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825] (오마이뉴스) [탁현민 논란 설명서4] 진보에 의해 밀려나는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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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7-08-25 18:52 조회3,141회 댓글0건본문
[탁현민 논란 설명서4] 진보에 의해 밀려나는 페미니즘
□ [1회차] 탁현민을 둘러싼 논란, 3개월간의 복기
□ [2회차] 언론 속 탁현민과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
□ [3회차] 보수 진영에 의해 오용되는 페미니즘
□ [4회차] 진보 진영에 의해 밀려나는 페미니즘, "문재인을 지켜야만 한다."
* 본 기사는 지난 7월부터 탁현민 퇴출을 촉구하는 서명운동과 기자회견을 함께 해온
(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의 김시운 인턴활동가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탁현민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탁현민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그는 저서들을 통해 성차별적, 여성혐오적 시각과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를 남성의 본능적 욕망과 보편적인 한국의 문화로 정당화했다. 논란이 된 세 권의 책들은 일관되게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착취하는 여성혐오 문화를 "솔직함"으로 포장하여 여성을 이등 시민으로 귀착시킨다.
또한 성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전형적인 남성 중심적 인식을 담고 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던 문재인 정부에 성평등과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인물이 들어가 주요 참모로서 공직을 맡는다는 것은 대통령의 공약 실행 의지에 의문을 가지게 한다.
또한 문재인 정부에서 함께 하는 여성 참모들의 위상을 격하시킬 수 있는 우려 역시 크다. 지난 21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약속드린 대로 구두로 사퇴 의견을, 고언을 (청와대에) 전달했"지만 "그 이후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좀 무력하다"라고 발언했다.
지금까지 탁현민에 대한 문제제기를 일관되게 무시해온 청와대의 행보와 다르지 않게 정현백 장관의 의견 역시 묵살된 것처럼 보인다. 이는 여성가족부 장관을 여성 의제와 마찬가지로 주변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제쳐놓은 정부의 태도,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탁현민을 통해 드러난 문재인 정부의 민낯은 성평등 사회와는 동떨어져 있다. 특히 여성혐오 문화가 기승을 부리고, 젠더 폭력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태도는 폭력과 혐오를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여성 혐오의 문화를 타파하자는 자성의 목소리는 이를 상징하는 탁현민과 방치하는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탁현민 비판 칼럼 모음)
탁현민 옹호자들의 논리
탁현민을 옹호하는 기성 언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옹호자들은 그들의 생각을 대변해 주지 않는 기성 언론을 조롱하며, 주로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와 같은 개인적인 온라인 공간을 통해 의견을 표출했다. 또한 여세연이 주도적으로 진행했던 기자회견 이후, 단체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으며 심지어 자필 편지까지 발송되었다. 탁현민을 옹호하는 이들의 논리는 비교적 일맥상통했다. 이를 유형별로 정리해 보았다.
유형 1. 지난 보수 정권 시기 탁현민의 헌신을 인정해야 한다.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탁현민이 과거 연출했던 MBC 파업공연을 언급하며 "당시 그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해주었습니다…기지가 넘치는 연출을 해준 그가 아니었다면 시민들의 성원을 받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오래 싸움을 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탁현민 씨를 비판하시는 분들의 생각에 반론을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때 우리 중 누군가가 그에게 제대로 감사인사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요."라고 말했다.
MBC 파업 공연뿐 아니라 노무현 추모 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 '문재인의 운명 북콘서트' 등 지난 보수 정권 9년의 시간에서 탁현민의 기획은 정치판의 지형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그의 행사들을 통해 시민들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애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탁현민의 기획은 애도 이후의 정치 참여를 북돋고 정치인 문재인, 그리고 대통령 문재인 탄생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에 더해 탁현민이 기획했다는 '나는 꼼수다' 등의 정치 토크 콘서트 및 문화제는 촛불 혁명을 지속시킨 시위 문화 변화의 자극제가 되었다.
그러나 탁현민 비판에 대한 반응으로 그의 기여와 헌신을 이야기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논점 일탈이며, 문제의 핵심을 빗겨가는 것이다. 탁현민 비판의 핵심은 성평등 대통령의 원칙과 기본적인 공직자 윤리에 대해 묻고 있다.
