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825] (오마이뉴스) [탁현민 논란 설명서 3] 보수에 의해 오용되는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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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7-08-25 18:51 조회3,009회 댓글0건본문
[탁현민 논란 설명서 3] 보수에 의해 오용되는 페미니즘
□ [1회차] 탁현민을 둘러싼 논란, 3개월간의 복기
□ [2회차] 언론 속 탁현민과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
□ [3회차] 보수 진영에 의해 오용되는 페미니즘
□ [4회차] 진보 진영에 의해 밀려나는 페미니즘, "문재인을 지켜야만 한다."
* 본 기사는 지난 7월부터 탁현민 퇴출을 촉구하는 서명운동과 기자회견을 함께 해온
(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의 김시운 인턴활동가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대통령 곁에서 의전을 담당한다는 행정관이라는 사람이 과거 책에서 쓴 글은 제가 인용하기 민망하고 부적절할 정도로 난잡한 수준이다. 이것은 책의 내용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추잡스러운 쓰레기일 뿐이다."
– 지난 6월 22일 비상대책위, 자유한국당 당대표 정우택의 발언
보수 진영은 시대착오적인 대결 구도로 젠더 이슈를 착취해왔다. 이는 젠더 이슈의 수단화, 주변화 두 가지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들에게 젠더 이슈는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주요한 수단이자 대결구도에서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철저히 외면당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다만,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진영'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다분히 논쟁적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비슷한 정치적 성향, 이념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이라 할지라도 완전한 동질성을 전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같은 진영 내에도 광범위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사안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는 지점이 상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탁현민 논란의 진행 과정에서 각 진영이 보인 모습들에는 일정한 메커니즘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고자 '진영'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보수 진영/진보 진영으로 각각 규정된 집단 내에는 정치 제도권, 언론, 시민들 모두 포함되지만, 탁현민 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맥락에 따라 포함되지 않는 그룹도 있을 수 있다.
보수 언론은 야당의 확성기
탁현민 사안 역시 보수 진영의 일관된 행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보수 진영은 탁현민 사안을 문 정부를 비난하고, 흔들기 위한 도구로 이용했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논란이 시작된 5월 24일부터 잠정 사퇴를 밝힌 다음날인 7월 19일까지의 기사들을 보수 매체(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이데일리 등 6개 매체)와 진보 매체(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여성신문, 민중의소리 등 6개 매체)로 나누어 기사의 양상을 비교해보았다.
먼저 전체 기사의 수는 보수 203건, 진보 143건으로 양적인 면에서는 보수 매체의 보도 숫자가 더 월등했다. 그러나 질적으로는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보수 언론의 보도는 단발성 스트레이트 기사들이 대다수였으며, 탁현민을 비판한 사설, 칼럼 혹은 인터뷰, 서평의 비율은 진보 언론의 삼분의 일(보수-16건, 7.9% / 진보-36건, 25.2%)에도 미치지 못했다. 보수 언론은 질 낮은 '받아쓰기' 기사들만을 양산함으로써 탁현민 논란의 본질을 심도 있게 뜯어보기보다 논란을 증폭시키는 데 힘을 기울여 왔다.
진보 매체들이 페미니즘 관점에서 탁현민을 비판하는 양질의 칼럼을 많이 내보낸 반면, 보수 매체들은 그나마 보도한 칼럼들조차 문 정부의 인사 검증을 총체적으로 비난하는 '양념'으로 탁현민의 이름을 거론한 정도가 많았다. 또한 보수언론은 탁현민과 문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야당의 논평을 여과 없이, 지속적으로 보도해왔다(보수-26건, 진보-7건). 야 3당이 2달 간 25건의 논평을 내놓으며 탁현민을 비판하면(자유한국당-11건, 국민의당-10건, 바른정당-4건), 보수 언론이 이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여 증폭, 양산하는 방식으로 탁현민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경향신문에서 보도한 탁현민 단독 인터뷰(관련기사: [단독]탁현민 인터뷰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가 물러날 때"), 오마이뉴스의 안경환 저서 서평(관련기사: 논란의 <남자란 무엇인가>, 꼼꼼히 읽어 봤습니다), 진보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한국일보의 '상상력에 권력을' 단독 보도(관련기사: [단독] 탁현민 이번엔 '성매매 찬양' 논란… "동방예의지국의 아름다운 풍경") 등의 기사들과 비교해보면 보수 언론의 '성의 없는' 흠집 내기는 더욱 두드러진다.
