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825] (오마이뉴스) [탁현민 논란 설명서 2] 언론 속 탁현민과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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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7-08-25 18:50 조회3,260회 댓글0건본문
[탁현민 논란 설명서 2] 언론 속 탁현민과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
□ [1회차] 탁현민을 둘러싼 논란, 3개월간의 복기
□ [2회차] 언론 속 탁현민과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
□ [3회차] 보수 진영에 의해 오용되는 페미니즘
□ [4회차] 진보 진영에 의해 밀려나는 페미니즘, "문재인을 지켜야만 한다."
* 본 기사는 지난 7월부터 탁현민 퇴출을 촉구하는 서명운동과 기자회견을 함께 해온 (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의 김시운 인턴활동가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탁현민은 뜨거운 감자였다
탁현민 논란을 바라보는 국민적 관심도는 꾸준했다. 논란이 점화된 5월 24일부터 현재 8월 24일까지 약 3달간의 시간 동안 2300여개의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특히 <남자 마음 설명서> 논란이 불거진 5월 24-26일,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 2차 논란이 시작된 6월 21-23일을 기점으로 많은 기사들이 양산되었다. 7월에도 이 흐름은 이어졌다. 여성가족부 장관의 해임 건의, 경향신문과의 단독인터뷰, 기업인들과의 호프 미팅 등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탁현민은 지속적으로 여론의 관심을 받아왔다.
문 대통령 당선 이후의 네이버 검색어 트렌드를 보면 탁현민이 지속적으로 화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5월 9일부터 현재까지의 트래픽을 분석하여 누계값을 구한 결과, 탁현민의 관심도 누계치는 178로, 강경화 외교부장관(누계치 303)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누계치 193)에 이은 3번째 순위를 차지했다. 하루 동안의 관심도 최댓값은 47로, 박기영(최대 95), 안경환(최대 77)에 비해 낮았지만 꾸준히 이슈가 생성되었고 관심도 누계치는 이들을 앞섰다.
탁현민에 대한 관심은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광화문 1번가'를 통해서도 표출되었다. 5월 24일 이후, 탁현민 사퇴를 촉구하는 글들이 문자메시지를 포함해 약 160건 정도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검증과정에서 위장전입 논란이 있었던 강경화 장관 관련 글들이 대부분 사퇴 반대를 촉구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탁현민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의 다수는 본인이 문재인 정부의 지지자임을 밝히면서 그를 비판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페미니스트 정부'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뒤틀린 성 인식을 지닌 탁현민에게 공직자의 역할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현민은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고, 그의 '산뜻한' 활약도 계속되었다.
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일개' 행정관의 누계 트래픽이 장관들보다 높다는 것 그리고 쏟아지는 사퇴 여론에도 탁현민이 여전히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탁현민이 '일개' 행정관이 아니며, 그의 저서에서 나타난 여성혐오적 발언들이 '일개' 행정관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수용되고 승인되고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사소한' 여성혐오?
시민들과 사회가 공직자 인선 기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양적 데이터로 증명된, 탁현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을 긍정적으로만 해석해야 할지는 의문이다. 한국 사회가 탁현민 논란을 대하는 방식은 탁현민 개인에 대한 문제로 축소되거나, 문 정부에 대한 옹호와 비판 사이의 논쟁으로 귀결되며, 성평등 가치에 대한 공론화나 사회적 합의로 확장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5월 24일 이후, 현재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청와대의 태도에서 엿볼 수 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 정부는 국민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를 국정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이렇게 민심에 기대고 있는 문 정부가 탁현민의 거취를 용인하고 있는 것은 역으로 페미니스트 이슈가 청와대를 압박할 만큼 사회 주요의제로 여겨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물론 탁현민의 업무 능력에 대한 신뢰도가 높고, 대통령과의 관계가 긴밀하기 때문에 그를 내치지 않는다는 항간의 추측은 일면 합리적이다. 그러나 반대여론이 거세다면 청와대가 탁현민을 묵인하는 정치적 부담을 지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크게 비판을 받은 박기영 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임명 나흘 만에 낙마한 사례와 비교해 보면 이러한 무반응과 버티기는 더욱 돋보인다. 