둘째, 페미니스트들과 다양한 소수자들을 포함한 탁현민을 비판하는 다수의 사람들 역시 지난 9년 동안 보수 정권과 대항해서 싸워왔다. 그들의 기여와 헌신에 대해서는 누가 어떻게 인정해주고 있는가? 또한 문재인 정부의 탄생은 개개인의 뛰어난 역할과 능력보다는 시민의 주체적인 사회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촛불 정부 탄생의 공헌을 개인의 능력에 돌리고, 이에 따라 직접적으로 보상해주는 접근은 위험하다. 이는 결국 자리나누기의 문제로 귀결되며, 승자와 패자로 나누어 소수의 목소리를 지운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마지막으로 이런 피아를 나누는 이분화된 세계관은 "정권교체"라는 대의와 조직에 대한 "충성도", 운동에 대한 "헌신" 등의 이유로 그와 다른 목소리, 특히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를 삭제시켜 온 관습적 논리이다.
유형 2. 탁현민은 대체 불가능한 인물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탁현민은 노무현의 '비서실장 문재인'이 '대중적 정치인 문재인'으로 거듭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대중들이 '정치인 문재인'에게 열광했던 것은 행사의 기획력이나 선전‧홍보의 방식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 개인이 여러 행보에서 보여준 진정성을 유권자들이 직접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소통의 형식, 포맷의 중요성을 폄하할 수는 없다. 최승호, 김경수, 문성근 등의 옹호자들의 발언을 통해 드러나듯이 탁현민의 능력과 역할은 탁월하다고 평가받으며, 그는 문재인 정부가 중점을 두는 '소통의 가치'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 인물, '대체 불가능한' 인재로 칭송받는다.
그러나 취임 100일이 지난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추구하는 소통의 기획은 이제 "쇼통"으로 폄하되고 있다. 또한 '보여주기' 식의 행사가 계속되고, 그 형식을 담당하는 탁현민의 능력을 칭찬하는 양상이 반복되면서 대통령의 진정성이 훼손되고 피로감이 생겨날 수 있다.
근본적으로 그 대체불가능성이란 무엇인가? 그 탁월함이란 무엇인가? 탁현민이라는 자가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과 특수한 정치 환경의 맥락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재원의 대체불가능성이 강조될수록 문재인 정부의 통치 행위는 시스템이 아닌 개인에 의존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
거취와 인사 문제는 오로지 자리에 할당된 업무능력만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식의 '능력주의'는 특히나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라면 더욱 피해야 하는 위험한 지점이다. 국가 기관이 차지하는 위상, 영향력, 상징성을 고려해 볼 때, 능력주의로 공직자 인선 논란을 돌파하는 것은 능력만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그릇된 사회분위기를 만들 우려가 있다. 국민의 시각과 동떨어진 채 능력주의가 도덕과 정치윤리를 초월하게 되면 엘리트 기득권 집단의 윤리 의식은 저해되고, 그들의 잘못이 쉽게 정당화되는 악영향을 미친다. 이는 민주정부 스스로의 통치 철학과 배반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노벨상 수상자이자 영국 UCL(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명예교수인 팀 헌트는 "실험실에 여자가 있으면 로맨스가 일어나서 과학연구에 방해가 된다"라는 여성혐오적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사임해야 했다. UCL 측이 "영국에서 최초로 남학생과 동등한 조건으로 여학생을 선발한 학교"라며 "성평등을 위한 우리의 노력으로 이러한 결론에 다다랐다"고 밝힌 것을 볼 때, 교수의 사임이 학교 측의 권고 조치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하물며 통치 기관인 청와대의 공직자와 임면권자인 대통령에게 성평등의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다 못해 마땅히 해야 할 민주 시민의 의무이다.
유형 3. 일개 행정관에 불과하다.
탁현민의 자리가 진정 '일개' 행정관인가? 그의 직책은 대통령 직속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서 2급 공무원에 해당한다. 이 위치에 있었던 이들 중 대부분은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거나 공기업 사장으로 취임하기도 할 만큼, '일개' 행정관이 아니라 고위직 공직자이다. 그는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보좌하고, 대외적으로 보이는 모습을 관리, 홍보하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청와대의 "총체적 행동양식의 기획 및 집행"을 맡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대통령에 대한 '의전'은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이양 받은 권력을 대리인으로서 행사하는 과정을 보좌하는 역할이다. 탁현민에 의해 기획되는 대통령 의전 행사를 주권자로서 바라보는 여성들은 그의 그림자를 끊임없이 상기한다는 점에서 이미 크게 모독당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발표한 100대 국정 과제에는 "실질적 성평등 사회"를 만들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실질적 성평등 사회"는 여성혐오 전력이 있는 인물이 고위 공직자로 인선되는 사회가 아니다. 젠더 의식은 업무 능력과 상관없기 때문에 탁현민이 사퇴해서 안 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잃는 지점이다.