홍준표와 정우택이 강탈한 여성의 목소리
물론 집권 세력의 실책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야당과 언론의 역할이다. 탁현민에 대한 보수 진영의 공세를 성평등 관점이 배제된, 진영 논리라고 단언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성평등 관점에서 보수 진영이 비판 받아온 역사를 볼 때, 이들이 탁현민을 비난하는 양상은 철저히 선택적이다.
성차별적 언행에 대한 비판이 보수 진영에 들어오면 이들은 젠더 이슈를 중요하지 않은 의제로 치부하여 철저히 주변화 시켜왔다. 타 진영을 공격할 때에만 여성인권 운동의 투사로 돌변하는 이들의 행태는 탁현민을 비난하는 그들의 모습이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다.
이는 지난 4월,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의 돼지발정제 논란 당시 보수 언론의 태도를 보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사안의 경중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홍준표는 탁현민보다 더욱 적나라하게 남성 강간문화의 전형적 일면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보수 언론의 칼럼이나 사설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적었다. 이후 탁현민을 비판하는 사설에 돼지발정제 논란을 짤막하게 언급하는 정도였다.
공당의 대선 후보가 성폭력 행위에 직접 가담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고백한 충격적 사건을 비판하지 않은 데스크의 사상을 검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통계와 같이, 보수 언론은 홍준표 때와 다르게 탁현민을 원색적으로 비난해왔다. 야당의 논평을 그대로 답습한 기사들을 양산하는 방식으로 논란을 최대한 증폭시키고자 노력한 것이 통계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이들의 이중적 보도 행태는 지나치게 편향적이며, 정치 공학적이다. 본인이 속한 진영에 따라 같은 의제에 대해서도 앞뒤가 바뀌는 보수 언론의 태도는 휘발되는 이슈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젠더 이슈를 삭제시켜버린다.
이렇게 '내로남불'이 극대화된 보수진영의 모습은 자유한국당 당대표 정우택이 탁현민의 저서를 '추잡스러운 쓰레기'라고 묘사한 것에서 더욱 명백히 드러난다. 성상납 의혹으로 법원을 들락날락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방에 '관기(官妓)'를 넣어주겠다는 여성혐오적 발언을 일삼으며 룸살롱에서 '음모주'를 마시던 정우택이 갱생하여 페미니즘 운동에 힘을 실어주겠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논란에 대해 진정성 있는 반성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한 그가 떳떳이 제1야당의 당대표로 앉아 탁현민을 '쓰레기'라 비난하는 모습( 비상대책위원회의 주요내용)은 보수 진영이 여성의 목소리를 악용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여가위)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여가위원들은 탁현민의 파면을 요구하며 회의를 파행으로 이끌었다. 이후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여성을 성적 도구로 대놓고 비하한 '여성 혐오의 대명사' 탁 행정관이 여론의 질타와 여성 의원들의 수차례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 주요행사를 챙기고 있고 청와대는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관련기사: 한국당 여가위원들의 탁현민 비판, 왜 안 먹힐까)
그러나 이들이 같은 당의 홍준표와 정우택의 성 인식에 대해 어떤 비판과 견제의 노력을 해왔던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여성 의원들이 성폭력과 성희롱에 대해 항상 침묵해온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대체로 여성 문제를 정치 진영의 문제로 부각시켜 여성 의제를 선별적, 정략적으로 도구화해왔다.
이는 여성혐오를 사소하고 부차적인 문제로 인식하도록 원인을 제공하여 재생산하는 데 일조한 행태다. 여성의 목소리를 악용해온 보수 진영의 행보와 마찬가지로 자유한국당 여가위원들의 문제제기는 여성주의적 관점의 내용만 차용할 뿐, 명백한 정치 공학적 의도 하에서 선택적 태도로 여성 혐오 문제에 접근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여성 의제의 운신을 제한한다.
폭력과 혐오를 조장하는 진영 논리
보수 언론과 야당은 탁현민 논란의 쟁점을 친(親)문재인 진영과 반(反)문재인 진영의 대립 구도로 만들어, 정권 흔들기를 위한 수단으로 이슈를 사용한다.
