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213] (한겨레) '엄마됨'을 강요하는 사회, 육아서도 자기계발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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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8-03-09 09:34 조회2,56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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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됨'을 강요하는 사회, 육아서도 자기계발서처럼
» 지난 11일 서울 서대문구 이진아기념도서관에서 <엄마의 독서>를 쓴 정아은 작가와 ‘정치하는 엄마들’ 소속 엄마들이 집담회를 열어 ‘엄마들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했다. 공고한 모성 신화를 깨고 성별 역할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왼쪽부터 김정덕, 성지은, 정유진, 정아은, 백소현, 정주은, 이진옥.
엄마들이 말하는 `엄마의 오늘'
“저는 기존 육아서에서 ‘엄마가 일관성을 갖고 엄마가 중심을 잡고 뭔가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에 불만이 많았어요. 사실 교육 정책이고 뭐고 계속 바뀌는데 어떻게 엄마 혼자 중심을 잡나요?”
7살, 5살 두 아이를 키우는 백소현(40)씨가 말문을 텄다. 지난 11일 서울 서대문구 이진아기념도서관 무한상상실에서 <엄마의 독서>의 저자 정아은 작가와 ‘정치하는 엄마들’의 분과 모임 ‘엄마들의 책장’ 소속 엄마 7명이 만났다. 이날 자리는 <한겨레> 육아 웹진 ‘베이비트리’가 만들었다.
<엄마의 독서>는 기존 육아서와는 결이 다르다. 자녀 양육에 관한 성공담도 아니고, 구체적인 양육법에 관한 책도 아니다. 다만 작가가 엄마가 되면서 겪은 ‘날것’ 그대로의 경험을 전한다. 양육 과정의 시행착오도 여실히 드러낸다. 또 다양한 책을 통해 ‘엄마됨’의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짚는다. 비슷한 맥락에서, 지난해 생긴 단체 ‘정치하는 엄마들’도 사회가 요구하는 엄마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기보다 왜 ‘엄마됨’을 강요받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또 엄마가 된 뒤 알게 된 다양한 사회적 모순에 대해 함께 얘기하고 공론화한다. 정 작가와 ‘정치하는 엄마들’의 집담회를 통해 이 시대의 엄마들이 느끼는 현실, 사회적 모순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늘 악마 같은 내가 결국 튀어나와”
기존 육아서의 프레임에 대한 비판과 함께 사회에 공고한 ‘모성 신화’에 대한 이야기부터 터져 나왔다. 5살, 3살 아이를 키우는 정유진(39)씨도 “기존 육아서를 보면 숨이 막히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마치 자기계발서를 통해 자기 계발을 강요당하듯, 육아서를 통해 좋은 엄마, 완벽한 엄마에 대한 압박감을 받았단다.
“저는 육아서의 엄청난 신봉자였어요. 불안하고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겠는데, 그게 길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죠. 육아서가 시키는 대로 정말 잘해서 좋은 엄마가 될 거라는 욕심이 강했죠. 그런데 안 되는 거예요. 늘 악마 같은 내가 결국 튀어나오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게 육아서대로 한다고 될 게 아니라는 것을 경험과 다른 책들을 통해 알게 됐어요.”
<엄마의 독서> 책 낸 정아은 작가와
‘정치하는 엄마들’ 등이 만났다
육아서를 보면 숨이 막힌다고 했다
고정관념과 모성신화도 입에 올랐다
일관성 있고 완벽한 모습 부추기며
엄마라는 이유로 감정 무시하고
단지 사랑 주는 기계로 보지 않는지…
정 작가는 상당수의 육아서가 희로애락을 가진 엄마의 마음이나 엄마가 놓인 현실은 간과한 채 너무 육아를 공학적으로만 접근했다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아이에게 지극히 사랑의 말을 하라’라고 제시한다고 하자. 엄마의 입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기까지 전후 과정이 있고, 그 말이 나올 수 있는 상태가 있다. 그런데 많은 육아서는 단순하게 사랑의 말을 하라고만 훈수를 둔다. 정 작가는 “우리가 받았던 사지선다형 교육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사회의 ‘모성 신화’의 아리아가 너무 강해서 그것을 깨기도 힘들다”며 “일관성 있는 엄마, 완벽한 엄마를 강조하는 그런 사람들도 또 하나의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 것 아닐까” 하고 반문했다.
“남자라는 종족 보는 관점 변화”
책을 통해 다양한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는 그는 “좋은 책의 기준, 특히 육아서라면, 서평이나 강연 등에 대한 검색을 통해 저자가 엄마를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를 확인하라”고 말했다. 아이가 부르면 설거지를 멈추고 달려가라는 식이라면 저자는 엄마를 종합적인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것이다. 정 작가는 “단지 엄마라는 존재를 사랑을 주는 기계로 보는지, 자기감정을 지닌 인간으로 보는지를 보세요. 또 남편의 역할이 들어가 있는가, 엄마 혼자 다 떠안으라고 말하는가를 살펴보세요”라고 말했다.