위계와 책무, 두 가지 면에서 그는 부차시될 사람이 아니다. 여성혐오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내보인 전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끊어내는 것은 성평등 공약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젊은 세대와 아이들에게 "여성혐오 책을 써도 탁월한 기량만 발휘한다면 위법이 아니니 고위 공직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유형 4. 과거의 글에 불과하며, 그는 이미 사과했다.
김미화씨는 "십 년 전에 쓴 책 내용이 '여혐' 아니냐며 비난받는 탁현민씨. 출간 이후 그가 여성들을 위해 여성재단, 여성단체연합의 행사기획 연출로 기여해온 사실을 홍보대사로서 봐온 나로서는 안타까운 심정이다"라며 탁현민을 개인 트위터를 통해 옹호했다. 그녀의 논지는 탁현민의 책이 물론 문제적이지만, 그런 여성혐오적 인식은 여성 단체들의 행사에 도움을 준 것으로 보아 변하였으며, 그는 책 출간 당시가 아닌 그 이후 십년의 행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한 편의 '글'이 아니라 지금까지 탁현민이 쓴 책 10권 중 3권, 3권내에서도 상당 부분에 해당된다. 세 권의 책들에서 그가 일관적으로 세상과 공유하고자 한 성 인식은 여성은 남성의 성적 도구라는 것이다. 그것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는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여성에 대한 시선과 성매매, 강간 문화를 "이것이 남성의 솔직한 마음이며 일반적인 남성의 성 문화"라고 정당화하는 것은 문제적이다.
또한 그의 사과는 "불편함을 느끼고 상처를 받으신 모든 분께 죄송한 마음을 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과는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것이어야 했다. 무엇이 잘못인지, 그리하여 어떤 점을 반성하고 시정할 것인지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면, 그 사과는 탁현민 개인의 성장과 더불어 한국 남성의 성 인식과 성 문화를 교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논란이 두 달이 넘게 지속된 후에야 인터뷰를 통해 "저를 향한 비판들 하나, 하나 엄중하게 받고 깊이 성찰하고 있다"는 해명을 하였다. 그 해명의 대부분은 비판에 오해와 허구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억울하다는 심정을 담고 있었다. (관련기사: [단독]탁현민 인터뷰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가 물러날 때")
특히 최근에 탁현민이 여성신문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은 그가 비판의 핵심과 반성의 지점이 무엇인지 여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난 7월 30일, 그는 허위사실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여성신문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관련기사: 탁현민 행정관, 여성신문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여중생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그의 책은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신문 측에서 '제가 바로 탁현민의 그 여중생입니다'라는 제목을 사용하여 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기고자는 탁현민의 저서에 담긴 내용으로 인해 과거의 상처를 꺼내보게 되었다는 의미로 그런 제목을 사용했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그럼에도 탁현민은 "상처를 받으신 분께 죄송한 마음을 표한다"던 사과의 말과 달리 그 기사를 실은 여성신문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소송 대신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혹은 반론 보도를 제기하는 통상의 절차를 거칠 수도 있었다. 국가의 고위 공무원이 기사 제목을 이유로 언론사에 소송부터 거는 행위를 볼 때, 그의 사과와 성찰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유형 5. 탁현민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아야 한다.
여성혐오적 사상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것은 '표현의 자유'일 뿐이다. 평범한 개인에게 무차별적으로 비판을 퍼붓는 것은 사회적 린치에 불과하다. '표현의 자유' 개념은 시민의 정치적 의사 표출이 국가 권력에 의해 억압, 탄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탁현민 개인의 정치적 자유는 당연히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의 표현이 타인의 존엄성을 해치거나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자유의 남용은 제한될 수 있다. 이 제한의 잣대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국가 권력이 기득권층의 입맛대로 잣대를 설정해 여론을 주무른다면 반민주적인 린치에 해당된다.
그러나 탁현민은 고위 공직자로 임명되어 국가 권력에 진입한 사람이다. 국민은 출판된 책을 토대로 그의 사상을 판단하여 옳지 않은 것이라 생각되면 이에 대해 비판하고, 사퇴를 촉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비판의 목소리를 막는 것이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는 것이다.
