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204] (경향) 짓밟힌 성소수자 인권…보수결집의 제물로 삼는 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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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8-03-09 09:41 조회2,717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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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밟힌 성소수자 인권…보수결집의 제물로 삼는 야권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충청남도 도민 인권 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충남인권조례)가 천주교와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 폐지됐다. 과거 여당이던 보수야당은 스스로 만든 인권조례를 불과 6년 만에 자신들의 손으로 폐기했다. ‘충청남도 도민 인권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 폐지 조례안’은 2일 재석의원 37명 중 찬성 25명, 반대 11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앞서 자유한국당 소속 24명, 국민의당 소속 1명 등 도의원 25명은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을 공동발의했다. 사실상 조례 제정 이후 동성애를 반대하며 지속적으로 폐지를 주장해온 기독교계와 손을 잡은 셈이다. 충남인권조례는 2012년 5월 당시 자유선진당 소속이던 송덕빈 도의원(현 자유한국당)과 과거 새누리당 도의원들 주도로 제정됐다. 충청남도는 2014년 10월 충남인권조례 제8조(인권선언 이행)에 근거해 ‘충남도민 인권선언’을 선포하기도 했다. 충남기독교연합은 그러나 인권선언문 제1조의 문구를 문제삼으며 지속적으로 조례폐지운동을 벌여 왔다. 인권선언문 제1조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전과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기독교연합은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동성결혼 옹호 및 일부일처제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까지 나서 지난 1월 31일 “일부 집단이 성소수자 차별 금지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주민 전체의 인권보장 체계인 인권조례를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항의성명을 냈지만 폐지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충남인권조례 결국 폐지
왜 한국당은 자신들의 손으로 일궈낸 ‘성과’를 스스로 무너트렸을까. 인권활동가들은 원인의 시발점으로 지난해 대선토론을 꼽았다. TV토론에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로부터 동성애 찬반 질문을 받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동성애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토론회 직후 성소수자 인권단체를 중심으로 문 후보 진영에 항의가 쏟아졌다. 문 후보는 이틀 뒤 “성소수자에게 아픔을 준 것 같아 여러 가지로 송구스럽다. (성소수자 문제는) 허용하고 말고의 찬반문제가 아니며, 사생활에 속하는 부분”이라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보수진영은 문 후보의 실책을 놓치지 않았다. 성소수자 문제가 정권을 공격하고 잃어버린 표심을 결집하는 ‘효과적인 제물’이 된 것이다. 실제 문재인 정권이 집권하면서부터 정치권을 중심으로 동성애·동성혼 문제를 들고 오는 사례가 늘어났다. 지난해 대법원장·헌재소장 인사청문에서 야당의원들은 후보자들에게 “동성애를 옹호하느냐”는 질문으로 일종의 ‘사상검증(?)’을 시도했다. 당시 정치권 내부에서는 야당이 후보자를 낙마시키기 위해 동성애 이슈를 정략적으로 들고나왔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태흠 자유한국당 의원 등 한국당 소속 의원 17명은 지난해 9월 19일 국가인권위원회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인권위법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발언을 막음으로써 동성애가 만연하고, 에이즈 감염이 급증했기 때문에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안 이유를 살펴보면 ▲인권위법이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성적 지향’을 규정함으로써 동성애(동성 성행위)가 옹호·조장돼 왔고 ▲동성애에 대한 건전한 비판 내지 반대행위 일체가 오히려 차별로 간주돼 엄격히 금지됐고 ▲그 결과 성 정체성이 확립되기 전인 청소년 및 청년들에게 악영향을 주고 ▲신규 에이즈 감염이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급증하는 등 수많은 보건적 폐해들이 초래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도 유사한 개정안을 발의하려다 현재 한 발 물러선 상태다. 김경진 의원은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가 개정한 차별금지 사유에 ‘성적 지향’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은 인권위법 개정안 발의를 제안하려다 시민단체의 반발로 보류했다. 김 의원은 ‘성적 지향’이라는 표현이 동성애에 대한 긍정적 표현으로 인식될 수 있어 국가인권위법 제2조 3호의 ‘성적 지향’을 삭제하자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성소수자=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이라는 프레임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로 분석된다.