» <엄마의 독서> 정아은 작가와 ‘정치하는 엄마들’의 책모임 ‘엄마들의 책장’ 소속 회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0살, 7살 아이를 키우는 정주은(37)씨는 육아 담론이 현재는 너무 엄마에게 편중돼 있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정씨는 “아빠들은 항상 예외예요. 서점 가서 보면 가끔 아빠들이 육아하기로 결심해서 육아한 아빠들의 책이 있어요. 뭔가 그런 아빠들은 자랑스러운 듯 성과물로 책을 내죠. 남자들은 참 생색내기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아빠가 육아를 동참하면 사회에서 엄청난 지지를 보내고 칭찬받는다. 그런 모습을 보며 엄마들은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여자들이 일한다고 그만큼 ‘우쭈쭈’ 해주지 않잖아요? 그런데 아빠들은 육아에 조금만 동참해도 ‘우쭈쭈’ 해요. 언제까지 우리가 ‘우쭈쭈’ 해줘야 할까요? 사실 작가님은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통찰력이 있고 정곡을 찌르지만, 유난히 남편에 대해서는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백씨가 정 작가를 ‘쿡’ 한번 찔렀다. 김정덕씨도 절실한 목소리로 물었다. “책 읽으며 눈물을 흘렸어요. ‘아, 다들 한 번쯤 이렇게 겪고 지나갔구나’ 하면서요. 바로 옆에 있는 남편과도 나눌 수 없는 그런 게 많잖아요. 그런데 책에서 독백식으로 ‘남편도 그렇게 힘들었구나’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와요. 남편과 실질적으로 대화를 하셨는지, 남편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물꼬를 틀 수 있었던 지점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육아 담론의 엄마 편중도 지적
일하는 엄마는 그만큼 칭찬 않는데
육아 동참하는 아빠 무조건 칭찬만
“성별 분리 너무 심하고 성차 과잉
자신 경험 드러내고 의제화 필요”
정 작가는 명쾌하고 통쾌한 답변을 제시하지 않았다. “남편과 소통을 해서 (가사나 육아 문제를) 풀었다거나 그런 것은 아녜요. 지금도 여전히 남편과 시간 배분을 놓고 투쟁하고 있어요. 지금도 미칠 것 같은 시간도 있고요. 다만 제 안에서 변화가 일어난 거예요. 남자라는 종족을 보는 관점의 변화라고 할까요. 결국 모든 변화는 내 안에서 일어났어요. 그 변화로 제 마음이 이전보다 편해졌어요”라고 말했다. 정 작가는 기존엔 ‘나는 불행한데 남편은 행복하다’, ‘남자는 적이다’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 캐릭터가 잘 살아있는 소설을 쓰기 위해 남자들이 쓴 책, 남성 심리학자가 쓴 책들을 읽었다. 남자들과도 대화를 많이 했다. 그런 과정에서 그는 기존 자신의 관점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냉정하고 잔혹한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소수 1%의 남성을 제외하고 남성과 여성 모두 다 같은 처지라고 느꼈다. 남성들이 가진 사회적 관계가 얼마나 알맹이가 없고 부질없는 것인지도 알게 됐다. 오히려 자신이 아이와 가진 ‘관계의 반짝반짝함’도 깨달았다.
» <엄마의 독서> 정아은 작가와 ‘정치하는 엄마들’ 소속 회원들이 집담회가 끝난 뒤 기념사진을 찍었다.
정 작가는 엄마들이 아이와의 관계에만 몰두하지 말고 사회적 관계를 확장해 남편이 아이와의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충만한 감정을 느낄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을 자꾸 만들어서 (엄마들이 밖으로) 나가야 해요. ‘네가 아빠인데 해야지’라고 강요할 문제가 아니라 정당성을 만들어 나가세요. 한번 발을 담가본 아빠는 육아의 맛, 아이의 영혼과 접속할 때 오는 기쁨을 이만큼이라도 알거든요.”
“성평등 스웨덴인이 되레 더 적극적”
한편 이날 집담회에서는 좀더 다양한 상황에 놓인 엄마들이 직접 당사자로서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고 의제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페미니스트 학자이자 이날 참가자인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한국 사회는 성별 분리가 너무 심하고 성차가 과잉된 사회”라며 “피구나 족구, 배드민턴 같은 경기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녀가 함께 스포츠를 즐기지 않는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서 진행된 학회에 참석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왜 성별 역할이나 모성 신화에 대한 불편함을 더 이야기해야 하는지 알려줬다.
“미국인과 한국인, 네덜란드인, 스웨덴인이 함께 밥을 먹었어요. 그런데 누가 가장 성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를 많이 했을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스웨덴인이었어요. 성평등이 실현된 나라에서는 그렇게 불만을 표시하고 불편함을 표현하는 것이 일상화돼 있는 거예요. 반면 성차가 심각하고 차별이 심하고 불평등이 심하면,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할 엄두조차 못 내요. 또 차이에 대한 인지도 그만큼 감각이 떨어지고요. 우리나라는 성별 역할 고정관념이 여전합니다. 모성 신화도 여전하고요. 당사자들이 더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글·사진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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