유형6. 반문재인 진영의 정권 흔들기는 탁현민 한 명의 사퇴로 끝나지 않고, 다른 인사 문제로 계속해서 번질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잘 활동하도록 응원해주면 좋겠다" 배우 문성근이 탁현민을 옹호하며 개인 SNS에 올린 글이다. 문 정부를 음해하는 세력이 정권을 흔들고 있으므로 이에 개의치 말라는 뜻이다. 이는 "이제 그 정도 우려먹었으면 되지 않았는가. 우리는 대통령의 품격을 탁월하게 빚어내는 탁현민의 연출을 보고 싶다.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탁현민을 좀 놔둬라. 제발"이라는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의 남편 조기영 시인의 글(http://blog.naver.com/bosomi710/221050488664), 김경수 의원의 페이스북 글들을 관통하는 생각이다.
문 지지자들은 노무현에 대한 감정적 트라우마와 강한 유대감으로 결집한다. "이러다 또 노무현 꼴 난다"는 절박감으로 뭉친 이들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을 적폐 청산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규정한다. 조기영 시인은 "탁 행정관의 책이 유별나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가 대통령의 측근이기 때문이라는 이유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라며, 탁현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대통령에 대한 음해 정도로 축소시켜 설명한다.
과연 문 정부를 비판하는 여러 세력을 '반문'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을 수 있는가? 결국 모든 옹호 유형들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을 방해하지 말라는 유형 6으로 귀결된다. 이는 진영 논리를 전형적으로 답습하는 옹호 논리이다. 현실 속에서, 적어도 탁현민 논란에 대한 지점에서 이런 프레임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보수 언론, 야당, 시민 단체, 대중들은 저마다의 다른 맥락으로 탁현민의 사퇴를 촉구했다. 여러 맥락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 만들어진 가상의 정치적 연대는 현실 속 삶의 문제를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오히려 해결을 막는다. 설사 문 지지자들의 흑백논리가 보수 진영의 공세에 대항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처럼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젠더 이슈의 행방이 사라진다면 어떠한 정당화도 정치 공학적인 변명에 불과하다. 도를 지나친 '이니 지키기'의 열광은 생산적인 토론과 논쟁을 막으며, 지성을 마비시킨다.
심지어 성평등 정부를 약속했던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2월 16일, "성평등은 인권의 핵심 가치"이며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성평등한 세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차별과 혐오가 사라진,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한 그의 약속에 공감하고 위로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이들이 탁현민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오히려 문 정부에 대한 응원과 지지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프레임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피아식별이다. 보수 진영이 탁현민 논란에서 설정한 친문 vs. 반문의 논지와 동일하게 진보 진영 역시 대결 구도 속에 젠더 이슈를 가둔다. 진영 논리에 따라 젠더 이슈를 다르게 대하다 보니 홍준표와 정우택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탁현민을 옹호하는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벌어진다. 보수와 진보 진영은 젠더 이슈를 수단화, 주변화 하는 공범이다.
진영 논리 속에서 짓눌리는 여성주의
또한 가장 보편적인 옹호 논리는 여성단체들이 '만만한' 탁현민과 문 정부만 깎아내리고, '무서운' 야당 정치인들의 여혐 언행들에는 침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비판과 다르게 오랜 시간동안 여성단체들은 남성중심적인 정치제도권에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왔다. 예를 들어, 홍준표 돼지발정제 논란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28개 여성단체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계획하다 선거법 위반 우려 때문에 취소한 바 있다. (관련기사: 여성계 반발 "돼지발정제 무용담이 고해성사로 둔갑")
□ [2회차] 언론 속 탁현민과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
□ [3회차] 보수 진영에 의해 오용되는 페미니즘
□ [4회차] 진보 진영에 의해 밀려나는 페미니즘, "문재인을 지켜야만 한다."
* 본 기사는 지난 7월부터 탁현민 퇴출을 촉구하는 서명운동과 기자회견을 함께 해온
(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의 김시운 인턴활동가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탁현민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 지난 4월 21일 오전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 용산구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강당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미래, 성평등이 답이다' 대통령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에서 성평등 정책 시행을 약속한 서약서를 들어보이고 있다. | |
ⓒ 남소연 |
탁현민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그는 저서들을 통해 성차별적, 여성혐오적 시각과 여성에 대한 성적 착취를 남성의 본능적 욕망과 보편적인 한국의 문화로 정당화했다. 논란이 된 세 권의 책들은 일관되게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착취하는 여성혐오 문화를 "솔직함"으로 포장하여 여성을 이등 시민으로 귀착시킨다.
