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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505] (국민일보) 여자가 설친다? 이렇게 말하면 딱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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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6-05-16 16:30 조회3,5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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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서강대 국제인문학부 학생회가 마련한 강연이 당일 갑자기 취소됐다. 강연 주제는 ‘연애’였는데 때 아닌 ‘여성혐오(여혐)’ 논란이 벌어진 탓이었다. 문제가 된 것은 강사인 웹툰 작가 마인드C(본명 강민구)의 작품 성향이었다. 

강씨의 강연에 반대한 이들은 그의 작품 ‘강남미인도’를 문제 삼았다. 이 작품은 성형을 많이 하는 세태를 풍자한다. 여성들이 성형을 거쳐 모두 비슷한 얼굴이 된다는 내용인데, 이게 ‘여혐’이라는 것이다. 다른 작품에서 여성을 외모로 줄을 세우거나 마른 몸매를 강요하는 듯한 대목도 ‘여혐’으로 지목됐다.

1주일이 흐른 지난 2일 취소됐던 강씨의 강연이 열렸다. 주최가 학생회에서 서강대 온라인커뮤니티 ‘서담’으로 바뀌었다. ‘서담’ 관계자는 “강씨 작품을 여혐으로 보기 어렵다”며 “취소된 뒤 아쉬워하는 학생들이 많아 강연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여혐’이라는 단어가 계층, 연령을 관통하며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명품을 좋아하면 ‘된장녀’로 부르고, 한국여성을 ‘김치녀’라고 비난하며 폄하한다. ‘여혐’은 무엇이고, 어디에서 출발한 것일까.

가부장 사회와 남녀 간 경제 갈등이 낳은 여혐 

혐오의 사전적 의미는 ‘싫어하고 미워함’이다. 증오를 바탕으로 특정 대상을 꺼리는 행동까지 포함되면 혐오다. ‘여혐’은 단순히 여성을 싫어하는 것과 다르다. 이상적인 여성상에서 벗어난 여성만을 싫어하는 게 여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적 여성상은 ‘희생하는 어머니’에 가깝다. 현실에서 ‘여혐’은 희생보다는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여성, 외모 가꾸기에 주된 관심을 쏟는 여성 등을 대상으로 한다. 

‘여혐’의 출발은 편견, 가부장적 사고다. 이진옥 젠더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5일 “남녀를 동등하게 보지 않고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이 여혐”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편견을 드러내는 표현도 여혐의 일종”이라며 “예를 들어 ‘여자가 설친다’는 표현에는 ‘여성이 적극적으로 발언하거나 자기결정권을 갖는 것이 잘못됐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사이버대 사회복지학부 이문숙 교수는 “가부장적 사고를 바탕으로 여성의 모습을 왜곡시켜 표현하는 것이 여혐”이라며 “유흥가 앞에서 명품백을 들고 서 있는 한국 여성을 그려내는 디올 광고도 여혐”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도 여혐을 부추긴다. 이 교수는 “경제가 어려워지고 억압받는 사회 분위기에서 자신의 ‘자리’를 여성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남성이 여성에게 적대감을 갖는 것”이라고 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최원진 활동가는 “‘내 일자리를 뺏는 존재’라는 점에서 여혐이 나타난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여혐 vs 남혐…접점은 없나 

여혐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것이 ‘여성혐오에 대한 혐오(여혐혐)’와 ‘남성혐오(남혐)’이다. 여성들이 주로 활동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 등에서는 여혐 풍조를 혐오하는 글들이 인기를 얻는다. 이들은 남성을 ‘한남충(벌레 같은 한국남자)’이라고 부르며 ‘남혐’을 드러낸다. 혐오를 혐오로 받아치는 일종의 미러링(mirroring)이다. 계명대 여성학과 안숙영 교수는 “여혐을 비판적으로 접근한다는 점, 사회적 약자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미러링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출발점일 뿐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여혐’과 ‘남혐’의 대결구도 속에서 빚어지는 극단적 표현이 혐오의 감정을 더 키운다는 지적도 있다. 이진옥 대표는 “미러링은 ‘혐오를 당하는 기분’을 전달하는 효과를 갖지만 ‘혐오를 혐오로 해결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수다 떠는 남성, 눈물을 흘리는 남성처럼 여성성을 띤 행동을 하는 남성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여혐”이라며 “여혐이나 남혐처럼 서로 낙인을 찍기보다는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성찰이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최원진 활동가는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이나 행동을 하는 사람은 그게 여혐이라는 걸 모른다. 이들을 몰아세우고 낙인을 찍는 것은 갈등만 키운다”고 말했다.

홍석호 오주환 기자 wi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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