문재인 지지자이지만, 성평등 관점에서 탁현민을 반대하는 시민이 탁현민을 비난하는 보수 진영의 목소리에 과연 동의할 수 있을까? 보수 언론과 야당은 여당 여성의원들, 여성단체가 탁현민에 대해 홍준표 때와는 다르게 '입을 다물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여성주의적 비판의 목소리를 비가시화하고, 의도적으로 삭제하고자 했다.(관련기사: [양선희의 시시각각] 민주당 여성 의원들의 침묵) (관련기사: 야당, "여성단체, 여성혐오 탁현민�안경환 왜 비판 안하나" 불만 ) (관련기사: [현장에서] 여성단체들의 이례적인 차분함...안경환 후보자에 이중잣대 논란)
이렇게 페미니스트 의제를 정치 공학적으로 활용하는 보수 진영의 태도는 문재인 지지자들에게 여성단체들을 문재인 흔들기에 동참하는 세력으로 매도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의제는 대결 구도의 프레임 속에 갇혀버리기 때문에 본질에 대한 논의는 봉쇄되고, 여론의 확장은 힘들어졌다. 입맛에 따라, 변동하는 정치 국면에 따라, 페미니즘을 진영 논리에 종속시켜 온 행태들은 사회 내에서 젠더 이슈가 차지하는 위치를 중요하지 않은, 주변적인 것으로 축소시킨다. 성평등 가치가 실현되려면 여성,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해 만연한 차별과 폭력을 해소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공론화되어야 한다. 결국 젠더 이슈의 확장을 막는 대결 구도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과 혐오를 조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대결 구도는 보수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다. 진보 진영 역시 진영 논리를 답습하고 있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보수 진영과 함께 탁현민 논란을 대결 구도로 이끌며, 탁현민에 대한 비판을 반문재인 세력의 정권 흔들기로 뭉뚱그린다. 이에 대한 논의를 다음 회차에서 자세히 하겠다.
□ [2회차] 언론 속 탁현민과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
□ [3회차] 보수 진영에 의해 오용되는 페미니즘
□ [4회차] 진보 진영에 의해 밀려나는 페미니즘, "문재인을 지켜야만 한다."
* 본 기사는 지난 7월부터 탁현민 퇴출을 촉구하는 서명운동과 기자회견을 함께 해온
(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의 김시운 인턴활동가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대통령 곁에서 의전을 담당한다는 행정관이라는 사람이 과거 책에서 쓴 글은 제가 인용하기 민망하고 부적절할 정도로 난잡한 수준이다. 이것은 책의 내용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추잡스러운 쓰레기일 뿐이다."
– 지난 6월 22일 비상대책위, 자유한국당 당대표 정우택의 발언
보수 진영은 시대착오적인 대결 구도로 젠더 이슈를 착취해왔다. 이는 젠더 이슈의 수단화, 주변화 두 가지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들에게 젠더 이슈는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주요한 수단이자 대결구도에서 이득이 되지 않는다면 철저히 외면당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다만,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진영'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다분히 논쟁적일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다. 비슷한 정치적 성향, 이념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이라 할지라도 완전한 동질성을 전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같은 진영 내에도 광범위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사안에 따라 뭉치고 흩어지는 지점이 상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탁현민 논란의 진행 과정에서 각 진영이 보인 모습들에는 일정한 메커니즘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설명하고자 '진영'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적절하다고 판단된다. 보수 진영/진보 진영으로 각각 규정된 집단 내에는 정치 제도권, 언론, 시민들 모두 포함되지만, 탁현민 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맥락에 따라 포함되지 않는 그룹도 있을 수 있다.
보수 언론은 야당의 확성기
▲ 5/24~7/19 기간의 탁현민 관련 기사들을 주요 언론사 중심으로 보수와 진보 매체로 나누어 정리했다. | |
ⓒ (사)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
탁현민 사안 역시 보수 진영의 일관된 행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보수 진영은 탁현민 사안을 문 정부를 비난하고, 흔들기 위한 도구로 이용했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논란이 시작된 5월 24일부터 잠정 사퇴를 밝힌 다음날인 7월 19일까지의 기사들을 보수 매체(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이데일리 등 6개 매체)와 진보 매체(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여성신문, 민중의소리 등 6개 매체)로 나누어 기사의 양상을 비교해보았다.