또한 성불평등을 재생산하는 전형적인 남성 중심적 인식을 담고 있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던 문재인 정부에 성평등과 젠더 감수성이 결여된 인물이 들어가 주요 참모로서 공직을 맡는다는 것은 대통령의 공약 실행 의지에 의문을 가지게 한다.
또한 문재인 정부에서 함께 하는 여성 참모들의 위상을 격하시킬 수 있는 우려 역시 크다. 지난 21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약속드린 대로 구두로 사퇴 의견을, 고언을 (청와대에) 전달했"지만 "그 이후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좀 무력하다"라고 발언했다.
지금까지 탁현민에 대한 문제제기를 일관되게 무시해온 청와대의 행보와 다르지 않게 정현백 장관의 의견 역시 묵살된 것처럼 보인다. 이는 여성가족부 장관을 여성 의제와 마찬가지로 주변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제쳐놓은 정부의 태도, 사회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탁현민을 통해 드러난 문재인 정부의 민낯은 성평등 사회와는 동떨어져 있다. 특히 여성혐오 문화가 기승을 부리고, 젠더 폭력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이러한 문재인 정부의 태도는 폭력과 혐오를 방치하는 것과 다름없다. 여성 혐오의 문화를 타파하자는 자성의 목소리는 이를 상징하는 탁현민과 방치하는 문재인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탁현민 비판 칼럼 모음)
탁현민 옹호자들의 논리
탁현민을 옹호하는 기성 언론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대항하기 위해 옹호자들은 그들의 생각을 대변해 주지 않는 기성 언론을 조롱하며, 주로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와 같은 개인적인 온라인 공간을 통해 의견을 표출했다. 또한 여세연이 주도적으로 진행했던 기자회견 이후, 단체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으며 심지어 자필 편지까지 발송되었다. 탁현민을 옹호하는 이들의 논리는 비교적 일맥상통했다. 이를 유형별로 정리해 보았다.
유형 1. 지난 보수 정권 시기 탁현민의 헌신을 인정해야 한다.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개인 페이스북을 통해 탁현민이 과거 연출했던 MBC 파업공연을 언급하며 "당시 그는 정말 대단한 일을 해주었습니다…기지가 넘치는 연출을 해준 그가 아니었다면 시민들의 성원을 받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렇게 오래 싸움을 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탁현민 씨를 비판하시는 분들의 생각에 반론을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 때 우리 중 누군가가 그에게 제대로 감사인사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요."라고 말했다.
MBC 파업 공연뿐 아니라 노무현 추모 콘서트 '다시 바람이 분다', '문재인의 운명 북콘서트' 등 지난 보수 정권 9년의 시간에서 탁현민의 기획은 정치판의 지형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그의 행사들을 통해 시민들은 고 노무현 대통령을 애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탁현민의 기획은 애도 이후의 정치 참여를 북돋고 정치인 문재인, 그리고 대통령 문재인 탄생의 계기를 마련했다. 이에 더해 탁현민이 기획했다는 '나는 꼼수다' 등의 정치 토크 콘서트 및 문화제는 촛불 혁명을 지속시킨 시위 문화 변화의 자극제가 되었다.
그러나 탁현민 비판에 대한 반응으로 그의 기여와 헌신을 이야기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논점 일탈이며, 문제의 핵심을 빗겨가는 것이다. 탁현민 비판의 핵심은 성평등 대통령의 원칙과 기본적인 공직자 윤리에 대해 묻고 있다.
둘째, 페미니스트들과 다양한 소수자들을 포함한 탁현민을 비판하는 다수의 사람들 역시 지난 9년 동안 보수 정권과 대항해서 싸워왔다. 그들의 기여와 헌신에 대해서는 누가 어떻게 인정해주고 있는가? 또한 문재인 정부의 탄생은 개개인의 뛰어난 역할과 능력보다는 시민의 주체적인 사회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촛불 정부 탄생의 공헌을 개인의 능력에 돌리고, 이에 따라 직접적으로 보상해주는 접근은 위험하다. 이는 결국 자리나누기의 문제로 귀결되며, 승자와 패자로 나누어 소수의 목소리를 지운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마지막으로 이런 피아를 나누는 이분화된 세계관은 "정권교체"라는 대의와 조직에 대한 "충성도", 운동에 대한 "헌신" 등의 이유로 그와 다른 목소리, 특히 페미니스트의 목소리를 삭제시켜 온 관습적 논리이다.
