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된 첫 여성 대통령’ 구호
당선 뒤에도 끝없는 ‘여성 논쟁’
포스트 박근혜는 과연 어디에
당선 뒤에도 끝없는 ‘여성 논쟁’
포스트 박근혜는 과연 어디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5년 10월29일 이화여대 강당에서 열린 제50회 전국여성대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말과활 편집부/일곱번째숲·1만5000원
“박근혜 대통령이 한 유일한 페미니스트 실천이 있다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페미니스트에게 아주 어려운 과제를 남겨주었다는 것일지도 모른다.”(시우, ‘페미니스트 미씽: 사라진 논쟁, 지워진 계보’ 중)
계간지 <말과 활> 봄호(통권 13호)는 ‘박근혜 이후’ 여성 정치를 특집으로 다루며 4편의 글을 실었다. 급박한 대선 일정에 묻혀버린 ‘첫 여성 대통령’ ‘여성 정치’의 곤경을 재차 공론의 장으로 불러들인 이 기획은 작년 가을 격월간지에서 계간지로 변신한 뒤 여성편집위원을 다수 위촉한 ‘효과’이기도 하다. 단, 계간지의 특성상 박 전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 그리고 대선까지의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이런 아쉬움은 권두비평 ‘직접 민주주의의 장으로서의 광장과 민주주의 척도로 등장하는 법 규범: 정치의 지속을 기대하며’에서 상쇄된다. 김은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광장의 불완전한 평화, 규범적 평등에 대한 인식, 법치와 법에 대한 시민의 인식을 두루 짚으며 ‘광장 정치’의 역할을 진지하게 질문한다. “여성들에게 충분히 ‘평화’적이지 못했”던 광장 속에서 여성은 몰카, 성희롱 등 폭력과 범죄의 대상이 되었고 “정의와 국가가 구해지면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전제로 타자화되었다. 광장 민주주의는 대선 국면 속에 “대의민주주의의 정치적 행위자들을 위한 도구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민주주의는 곧 법치주의”라는 공통 인식 아래 법은 지배자에겐 통치 도구, 시민에겐 저항의 도구가 되었다. 중요한 건 평등을 ‘당연한 가치’로 여기는 젊은 세대들이 나타나고 사회운동 집단이 의제를 법제화하려는 것 또한 개별 삶의 중심에 침투한 “법의 규범성”을 방증한다는 점이다. 환경운동, 밀양 할머니들의 시위, 여성혐오를 비판하는 영페미니스트 운동도 모두 “법에 의해 활동이 제지되고, 고소당하고, 범칙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이에 “광장의 정치는 규범적 법의 활용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법의 가능성을 열기 위한 정치”가 되어야 한다고 밝힌다. 광장의 소통, 참여와 정치적 자유의 지속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제50회 전국여성대회에 참석차 이화여대를 방문한 것에 항의하는 학생들이 행사장으로 가다 사복경찰에게 제지 당하자 한 학생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팻말에는 “박근혜는 ‘여성’을 말할 자격이 없다”고 적혀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문화연구자 시우 또한 ‘페미니스트 미씽: 사라진 논쟁, 지워진 계보’에서 ‘여성 대통령론’이 가장 성공한 지점이 바로 “정치인 박근혜의 정책과 정치적 역량, 가치와 윤리에 대한 검증을 여성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프레임 지울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고 분석했다.
여성학 연구자 김주희는 ‘모성 사기극: 준비되지 않은 여성 대통령과 그 비판’에서 ‘준비된 여성대통령’이라는 구호를 만난 ‘진보’ 여성운동계 또는 여성 담론의 곤혹스러움을 밝혔다. 박정희의 ‘장녀’에서 갑자기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 되어 ‘모성 정치’를 재현하는 정치성을 비판하며 박근혜와 비판자들 양쪽이 모두 “가부장적 상상력” 안에서 ‘여성 정치’를 선동하거나 비판의 명목으로 여성에 대한 비하, 경멸을 거듭해왔다고 밝힌다.
2015년 10월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제50회 전국여성대회에 참석차 이화여대를 방문한 것에 항의하는 학생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문학연구가 허윤은 ‘공화국의 가족 로망스와 영부인 정치’에서 ‘육영수 신화’를 낱낱이 파헤쳤다. 각종 육영수 전기, 소설 등의 ‘모본’이 되는 <육영수 여사>(박목월, 1976, 삼중당)와 소설, 추모문집 등을 검토하며 그는 ‘박근혜 체제’가 그 어머니 육영수의 올림머리뿐 아니라 정치성까지 효과적으로 승계했음을 보여준다. 박정희 체제는 육영수의 인격과 그들 부부의 인생 드라마를 감동적으로 홍보하며 “강력한 아버지와 다정한 어머니의 결합으로 형성되는 가족국가의 완성”을 이뤘다. 보수적 여성단체인 여성단체협의회(여협)의 명예회장이기도 했던 육영수는 1971년 신년사에서 “남성들이 정렬을 기울여 일하는 이 해에 여성들은 사치와 허영의 꿈에서 깨어나”(<여성> 1971년 1, 2월호)야 한다고 강조한바, 남성을 이상적 주체로 높이고 여성의 사치와 허영을 비판했다. 허윤은 ‘여류명사’로서 육영수는 ‘국가 페미니즘’의 목소리로 여성의 헌신, 봉사, 희생을 강조했으며 지금 대통령 후보들과 그 아내 또는 남편이 보여주는 ‘배우자 정치’ 또한 40년 전의 이런 모습과 그다지 거리가 멀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정희-육영수-박근혜 시대는 과연 종언을 고했을까. 대선에 나선 남성 후보들이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지금, 첫 여성 대통령이 남긴 숙제와 게이트 전후 누구보다 강력히 저항한 이화여대생들의 ‘투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음은 계속된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