먼저 전체 기사의 수는 보수 203건, 진보 143건으로 양적인 면에서는 보수 매체의 보도 숫자가 더 월등했다. 그러나 질적으로는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보수 언론의 보도는 단발성 스트레이트 기사들이 대다수였으며, 탁현민을 비판한 사설, 칼럼 혹은 인터뷰, 서평의 비율은 진보 언론의 삼분의 일(보수-16건, 7.9% / 진보-36건, 25.2%)에도 미치지 못했다. 보수 언론은 질 낮은 '받아쓰기' 기사들만을 양산함으로써 탁현민 논란의 본질을 심도 있게 뜯어보기보다 논란을 증폭시키는 데 힘을 기울여 왔다.
진보 매체들이 페미니즘 관점에서 탁현민을 비판하는 양질의 칼럼을 많이 내보낸 반면, 보수 매체들은 그나마 보도한 칼럼들조차 문 정부의 인사 검증을 총체적으로 비난하는 '양념'으로 탁현민의 이름을 거론한 정도가 많았다. 또한 보수언론은 탁현민과 문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야당의 논평을 여과 없이, 지속적으로 보도해왔다(보수-26건, 진보-7건). 야 3당이 2달 간 25건의 논평을 내놓으며 탁현민을 비판하면(자유한국당-11건, 국민의당-10건, 바른정당-4건), 보수 언론이 이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여 증폭, 양산하는 방식으로 탁현민 논란의 불씨를 지폈다.
경향신문에서 보도한 탁현민 단독 인터뷰(관련기사: [단독]탁현민 인터뷰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을 때가 물러날 때"), 오마이뉴스의 안경환 저서 서평(관련기사: 논란의 <남자란 무엇인가>, 꼼꼼히 읽어 봤습니다), 진보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한국일보의 '상상력에 권력을' 단독 보도(관련기사: [단독] 탁현민 이번엔 '성매매 찬양' 논란… "동방예의지국의 아름다운 풍경") 등의 기사들과 비교해보면 보수 언론의 '성의 없는' 흠집 내기는 더욱 두드러진다.
홍준표와 정우택이 강탈한 여성의 목소리
물론 집권 세력의 실책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야당과 언론의 역할이다. 탁현민에 대한 보수 진영의 공세를 성평등 관점이 배제된, 진영 논리라고 단언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성평등 관점에서 보수 진영이 비판 받아온 역사를 볼 때, 이들이 탁현민을 비난하는 양상은 철저히 선택적이다.
성차별적 언행에 대한 비판이 보수 진영에 들어오면 이들은 젠더 이슈를 중요하지 않은 의제로 치부하여 철저히 주변화 시켜왔다. 타 진영을 공격할 때에만 여성인권 운동의 투사로 돌변하는 이들의 행태는 탁현민을 비난하는 그들의 모습이 곱게 보이지 않는 이유다.
▲ 지난 5월 7일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가 7일 오후 경남 창원 마산어시장을 방문해 상인이 주는 낙지를 먹고 있다. 이 상인은 낙지를 준 먹어주며 “낙지 먹고 딱 붙어야지”라고 말했다. | |
ⓒ 이희훈 |
이는 지난 4월,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의 돼지발정제 논란 당시 보수 언론의 태도를 보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사안의 경중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홍준표는 탁현민보다 더욱 적나라하게 남성 강간문화의 전형적 일면을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보수 언론의 칼럼이나 사설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적었다. 이후 탁현민을 비판하는 사설에 돼지발정제 논란을 짤막하게 언급하는 정도였다.
공당의 대선 후보가 성폭력 행위에 직접 가담하고, 이를 자랑스럽게 고백한 충격적 사건을 비판하지 않은 데스크의 사상을 검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통계와 같이, 보수 언론은 홍준표 때와 다르게 탁현민을 원색적으로 비난해왔다. 야당의 논평을 그대로 답습한 기사들을 양산하는 방식으로 논란을 최대한 증폭시키고자 노력한 것이 통계를 통해 여실히 드러난다. 이들의 이중적 보도 행태는 지나치게 편향적이며, 정치 공학적이다. 본인이 속한 진영에 따라 같은 의제에 대해서도 앞뒤가 바뀌는 보수 언론의 태도는 휘발되는 이슈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젠더 이슈를 삭제시켜버린다.