유형 2. 탁현민은 대체 불가능한 인물이다.
▲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21일 본인의 개인 sns에 본인의 부탁으로 탁현민에게 책임을 맡겼다며, 그가 문재인 대통령의 가치를 잘 보여줄 수 있는 홍보 책임자라고 칭찬했다. | |
ⓒ 김경수 의원 개인 sns |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탁현민은 노무현의 '비서실장 문재인'이 '대중적 정치인 문재인'으로 거듭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대중들이 '정치인 문재인'에게 열광했던 것은 행사의 기획력이나 선전‧홍보의 방식 때문이 아니라 대통령 개인이 여러 행보에서 보여준 진정성을 유권자들이 직접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소통의 형식, 포맷의 중요성을 폄하할 수는 없다. 최승호, 김경수, 문성근 등의 옹호자들의 발언을 통해 드러나듯이 탁현민의 능력과 역할은 탁월하다고 평가받으며, 그는 문재인 정부가 중점을 두는 '소통의 가치'를 잘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 인물, '대체 불가능한' 인재로 칭송받는다.
그러나 취임 100일이 지난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추구하는 소통의 기획은 이제 "쇼통"으로 폄하되고 있다. 또한 '보여주기' 식의 행사가 계속되고, 그 형식을 담당하는 탁현민의 능력을 칭찬하는 양상이 반복되면서 대통령의 진정성이 훼손되고 피로감이 생겨날 수 있다.
근본적으로 그 대체불가능성이란 무엇인가? 그 탁월함이란 무엇인가? 탁현민이라는 자가 훌륭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그와 함께 했던 사람들과 특수한 정치 환경의 맥락이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또한 재원의 대체불가능성이 강조될수록 문재인 정부의 통치 행위는 시스템이 아닌 개인에 의존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남긴다.
거취와 인사 문제는 오로지 자리에 할당된 업무능력만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식의 '능력주의'는 특히나 공적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라면 더욱 피해야 하는 위험한 지점이다. 국가 기관이 차지하는 위상, 영향력, 상징성을 고려해 볼 때, 능력주의로 공직자 인선 논란을 돌파하는 것은 능력만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그릇된 사회분위기를 만들 우려가 있다. 국민의 시각과 동떨어진 채 능력주의가 도덕과 정치윤리를 초월하게 되면 엘리트 기득권 집단의 윤리 의식은 저해되고, 그들의 잘못이 쉽게 정당화되는 악영향을 미친다. 이는 민주정부 스스로의 통치 철학과 배반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노벨상 수상자이자 영국 UCL(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의 명예교수인 팀 헌트는 "실험실에 여자가 있으면 로맨스가 일어나서 과학연구에 방해가 된다"라는 여성혐오적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사임해야 했다. UCL 측이 "영국에서 최초로 남학생과 동등한 조건으로 여학생을 선발한 학교"라며 "성평등을 위한 우리의 노력으로 이러한 결론에 다다랐다"고 밝힌 것을 볼 때, 교수의 사임이 학교 측의 권고 조치였음을 유추할 수 있다. 하물며 통치 기관인 청와대의 공직자와 임면권자인 대통령에게 성평등의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타당하다 못해 마땅히 해야 할 민주 시민의 의무이다.
유형 3. 일개 행정관에 불과하다.
탁현민의 자리가 진정 '일개' 행정관인가? 그의 직책은 대통령 직속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서 2급 공무원에 해당한다. 이 위치에 있었던 이들 중 대부분은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거나 공기업 사장으로 취임하기도 할 만큼, '일개' 행정관이 아니라 고위직 공직자이다. 그는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보좌하고, 대외적으로 보이는 모습을 관리, 홍보하는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청와대의 "총체적 행동양식의 기획 및 집행"을 맡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대통령에 대한 '의전'은 대통령이 국민으로부터 이양 받은 권력을 대리인으로서 행사하는 과정을 보좌하는 역할이다. 탁현민에 의해 기획되는 대통령 의전 행사를 주권자로서 바라보는 여성들은 그의 그림자를 끊임없이 상기한다는 점에서 이미 크게 모독당했다.
▲ 대통령 비서실 조직도 | |
ⓒ 김효겸, 『대통령 의전의 세계』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9일 발표한 100대 국정 과제에는 "실질적 성평등 사회"를 만들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실질적 성평등 사회"는 여성혐오 전력이 있는 인물이 고위 공직자로 인선되는 사회가 아니다. 젠더 의식은 업무 능력과 상관없기 때문에 탁현민이 사퇴해서 안 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잃는 지점이다.