친문으로 분류되는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본인 SNS를 통해 탁현민의 거취는 "대통령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지만 박기영 인선은 "과학계가 불같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라며, 두 사안을 분리함으로써 탁현민 논란의 중요성을 축소하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83639335003874&id=100000734717298) 또한 22일 열린 국회운영회에서 임종석 비서실장은 박기영 인선에 대해 "국민 눈높이 맞추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며 "과학기술인의 열망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고 자성하고 있다"고 발언했지만, 탁현민에 대해 입장을 묻자 "대통령 인사권이 존중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다.(관련기사: 식약처장 해임 요구에 "좀 더 지켜봐 달라" 선 그은 임종석)
이는 손혜원 의원의 글과 마찬가지로 탁현민 논란을 바라보는 정부와 여당 의원들의 인식을 명확히 보여주며, 청와대의 일관된 무반응과 일맥상통한다. 결국 탁현민에 대해 끊임없이 이어진 문제제기, 여성계의 목소리는 "과학계"의 반발에 비하면 별 것 아닌 것,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기영에 대한 문제제기는 '국민'의 목소리로 귀담아듣고, 탁현민 논란은 대통령의 인사권 재량을 핑계로 피해가는 태도는 의제에 따라 '국민'을 다르게 설정하고, 듣고 싶은 비판만 받아들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는 여성혐오 문제가 중요한 사회의제로 여겨지지 않는 현실을 증명한다. 탁현민이 대변하고 있는 적폐의 일면들-남성문화와 그것을 공고히 하는 정치적 연대,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을 표현의 자유로 옹호하는 폐습-을 타파하자는 목소리는 정치권력을 압박할 만큼 중대한 사회 의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여전히 탁현민 논란은 개인의 일탈과 문 정부의 인사 검증 실패로 이해되는 것에 그치기 때문에 젠더 이슈로의 공론화는 요원해 보인다. 여론이 폭발적이고, 탁현민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고 해도 젠더 이슈가 국민들에게 중요한 사회문제로 공론화되지 않는다면 탁현민의 사퇴는 힘들어질 것이며, 사퇴한다고 해도 그 여부 자체는 이미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된다.
촛불 시위 과정에서 논란이 되었던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 발언, 여성 시위참여자에 대한 성희롱‧추행 사건 등은 탄핵 국면에서 휘발되었고,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는 '민주주의 혁명'과 같은 거대한 이슈의 흐름 앞에서 언제나 '사소한' 것으로 부차시 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지난 촛불 시위 당시, 폭력과 혐오를 가시화시켜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여성에게 안전한 광장을 만들기 위해 '페미존'이 만들어지기도 했다.(관련기사: 페미당黨, 제1 공약은 페퍼 스프레이 무상 지급!) 하지만 강남역과 왁싱샵 살인사건을 통해 확인했듯이 여성은 여전히 일상생활 속에서 무수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여성 의제는 절박한 현실 속에서의 외침이며, 생명을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목소리기에 결코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젠더 이슈를 삭제하는 한국 사회
탁현민 논란의 본질을 삭제하는 1차 책임자는 언론이다. 탁현민 논란이 스포츠신문 연예란에서 보도되는 행태를 보면, 이 사안이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흥밋거리로 소비됨을 알 수 있다. 탁현민과 안경환 논란의 국민적 관심도는 폭발적이었고, 지속적이다. 한국 사회는 자극적인 스캔들을 원한다. 자극을 원하는 대중을 위해 언론은 젠더 이슈와 공직자윤리 문제를 섹스 스캔들로 만들어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여성혐오를 되풀이해 온 무구한 역사의 적폐는 탁현민 개인의 독특한 성적 취향이나 남성의 생물학적 본능으로 치환된다. 언론은 고위 공직자의 여성혐오 발언을 유희를 위한 스캔들로 소비함으로써 탁현민의 저서를 살아 숨 쉬게 했던 강간 문화의 토양을 재생산한다. 따라서 탁현민 논란은 이슈 그 자체로 휘발되고, 성평등 관점에서의 문제제기는 삭제된다.
그러나 탁현민 사안이 젠더 이슈로 공론화되는 것을 막는 가장 거대한 장애물은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극단적 진영 논리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진영 간 편 가르기, 대결구도는 여전히 공고하며, 탁현민 논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보수 언론과 야당은 탁현민 사안을 상식 대 비상식이 아닌, 친문 대 반문 프레임 안에 가둠으로써 논의 자체를 봉쇄해 버렸다.
이의 반대급부로 문 지지자들은 탁현민에 대한 비판을 문 정권 흠집 내기로 매도하고 극렬히 반발했다. 따라서 이는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제도권, 일반 시민들, 우리 사회 전체에 팽배한 문제이다. 또한 정치 성향의 차이와는 별개로, 좌우 진영을 지배하는 병폐이다. 좌우 진영 모두 극단적 대결구도에 여전히 천착하여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향한 폭력, 혐오 문제를 진영 논리로 해석한다. 이에 대한 분석과 근거는 다음 회차들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 [2회차] 언론 속 탁현민과 문재인 대통령의 대응
□ [3회차] 보수 진영에 의해 오용되는 페미니즘
□ [4회차] 진보 진영에 의해 밀려나는 페미니즘, "문재인을 지켜야만 한다."
