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27] (주간경향) [표지 이야기]미투는 ‘변혁적 젠더 정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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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8-03-29 15:50 조회2,626회 댓글0건본문
[표지 이야기]미투는 ‘변혁적 젠더 정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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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201803191447111&pt=nv#csidx5297710e45fec5fa12288e9a1031ca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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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여성의 정치주체는 이미 등장… 과잉된 남성성의 정치 종말 고해야
지난 3월 12일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는 한반도기 공동입장에 대한 여론조사의 결과에서 20대가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이례적인 현상을 20대 여성이 가져온 반전이라며, 한국 사회에 “젠더 정치의 등장”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그의 평가는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젠더 정치의 등장”으로 명명하는 것은 지금까지 역사 기술의 남성 편향성을 반복하는 것이다. 즉, 여성을 지속적으로 역사의 외부에 존재하게 한 남성 지식인의 실천의 연장선이다.
젠더 정치, 이는 젠더가 정치에서 구성되고 작동하는가를 보는, 즉 정치의 성별성을 연구하는 학문 주제이다. 젠더 정치는 남성에게만 보통선거권을 부여했던 근대 공화국의 탄생, 혹은 더 거슬러 올라가 여성의 재생산권을 통제하는 메커니즘으로서 가족과 국가의 탄생으로 등장하였다고 볼 수 있다. 남성이 독점한 정치가 마치 젠더와 무관한 것으로 여기는 것 자체를 젠더 정치는 문제 삼는다.
그러나 남성지배적 정치에서 여성이 가시화된 존재가 되는 순간 젠더 정치의 역동성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장덕진 교수의 “본격적인 젠더 정치”라는 해석은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여성이 집단적으로 가시화된 젠더 정치의 등장을 현재 시점에서 찾으면 곤란하다.
촛불집회 참가자의 70%는 여성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가져왔던 촛불혁명은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시민사회의 학습을 토대로 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기에 그 의미가 87년 6월항쟁처럼 재소환되지 않으면서, 촛불시위를 이끌었던 여성 주체 또한 망각된다. <경향신문> 2008년 7월 9일자, “고비마다 촛불 이끈 ‘아마조네스 부대’”라는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촛불집회 참가자의 70%는 여성이었으며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은 ‘촛불 소녀’, ‘하이힐 부대’, ‘유모차 부대’라는 특성으로 명명되었다.
더 나아가 2011년 4월부터 시작한 나꼼수(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열성적 지지자의 다수는 여성이었으며, 진보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반격한 소위 비키니-코피 사건은 진보정치의 파열음을 낸 미투 운동의 예시적 사건이자 현재 미투 운동이 이끌고 있는 젠더 정치의 서막이었다. 그리고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쳤던 광장에서 벌어진 일련의 ‘여성혐오’ 논쟁이야 말로 남성이 표준화된 정치에서 이질적 존재인 여성 대통령이 어떻게 ‘여성화’되는지 드러내는 젠더 정치의 집약적 장면들이었으며, 그에 대한 “여성혐오와 민주주의는 같이 갈 수 없다”고 외쳤던 페미니스트 세력은 미투 운동의 인프라이다.
다시 말해 장덕진 교수의 “젠더 정치의 등장”이라는 표현은 역설적으로 정치가 남성을 디폴트로 전제하고 있으며, 남성지배적 정치에서 집합적 목소리를 냈던 여성 주체를 삭제하는 전형적인 남성권력의 언어경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다른 한편 장덕진 교수의 방법론처럼 ‘여론조사’의 총량으로 ‘캐스팅 보트(casting votes)’ 권력을 지닌 유권자 집단으로서 20대 여성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역사적인 오류이다. 최근 일련의 선거에서 20대 여성과 남성의 투표 행태의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났다. 일례로 2014년 6·4 지방선거 직후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 남성은 63.5%, 여성은 74.6%가 박원순 후보를 지지한 반면, 경기지역에서는 20대 남성은 57.4%, 여성은 71.3%가 김진표 후보를 지지했다.