위계와 책무, 두 가지 면에서 그는 부차시될 사람이 아니다. 여성혐오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내보인 전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끊어내는 것은 성평등 공약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지금 젊은 세대와 아이들에게 "여성혐오 책을 써도 탁월한 기량만 발휘한다면 위법이 아니니 고위 공직자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유형 4. 과거의 글에 불과하며, 그는 이미 사과했다.
김미화씨는 "십 년 전에 쓴 책 내용이 '여혐' 아니냐며 비난받는 탁현민씨. 출간 이후 그가 여성들을 위해 여성재단, 여성단체연합의 행사기획 연출로 기여해온 사실을 홍보대사로서 봐온 나로서는 안타까운 심정이다"라며 탁현민을 개인 트위터를 통해 옹호했다. 그녀의 논지는 탁현민의 책이 물론 문제적이지만, 그런 여성혐오적 인식은 여성 단체들의 행사에 도움을 준 것으로 보아 변하였으며, 그는 책 출간 당시가 아닌 그 이후 십년의 행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건 한 편의 '글'이 아니라 지금까지 탁현민이 쓴 책 10권 중 3권, 3권내에서도 상당 부분에 해당된다. 세 권의 책들에서 그가 일관적으로 세상과 공유하고자 한 성 인식은 여성은 남성의 성적 도구라는 것이다. 그것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는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여성에 대한 시선과 성매매, 강간 문화를 "이것이 남성의 솔직한 마음이며 일반적인 남성의 성 문화"라고 정당화하는 것은 문제적이다.
또한 그의 사과는 "불편함을 느끼고 상처를 받으신 모든 분께 죄송한 마음을 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사과는 "제가 잘못했습니다"라는 것이어야 했다. 무엇이 잘못인지, 그리하여 어떤 점을 반성하고 시정할 것인지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면, 그 사과는 탁현민 개인의 성장과 더불어 한국 남성의 성 인식과 성 문화를 교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논란이 두 달이 넘게 지속된 후에야 인터뷰를 통해 "저를 향한 비판들 하나, 하나 엄중하게 받고 깊이 성찰하고 있다"는 해명을 하였다. 그 해명의 대부분은 비판에 오해와 허구가 뒤섞여 있기 때문에 억울하다는 심정을 담고 있었다. (관련기사: [단독]탁현민 인터뷰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가 물러날 때")
특히 최근에 탁현민이 여성신문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소송은 그가 비판의 핵심과 반성의 지점이 무엇인지 여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난 7월 30일, 그는 허위사실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여성신문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관련기사: 탁현민 행정관, 여성신문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여중생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그의 책은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신문 측에서 '제가 바로 탁현민의 그 여중생입니다'라는 제목을 사용하여 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기고자는 탁현민의 저서에 담긴 내용으로 인해 과거의 상처를 꺼내보게 되었다는 의미로 그런 제목을 사용했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그럼에도 탁현민은 "상처를 받으신 분께 죄송한 마음을 표한다"던 사과의 말과 달리 그 기사를 실은 여성신문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소송 대신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혹은 반론 보도를 제기하는 통상의 절차를 거칠 수도 있었다. 국가의 고위 공무원이 기사 제목을 이유로 언론사에 소송부터 거는 행위를 볼 때, 그의 사과와 성찰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유형 5. 탁현민은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아야 한다.
여성혐오적 사상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것은 '표현의 자유'일 뿐이다. 평범한 개인에게 무차별적으로 비판을 퍼붓는 것은 사회적 린치에 불과하다. '표현의 자유' 개념은 시민의 정치적 의사 표출이 국가 권력에 의해 억압, 탄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탁현민 개인의 정치적 자유는 당연히 보장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의 표현이 타인의 존엄성을 해치거나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다면 자유의 남용은 제한될 수 있다. 이 제한의 잣대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국가 권력이 기득권층의 입맛대로 잣대를 설정해 여론을 주무른다면 반민주적인 린치에 해당된다.
그러나 탁현민은 고위 공직자로 임명되어 국가 권력에 진입한 사람이다. 국민은 출판된 책을 토대로 그의 사상을 판단하여 옳지 않은 것이라 생각되면 이에 대해 비판하고, 사퇴를 촉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비판의 목소리를 막는 것이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저해하는 것이다.