이렇게 '내로남불'이 극대화된 보수진영의 모습은 자유한국당 당대표 정우택이 탁현민의 저서를 '추잡스러운 쓰레기'라고 묘사한 것에서 더욱 명백히 드러난다. 성상납 의혹으로 법원을 들락날락하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방에 '관기(官妓)'를 넣어주겠다는 여성혐오적 발언을 일삼으며 룸살롱에서 '음모주'를 마시던 정우택이 갱생하여 페미니즘 운동에 힘을 실어주겠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논란에 대해 진정성 있는 반성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한 그가 떳떳이 제1야당의 당대표로 앉아 탁현민을 '쓰레기'라 비난하는 모습( 비상대책위원회의 주요내용)은 보수 진영이 여성의 목소리를 악용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원회(여가위) 전체회의에서 자유한국당 여가위원들은 탁현민의 파면을 요구하며 회의를 파행으로 이끌었다. 이후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여성을 성적 도구로 대놓고 비하한 '여성 혐오의 대명사' 탁 행정관이 여론의 질타와 여성 의원들의 수차례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가 주요행사를 챙기고 있고 청와대는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관련기사: 한국당 여가위원들의 탁현민 비판, 왜 안 먹힐까)
그러나 이들이 같은 당의 홍준표와 정우택의 성 인식에 대해 어떤 비판과 견제의 노력을 해왔던가?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여성 의원들이 성폭력과 성희롱에 대해 항상 침묵해온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대체로 여성 문제를 정치 진영의 문제로 부각시켜 여성 의제를 선별적, 정략적으로 도구화해왔다.
이는 여성혐오를 사소하고 부차적인 문제로 인식하도록 원인을 제공하여 재생산하는 데 일조한 행태다. 여성의 목소리를 악용해온 보수 진영의 행보와 마찬가지로 자유한국당 여가위원들의 문제제기는 여성주의적 관점의 내용만 차용할 뿐, 명백한 정치 공학적 의도 하에서 선택적 태도로 여성 혐오 문제에 접근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여성 의제의 운신을 제한한다.
폭력과 혐오를 조장하는 진영 논리
보수 언론과 야당은 탁현민 논란의 쟁점을 친(親)문재인 진영과 반(反)문재인 진영의 대립 구도로 만들어, 정권 흔들기를 위한 수단으로 이슈를 사용한다.
문재인 지지자이지만, 성평등 관점에서 탁현민을 반대하는 시민이 탁현민을 비난하는 보수 진영의 목소리에 과연 동의할 수 있을까? 보수 언론과 야당은 여당 여성의원들, 여성단체가 탁현민에 대해 홍준표 때와는 다르게 '입을 다물고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여성주의적 비판의 목소리를 비가시화하고, 의도적으로 삭제하고자 했다.(관련기사: [양선희의 시시각각] 민주당 여성 의원들의 침묵) (관련기사: 야당, "여성단체, 여성혐오 탁현민�안경환 왜 비판 안하나" 불만 ) (관련기사: [현장에서] 여성단체들의 이례적인 차분함...안경환 후보자에 이중잣대 논란)
이렇게 페미니스트 의제를 정치 공학적으로 활용하는 보수 진영의 태도는 문재인 지지자들에게 여성단체들을 문재인 흔들기에 동참하는 세력으로 매도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의제는 대결 구도의 프레임 속에 갇혀버리기 때문에 본질에 대한 논의는 봉쇄되고, 여론의 확장은 힘들어졌다. 입맛에 따라, 변동하는 정치 국면에 따라, 페미니즘을 진영 논리에 종속시켜 온 행태들은 사회 내에서 젠더 이슈가 차지하는 위치를 중요하지 않은, 주변적인 것으로 축소시킨다. 성평등 가치가 실현되려면 여성,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해 만연한 차별과 폭력을 해소하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공론화되어야 한다. 결국 젠더 이슈의 확장을 막는 대결 구도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과 혐오를 조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대결 구도는 보수 진영의 전유물이 아니다. 진보 진영 역시 진영 논리를 답습하고 있다. 문재인 지지자들은 보수 진영과 함께 탁현민 논란을 대결 구도로 이끌며, 탁현민에 대한 비판을 반문재인 세력의 정권 흔들기로 뭉뚱그린다. 이에 대한 논의를 다음 회차에서 자세히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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