* 본 기사는 지난 7월부터 탁현민 퇴출을 촉구하는 서명운동과 기자회견을 함께 해온 (사)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의 김시운 인턴활동가에 의해 쓰여졌습니다.
탁현민은 뜨거운 감자였다
탁현민 논란을 바라보는 국민적 관심도는 꾸준했다. 논란이 점화된 5월 24일부터 현재 8월 24일까지 약 3달간의 시간 동안 2300여개의 관련 기사들이 쏟아졌다. 특히 <남자 마음 설명서> 논란이 불거진 5월 24-26일,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 2차 논란이 시작된 6월 21-23일을 기점으로 많은 기사들이 양산되었다. 7월에도 이 흐름은 이어졌다. 여성가족부 장관의 해임 건의, 경향신문과의 단독인터뷰, 기업인들과의 호프 미팅 등의 사건이 있을 때마다 탁현민은 지속적으로 여론의 관심을 받아왔다.
▲ 이 그래프는 네이버에서 해당검색어가 검색 및 클릭된 횟수를 일별/주별/월별 각각 합산하고 조회기간 내 최대 검색량을 100으로 표현하여 상대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 |
ⓒ 네이버 |
문 대통령 당선 이후의 네이버 검색어 트렌드를 보면 탁현민이 지속적으로 화제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5월 9일부터 현재까지의 트래픽을 분석하여 누계값을 구한 결과, 탁현민의 관심도 누계치는 178로, 강경화 외교부장관(누계치 303)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누계치 193)에 이은 3번째 순위를 차지했다. 하루 동안의 관심도 최댓값은 47로, 박기영(최대 95), 안경환(최대 77)에 비해 낮았지만 꾸준히 이슈가 생성되었고 관심도 누계치는 이들을 앞섰다.
탁현민에 대한 관심은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광화문 1번가'를 통해서도 표출되었다. 5월 24일 이후, 탁현민 사퇴를 촉구하는 글들이 문자메시지를 포함해 약 160건 정도 홈페이지에 올라왔다. 검증과정에서 위장전입 논란이 있었던 강경화 장관 관련 글들이 대부분 사퇴 반대를 촉구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탁현민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의 다수는 본인이 문재인 정부의 지지자임을 밝히면서 그를 비판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페미니스트 정부'가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뒤틀린 성 인식을 지닌 탁현민에게 공직자의 역할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현민은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고, 그의 '산뜻한' 활약도 계속되었다.
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일개' 행정관의 누계 트래픽이 장관들보다 높다는 것 그리고 쏟아지는 사퇴 여론에도 탁현민이 여전히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탁현민이 '일개' 행정관이 아니며, 그의 저서에서 나타난 여성혐오적 발언들이 '일개' 행정관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수용되고 승인되고 있다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사소한' 여성혐오?
▲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이 지난 8월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독립유공자 및 유족과의 오찬 행사에 참석해 있다. | |
ⓒ 연합뉴스 |
시민들과 사회가 공직자 인선 기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양적 데이터로 증명된, 탁현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관심을 긍정적으로만 해석해야 할지는 의문이다. 한국 사회가 탁현민 논란을 대하는 방식은 탁현민 개인에 대한 문제로 축소되거나, 문 정부에 대한 옹호와 비판 사이의 논쟁으로 귀결되며, 성평등 가치에 대한 공론화나 사회적 합의로 확장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는 5월 24일 이후, 현재까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청와대의 태도에서 엿볼 수 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 정부는 국민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를 국정에 적극 반영하고 있다. 이렇게 민심에 기대고 있는 문 정부가 탁현민의 거취를 용인하고 있는 것은 역으로 페미니스트 이슈가 청와대를 압박할 만큼 사회 주요의제로 여겨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물론 탁현민의 업무 능력에 대한 신뢰도가 높고, 대통령과의 관계가 긴밀하기 때문에 그를 내치지 않는다는 항간의 추측은 일면 합리적이다. 그러나 반대여론이 거세다면 청와대가 탁현민을 묵인하는 정치적 부담을 지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크게 비판을 받은 박기영 전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이 임명 나흘 만에 낙마한 사례와 비교해 보면 이러한 무반응과 버티기는 더욱 돋보인다. 친문으로 분류되는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본인 SNS를 통해 탁현민의 거취는 "대통령께서 알아서 하실 일"이지만 박기영 인선은 "과학계가 불같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라며, 두 사안을 분리함으로써 탁현민 논란의 중요성을 축소하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1683639335003874&id=100000734717298) 또한 22일 열린 국회운영회에서 임종석 비서실장은 박기영 인선에 대해 "국민 눈높이 맞추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며 "과학기술인의 열망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고 자성하고 있다"고 발언했지만, 탁현민에 대해 입장을 묻자 "대통령 인사권이 존중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고 옹호하는 입장을 취했다.(관련기사: 식약처장 해임 요구에 "좀 더 지켜봐 달라" 선 그은 임종석)
이는 손혜원 의원의 글과 마찬가지로 탁현민 논란을 바라보는 정부와 여당 의원들의 인식을 명확히 보여주며, 청와대의 일관된 무반응과 일맥상통한다. 결국 탁현민에 대해 끊임없이 이어진 문제제기, 여성계의 목소리는 "과학계"의 반발에 비하면 별 것 아닌 것,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기영에 대한 문제제기는 '국민'의 목소리로 귀담아듣고, 탁현민 논란은 대통령의 인사권 재량을 핑계로 피해가는 태도는 의제에 따라 '국민'을 다르게 설정하고, 듣고 싶은 비판만 받아들이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는 여성혐오 문제가 중요한 사회의제로 여겨지지 않는 현실을 증명한다. 탁현민이 대변하고 있는 적폐의 일면들-남성문화와 그것을 공고히 하는 정치적 연대,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을 표현의 자유로 옹호하는 폐습-을 타파하자는 목소리는 정치권력을 압박할 만큼 중대한 사회 의제로 여겨지지 않는다.