새로운 색깔론으로 정치적 이용
일각에서는 종북 프레임이 힘을 잃었기 때문에 성소수자 문제가 정쟁(政爭)의 제물이 됐다는 지적이다. 종북몰이가 더 이상 보수를 결집시키는 이슈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대체재로 동성애를 들고 나온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 이후 중거리탄도미사일 발사까지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과 위협으로 ‘전술핵무기 재배치’ 등 안보 논란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도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67.1%를 기록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각각 49.3%, 18.4%를 기록했다.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에도 불구하고 자유한국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흩어진 보수세력의 지지율을 흡수하지 못한 것이다(2017년 9월 18일 리얼미터 발표자료). 최근 평창올림픽을 두고 ‘평양올림픽’ 프레임을 들고나와 종북몰이를 시도했지만 여전히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60%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독교인의 표심은 보수세력 결집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 통계청이 2016년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집계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독교 인구는 2005년 844만여명에서 2015년 967만여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전체 인구수의 19.7%에 달하는 수준이다. 현재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19.7%다(2018년 2월 1일 리얼미터 발표자료).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실제로도 종교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산정책연구원이 2015년 4월에 낸 ‘한국 유권자와 이슈 Ⅲ: 성소수자(LGBT) 인식’에 따르면 한국인의 성소수자에 대한 태도는 평소 믿는 종교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개신교 신자의 70.6%는 ‘성소수자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고 답했고, ‘거부감이 없다’고 답한 비율은 23.6%에 그쳤다. 반면 종교가 없는 응답자의 48.9%만이 거부감이 있고, 39.6%는 거부감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천주교 신자는 41.9%가 ‘성소수자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고 답한 반면 ‘거부감이 있다’고 한 비율은 49.4%로 개신교에 비해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연구원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애에 대해 포용력을 보여준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천주교인의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 의견 역시 비종교인에 비해서는 높은 편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여세연) 부대표는 “보수 기독교단체는 오래 전부터 성소수자 혐오와 관련한 준비를 꽤 조직적으로 해왔고, 그들의 이해와 자유한국당 및 보수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수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상임활동가도 “자유한국당은 소수자 인권을 볼모로 정치생명을 연장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촛불집회 이후로 자유한국당은 이데올로기적으로 써먹을 수 있는 전략이 거의 없어진 상태”라며 “결국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새로운 색깔론처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는 것도 성소수자가 보수야당의 공격 대상이 되는 요인으로 설명했다. 6·13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야 할 야당 입장에서 성소수자 문제는 가장 ‘핫한 제물’이라는 지적이다. 이동진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소수자의 문제는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과거 10년 전보다 후퇴하고 있다”며 “한국은 기독교 쪽에서 성소수자를 문제 삼으면 선거국면에서 정치권의 동력이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성소수자 문제가 표심 결집에는 유효한 이슈가 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 교수는 “정당은 지지세력의 요구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부끄러움 모르는 혐오표현들
정치권이 성소수자의 인권은 외면한 채 정쟁의 제물로 이용하는 동안 이들에 대한 혐오표현은 점점 여과없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대구의 한 어린이집 원장이 봉사활동을 온 초등학교 5~6학년 학생 18명에게 성소수자 혐오 내용이 담긴 동영상을 보여주고 “성소수자들은 동물이나 시체와 성관계를 한다”고 설명한 혐의(아동학대)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해당 영상은 서울의 한 대형교회에서 제작한 것을 편집한 내용으로 “독립유공자보다 에이즈 환자에 대한 예우가 더 좋다. 대한민국에 살려면 에이즈환자가 돼야 한다. 성소수자를 옹호하고 동성애운동을 하는 단체들은 공산주의자이고, 세력화돼 있다”는 등의 발언이 담겨 있다. 중학교 국어교사가 ‘성매매를 하다가 에이즈에 걸린 동성애자’ 시각자료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동성애에 대한 혐오감을 조장하는 발언이 뒤늦게 알려져 서울교육청이 사태수습을 하는 일도 벌어졌다. 권수현 부대표는 “보수기독교와 일부 기성세대들은 여전히 성소수자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탕으로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고, 혐오표현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다”며 “다만 젊은 세대들의 경우 인권의식 수준이 점차 높아지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SOGI(Sexual Orientation Gender Identity) 법정책연구회가 지난해 발간한 <한국 LGBT 인권현황 2016>에 따르면 한국 성소수자의 인권지수는 유럽 49개국과 비교했을 때 44위에 해당하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과 성소수자 인권수준이 비슷한 나라는 벨라루스, 우크라이나가 있으며, 한국보다 낮은 지수를 보인 국가는 우크라이나, 터키, 러시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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