이번 지방선거의 새로운 관전 포인트
또한 <조선일보> 2016년 4월 16일자에 따르면, 1000장이 넘는 분량의 필리버스터 기록을 담은 책 구매자의 78.8%가 여성이었으며, 그 중 전체 구매자의 37.5%가 20대 여성이고 30대 여성(30.9%)이었던 반면, 20대 남성은 5.9%, 30대 남성은 10.7%, 40대 남성은 3.1%에 불과했다. 이는 20대 총선에서 20대 여성 유권자가 캐스팅 보트를 쥔 세력임을 예고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0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 분석을 보면 19대 총선보다 20대 남성은 8.7%포인트(43.15%→51.85%)의 증가율을 기록했던 반면, 여성은 13.45%포인트(39.95%→53.4%) 증가했다.
마지막으로 2017년 19대 대선에서 20대 투표율의 성차는 재현되었다. 방송3사의 공동 심층 설문조사로 진행된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에서는 문재인 당선인이 과반 지지를 얻지 못했는데, 특히 심상정 후보에 대한 20대 여성과 남성의 편차는 16.3% 대 8.0%로 나타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이러한 일련의 젠더 정치가 지닌 유의미성이 미투 운동으로 인해 학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 미투 운동이 한국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바일 것이다. 미투 운동은 오랜 시간 누적된 성불평등의 해소와 성폭력에 대한 종식을 외쳐온 여성들의 목소리가 용기있는 여성 발화자들을 구심점으로 집결되고 있는 것이지, 미국 할리우드에서 수입된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투 운동은 정권을 심판하는 것을 넘어 능동적으로 일상세계를 변화시키는 “변혁적 젠더 정치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열거한 것처럼 여성의 정치 주체는 이미 등장했고, 이제 새로이 등장해야 할 젠더 정치의 원본은 과잉된 남성성의 정치를 끝내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미투 운동을 통해 학습한 정당이 이길 것이다. 다시 말해, 성폭력 가해 여부를 공천 심사의 엄격한 기준으로 삼고, ‘여성’으로 재현되는 권력의 상징성을 선점하는 정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리할 것임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여성 30% 공천을 명시한 당헌·당규를 또 무색하게 한다면, 여성 후보자를 기초의회에만 내세우고 다시금 광역단체장과 지자체장, 교육감 선거에서 남성이 독식한다면, 그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
< 이진옥 (사)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지난 3월 12일 서울대 사회학과 장덕진 교수는 한반도기 공동입장에 대한 여론조사의 결과에서 20대가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이례적인 현상을 20대 여성이 가져온 반전이라며, 한국 사회에 “젠더 정치의 등장”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그의 평가는 타당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젠더 정치의 등장”으로 명명하는 것은 지금까지 역사 기술의 남성 편향성을 반복하는 것이다. 즉, 여성을 지속적으로 역사의 외부에 존재하게 한 남성 지식인의 실천의 연장선이다.
2009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1주년 기념행사에서 청소년들이 촛불소녀가 그려진 손팻말을 들고 있다. / 강윤중 기자
그러나 남성지배적 정치에서 여성이 가시화된 존재가 되는 순간 젠더 정치의 역동성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장덕진 교수의 “본격적인 젠더 정치”라는 해석은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여성이 집단적으로 가시화된 젠더 정치의 등장을 현재 시점에서 찾으면 곤란하다.
촛불집회 참가자의 70%는 여성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가져왔던 촛불혁명은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에 참여했던 시민사회의 학습을 토대로 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했기에 그 의미가 87년 6월항쟁처럼 재소환되지 않으면서, 촛불시위를 이끌었던 여성 주체 또한 망각된다. <경향신문> 2008년 7월 9일자, “고비마다 촛불 이끈 ‘아마조네스 부대’”라는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듯 촛불집회 참가자의 70%는 여성이었으며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은 ‘촛불 소녀’, ‘하이힐 부대’, ‘유모차 부대’라는 특성으로 명명되었다.