여전히 탁현민 논란은 개인의 일탈과 문 정부의 인사 검증 실패로 이해되는 것에 그치기 때문에 젠더 이슈로의 공론화는 요원해 보인다. 여론이 폭발적이고, 탁현민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고 해도 젠더 이슈가 국민들에게 중요한 사회문제로 공론화되지 않는다면 탁현민의 사퇴는 힘들어질 것이며, 사퇴한다고 해도 그 여부 자체는 이미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된다.
촛불 시위 과정에서 논란이 되었던 사회적 약자를 향한 혐오 발언, 여성 시위참여자에 대한 성희롱‧추행 사건 등은 탄핵 국면에서 휘발되었고,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는 '민주주의 혁명'과 같은 거대한 이슈의 흐름 앞에서 언제나 '사소한' 것으로 부차시 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지난 촛불 시위 당시, 폭력과 혐오를 가시화시켜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여성에게 안전한 광장을 만들기 위해 '페미존'이 만들어지기도 했다.(관련기사: 페미당黨, 제1 공약은 페퍼 스프레이 무상 지급!) 하지만 강남역과 왁싱샵 살인사건을 통해 확인했듯이 여성은 여전히 일상생활 속에서 무수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여성 의제는 절박한 현실 속에서의 외침이며, 생명을 스스로 지키고자 하는 목소리기에 결코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어서는 안 된다.
젠더 이슈를 삭제하는 한국 사회
탁현민 논란의 본질을 삭제하는 1차 책임자는 언론이다. 탁현민 논란이 스포츠신문 연예란에서 보도되는 행태를 보면, 이 사안이 대중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흥밋거리로 소비됨을 알 수 있다. 탁현민과 안경환 논란의 국민적 관심도는 폭발적이었고, 지속적이다. 한국 사회는 자극적인 스캔들을 원한다. 자극을 원하는 대중을 위해 언론은 젠더 이슈와 공직자윤리 문제를 섹스 스캔들로 만들어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여성혐오를 되풀이해 온 무구한 역사의 적폐는 탁현민 개인의 독특한 성적 취향이나 남성의 생물학적 본능으로 치환된다. 언론은 고위 공직자의 여성혐오 발언을 유희를 위한 스캔들로 소비함으로써 탁현민의 저서를 살아 숨 쉬게 했던 강간 문화의 토양을 재생산한다. 따라서 탁현민 논란은 이슈 그 자체로 휘발되고, 성평등 관점에서의 문제제기는 삭제된다.
그러나 탁현민 사안이 젠더 이슈로 공론화되는 것을 막는 가장 거대한 장애물은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극단적 진영 논리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진영 간 편 가르기, 대결구도는 여전히 공고하며, 탁현민 논란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보수 언론과 야당은 탁현민 사안을 상식 대 비상식이 아닌, 친문 대 반문 프레임 안에 가둠으로써 논의 자체를 봉쇄해 버렸다.
이의 반대급부로 문 지지자들은 탁현민에 대한 비판을 문 정권 흠집 내기로 매도하고 극렬히 반발했다. 따라서 이는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제도권, 일반 시민들, 우리 사회 전체에 팽배한 문제이다. 또한 정치 성향의 차이와는 별개로, 좌우 진영을 지배하는 병폐이다. 좌우 진영 모두 극단적 대결구도에 여전히 천착하여 사회적 약자, 소수자를 향한 폭력, 혐오 문제를 진영 논리로 해석한다. 이에 대한 분석과 근거는 다음 회차들에서 자세히 다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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