했다. 물론 여기서 정당의 당원 게시판의 속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 대체로 모든 정당의 게시판은 극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활용되고 정의당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당원게시판에서 오고간 의견은 정의당과 당원 전체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당원의 절대적 소수자가 이 같은 논쟁의 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 등을 미루어 인터넷 당원게시판이 매우 제한된 미미한 영향력을 가진 공론장이며 정의당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사실 정의당의 당원게시판에서 중식이 밴드의 노랫말의 여성혐오를 부정하고 비판적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을 분열 세력으로 몰아가는 이들보다 더 많은 이들이 중식이 밴드 여성혐오 논란에 대해 당 차원의 입장을 밝히거나 협약 철회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묵묵부답인 정의당에 대해 4월 5일 노동당 여성위원회와 녹색당 여성특별위원회는 “한국 사회 진보정당들의 치열한 여성주의적 성찰을 촉구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정의당 선거운동 전략본부는 왜 반응하지 않는 것일까? 분명한 것은 대표성을 갖지 않은 당원게시판에서의 과열된 논쟁의 양상과 중식이 밴드=여혐이라는 위험한 등식화는 정의당이 당 차원에서 적극적인 입장을 제때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정의당이 추구하는 가치… 페미니스트 비전으로 성취될 수 있을 것
정의당에 대한 이러한 비판이 정의당을 여성혐오 정당으로 낙인찍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정의당 여성위원회를 비롯해 수많은 당원들은 이 문제를 정의당의 “적절하지 않은 선택”이자 “적절하지 못한 대응”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목소리를 강력하게 표출했다. 이들은 ‘아재 문화’의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 정의당이 페미니스트 정당으로 거듭나라는 급진적 요청이 아니라 진보 정당이 추구하고자 하는 다양성의 존중과 모두를 위한 인권 보장을 위해 점진적으로 개선의 노력을 해나가는 ‘태도’를 갖출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정의당이 더 많이 득표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정무적 판단의 근거가 되기도 하다.
일여다야의 구도에서 치러지는 이번 총선에서 ‘방황하는 757만명’에 이르는 부동층의 확보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관건이다. 앞서 지적했듯 페미니즘은 2016년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정치적 화두가 되었다. 중식이 밴드 논란을 둘러싸고 정의당은 총 2주의 선거운동 기간 중 반 이상을 허비했다. 매번 큰 논란이 되었던 지난 성별화된 사건에서는 배운 게 정녕 없단 말인가? 아니면 이 문제는 여전히 사소한 것인가? 이러한 판단 오류가 정의당의 무능에서 비롯되는 것인가?
정의당이 추구하는 권력과 자원의 재분배를 통한 정의와 민주주의의 회복은 여성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여성주의적 실천은 그 정의와 민주주의 회복의 과정을 보다 삶에 밀착시키고 구체화하는 것을 도울 것이다. 만약 정의당이 이에 대해 무응답으로만 일관한다면, 그것은 정의당의 실패이자 그로써 정의당은 한국 사회의 성평등과 인권의 가치 실현을 지연시킨 사회적 책임을 묻게 될 것이다. 반대로 만약 정의당이 이제라도 “적절한” 대응을 취한다면, 이 경험으로 정의당은 보다 깊숙이 정의와 민주주의 실현에 다가가게 될 것이고 동시에 한국 사회의 성평등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기여할 것이다.
정의당은 더 많은 여성들에게 매력적인 정당으로 다가가고 싶지 않은가? 페미니스트 비전을 품을 때에만이 정의당의 추구하는 가치들이 더욱 온전하게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혹여나 그 방법을 모르겠다면 정의당 내 발군의 페미니스트들을 이제라도 선거운동 전략팀의 핵심에 배치하라. 그보다 더 나아가서 정의당이 페미니스트 정당이 되고 싶다면, 대표자와 당직자의 모든 수준에서 남녀동수를 솔선하라. 20대 총선 이후 정의당의 미래는 페미니스트 비전에서 출발한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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