더 나아가 2011년 4월부터 시작한 나꼼수(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의 열성적 지지자의 다수는 여성이었으며, 진보 남성이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반격한 소위 비키니-코피 사건은 진보정치의 파열음을 낸 미투 운동의 예시적 사건이자 현재 미투 운동이 이끌고 있는 젠더 정치의 서막이었다. 그리고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쳤던 광장에서 벌어진 일련의 ‘여성혐오’ 논쟁이야 말로 남성이 표준화된 정치에서 이질적 존재인 여성 대통령이 어떻게 ‘여성화’되는지 드러내는 젠더 정치의 집약적 장면들이었으며, 그에 대한 “여성혐오와 민주주의는 같이 갈 수 없다”고 외쳤던 페미니스트 세력은 미투 운동의 인프라이다.
다시 말해 장덕진 교수의 “젠더 정치의 등장”이라는 표현은 역설적으로 정치가 남성을 디폴트로 전제하고 있으며, 남성지배적 정치에서 집합적 목소리를 냈던 여성 주체를 삭제하는 전형적인 남성권력의 언어경제를 드러내는 것이다.
다른 한편 장덕진 교수의 방법론처럼 ‘여론조사’의 총량으로 ‘캐스팅 보트(casting votes)’ 권력을 지닌 유권자 집단으로서 20대 여성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역사적인 오류이다. 최근 일련의 선거에서 20대 여성과 남성의 투표 행태의 차이는 분명하게 드러났다. 일례로 2014년 6·4 지방선거 직후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서울시장 선거에서 20대 남성은 63.5%, 여성은 74.6%가 박원순 후보를 지지한 반면, 경기지역에서는 20대 남성은 57.4%, 여성은 71.3%가 김진표 후보를 지지했다.
지난해 5월, 유모차를 밀고 가던 한 시민이 제19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벽보(포스터)를 보고 있다. / 이상훈 기자
이번 지방선거의 새로운 관전 포인트
또한 <조선일보> 2016년 4월 16일자에 따르면, 1000장이 넘는 분량의 필리버스터 기록을 담은 책 구매자의 78.8%가 여성이었으며, 그 중 전체 구매자의 37.5%가 20대 여성이고 30대 여성(30.9%)이었던 반면, 20대 남성은 5.9%, 30대 남성은 10.7%, 40대 남성은 3.1%에 불과했다. 이는 20대 총선에서 20대 여성 유권자가 캐스팅 보트를 쥔 세력임을 예고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0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율 분석을 보면 19대 총선보다 20대 남성은 8.7%포인트(43.15%→51.85%)의 증가율을 기록했던 반면, 여성은 13.45%포인트(39.95%→53.4%) 증가했다.
마지막으로 2017년 19대 대선에서 20대 투표율의 성차는 재현되었다. 방송3사의 공동 심층 설문조사로 진행된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에서는 문재인 당선인이 과반 지지를 얻지 못했는데, 특히 심상정 후보에 대한 20대 여성과 남성의 편차는 16.3% 대 8.0%로 나타나 거의 두 배에 달했다.
앞서 열거한 것처럼 여성의 정치 주체는 이미 등장했고, 이제 새로이 등장해야 할 젠더 정치의 원본은 과잉된 남성성의 정치를 끝내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미투 운동을 통해 학습한 정당이 이길 것이다. 다시 말해, 성폭력 가해 여부를 공천 심사의 엄격한 기준으로 삼고, ‘여성’으로 재현되는 권력의 상징성을 선점하는 정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유리할 것임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여성 30% 공천을 명시한 당헌·당규를 또 무색하게 한다면, 여성 후보자를 기초의회에만 내세우고 다시금 광역단체장과 지자체장, 교육감 선거에서 남성이 독식한다면, 그 정당에는 미래가 없다.
< 이진옥 (사)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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