유형6. 반문재인 진영의 정권 흔들기는 탁현민 한 명의 사퇴로 끝나지 않고, 다른 인사 문제로 계속해서 번질 것이다.
▲ 배우 문성근이 지난 6월 7일, 탁현민을 옹호하며 개인 SNS에 올린 글이다. | |
ⓒ 문성근 개인 sns |
"흔들리지 않고 잘 활동하도록 응원해주면 좋겠다" 배우 문성근이 탁현민을 옹호하며 개인 SNS에 올린 글이다. 문 정부를 음해하는 세력이 정권을 흔들고 있으므로 이에 개의치 말라는 뜻이다. 이는 "이제 그 정도 우려먹었으면 되지 않았는가. 우리는 대통령의 품격을 탁월하게 빚어내는 탁현민의 연출을 보고 싶다.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탁현민을 좀 놔둬라. 제발"이라는 고민정 청와대 부대변인의 남편 조기영 시인의 글(http://blog.naver.com/bosomi710/221050488664), 김경수 의원의 페이스북 글들을 관통하는 생각이다.
문 지지자들은 노무현에 대한 감정적 트라우마와 강한 유대감으로 결집한다. "이러다 또 노무현 꼴 난다"는 절박감으로 뭉친 이들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들을 적폐 청산을 방해하는 세력으로 규정한다. 조기영 시인은 "탁 행정관의 책이 유별나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가 대통령의 측근이기 때문이라는 이유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라며, 탁현민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대통령에 대한 음해 정도로 축소시켜 설명한다.
과연 문 정부를 비판하는 여러 세력을 '반문'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묶을 수 있는가? 결국 모든 옹호 유형들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을 방해하지 말라는 유형 6으로 귀결된다. 이는 진영 논리를 전형적으로 답습하는 옹호 논리이다. 현실 속에서, 적어도 탁현민 논란에 대한 지점에서 이런 프레임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보수 언론, 야당, 시민 단체, 대중들은 저마다의 다른 맥락으로 탁현민의 사퇴를 촉구했다. 여러 맥락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채 만들어진 가상의 정치적 연대는 현실 속 삶의 문제를 전혀 설명하지 못하고, 오히려 해결을 막는다. 설사 문 지지자들의 흑백논리가 보수 진영의 공세에 대항하기 위한 일종의 전략처럼 사용된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에서 젠더 이슈의 행방이 사라진다면 어떠한 정당화도 정치 공학적인 변명에 불과하다. 도를 지나친 '이니 지키기'의 열광은 생산적인 토론과 논쟁을 막으며, 지성을 마비시킨다.
▲ 지난 4월 21일 오전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 용산구 한국여성단체협의회 강당에서 열린 '모두를 위한 미래, 성평등이 답이다' 대통령 후보 초청 성평등정책 간담회에서 성평등 정책 시행을 약속한 후 이 자리에 참석한 관계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 |
ⓒ 남소연 |
심지어 성평등 정부를 약속했던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 본인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2월 16일, "성평등은 인권의 핵심 가치"이며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성평등한 세상"이라고 말한 바 있다. 차별과 혐오가 사라진, 평등한 세상을 만들겠다고 말한 그의 약속에 공감하고 위로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기에 이들이 탁현민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오히려 문 정부에 대한 응원과 지지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프레임에 사로잡힌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피아식별이다. 보수 진영이 탁현민 논란에서 설정한 친문 vs. 반문의 논지와 동일하게 진보 진영 역시 대결 구도 속에 젠더 이슈를 가둔다. 진영 논리에 따라 젠더 이슈를 다르게 대하다 보니 홍준표와 정우택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탁현민을 옹호하는 우스꽝스러운 일들이 벌어진다. 보수와 진보 진영은 젠더 이슈를 수단화, 주변화 하는 공범이다.
진영 논리 속에서 짓눌리는 여성주의
또한 가장 보편적인 옹호 논리는 여성단체들이 '만만한' 탁현민과 문 정부만 깎아내리고, '무서운' 야당 정치인들의 여혐 언행들에는 침묵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비판과 다르게 오랜 시간동안 여성단체들은 남성중심적인 정치제도권에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왔다. 예를 들어, 홍준표 돼지발정제 논란 당시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28개 여성단체들은 성명서를 발표하고, 기자회견을 계획하다 선거법 위반 우려 때문에 취소한 바 있다. (관련기사: 여성계 반발 "돼지발정제 무용담이 고해성사로 둔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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