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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12] (경향신문) [창간기획-성차별 사회]다음 드라마에서 ‘불편함’이 느껴지는 곳에 밑줄을 그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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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8-11-19 13:36 조회2,6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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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성차별 사회]다음 드라마에서 ‘불편함’이 느껴지는 곳에 밑줄을 그어보세요

 

“법원이 성희롱 사건을 심리할 때는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하고,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열린 교수 성추행 사건 재판에서 피해자 시각에서의 판단이 중요하다며 이렇게 밝혔다.

대법원 재판부가 ‘성인지 감수성(젠더 감수성)’이란 용어를 처음으로 언급한 순간이었다. 성희롱 사건 심리에서의 판단 기준을 최초로 제시한 판결이기도 하다.

그 배경엔 ‘미투(#MeToo·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있었다. 미투 운동의 확산으로 성인지 감수성은 사회 전 분야의 주요 의제가 됐고, 각종 이슈에서 입장을 가르는 판단 척도가 됐다.

하지만 ‘그래서 성인지 감수성이 뭔데’라고 물으며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성인지 감수성을 체크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불편함’이다. 성인지 감수성이 높을수록 성차별적 상황을 민감하게 인지하고 불편함을 느낀다.

소위 ‘인류의 보편 정서’를 공유한다는 TV 드라마 속 상황을 통해 성인지 감수성을 체크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보았다. 정해진 답은 없다. 불편한 부분에 밑줄을 그어보자. 밑줄이 많으면 많을수록 당신은 성인지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감수를 맡은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의 소감은 이렇다. “성인지 감수성은 성평등적 시각을 드라마에 투영해 성평등 문화를 구현하자는 캠페인의 단순한 규범적 기준이 아니다.

이는 기존의 ‘여성’과 ‘남성’ 이미지가 제약하고 있는 고리들을 해체할 수 있는 열쇠이며, 창조적인 문화 산업에서는 근본적인 ‘새로움’을 만드는 창작의 오리지널리티 요소이다.”

■tvN ‘아는 와이프’

한 번의 선택으로 달라진 현재를 살게 된 운명적인 러브스토리를 그린 드라마. 초현실적인 힘에 의해 과거로 돌아가게 된 차주혁(지성)은 아내 서우진(한지민)이 아닌 첫사랑 이혜원(강한나)과의 결혼을 선택한다. 재벌 그룹의 외동딸인 혜원과의 결혼으로 주혁의 삶도 완전히 변했다. 어느 날 주혁은 결혼식 참석을 위해 서울을 찾은 부모님을 집으로 모시고, 퇴근 후 돌아온 혜원은 시부모를 보고 놀라는데.

4회(2018년 8월9일 방영)

#1. “숙소는… 호텔 괜찮으시죠? 스위트룸으로 할게요. 베드는 킹으로 하고.” 혜원은 시부모에게 호텔 투숙을 제안한다. 혜원이 호텔로 전화를 걸자 주혁이 혜원의 휴대폰을 낚아챈다. “너 지금 뭐하는 거야?” 주혁의 말에 혜원이 날카롭게 받아친다. “그러는 자기는 뭐하는 거야? 전화 도중에 예의 없게.” 주혁의 목소리가 커진다. “예의? 지금 예의 없는 게 누군데. 너한텐 시부모님이야.” 혜원은 “그래. 어려운 분들이시지. 그런 분들이 연락도 없이 갑자기 이렇게 쳐들어오는 거 그거야말로 진짜 매너 없는 거 아냐? 아무리 부모자식간이어도?”라고 말하며 팔짱을 낀다. 말싸움은 계속된다. “내가 오시라고 했어. 엄마 아빠 오시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서.” 주혁이 말하자 혜원이 울상을 하며 속사포로 말을 이어간다. “그럼 내 입장은? 당장 저녁도 막막하고 여섯시면 아침 드시는 분들이시잖아. 어머님, 아버님. 나더러 어쩌라고 아줌마도 없이.” 주혁이 혜원을 한심하다는 듯 본다. “진수성찬을 원하시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간단히….” 혜원이 주혁의 말을 끊는다. “그래도 싫어. 부담스러워. 내 집에 남이 묵는 것도 싫고.” 주혁이 화난 표정으로 힘주어 묻는다. “뭐? 남?” 혜원은 누그러진 표정으로 주혁을 설득하듯 부드럽게 말한다. “호캉스란 말도 있잖아. 이번 참에 두 분 호텔 묵고….” 이번엔 주혁이 혜원의 말을 끊는다. “진짜 위해서 그런 거 아니잖아. 너 편하자고 그런 거지.” 이때 아래층에서 ‘쿵’ 하는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JTBC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성형수술로 새 삶을 얻을 줄 알았던 강미래(임수향)가 대학 입학 후 진짜 아름다움을 찾아간다는 내적 성장 드라마. 대학 축제가 시작되고, 학생회 남학생들은 외모 순위 ‘상위권’을 차지한 여학생들에게 축제 주점 서빙을 맡긴다. 그러던 중 서빙을 하던 학생들이 하나둘 사정이 생겨 자리를 비우고, 학생회 간부들은 난처해하는데.

6회(2018년 8월11일 방영)

#2. “야, 서빙은 여자가 해야지. 남자가 하면 주점에 누가 오냐?” 남자 선배들이 볼멘소리를 하자 순간 여자 후배들의 얼굴이 굳는다. “이 정도 인원이면 될 것 같은데요?” 조리대에 서 있던 태희(이예림)는 함께 서빙을 하자고 제안한다. 학생회 선배는 한심하다는 얼굴로 말한다. “얘들아. 여자면 다 여자가 아니잖아. 그러게 이런 일을 대비해서 평소에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좀 좋아? 유니폼은 못 입는다 쳐도 얼굴은 돼야 되는데….” 선배는 여자 후배를 한 명씩 쳐다보며 말한다. “일단 윤별이 너는 여자처럼 보이려면 이 머리부터 기르고. 태희 넌 살 좀 빼라니까. 은이 넌 좀 웃고 다녀라. 여자가 좀 사근사근 웃고 다니는 맛이 있어야지.” 선배의 지적에 태희는 주점 밖에서 눈물을 터뜨린다. 그런 태희의 곁으로 학생회장 태영(류기산)이 다가온다. “미안하다. 저 녀석들 저러는 거 한 번 혼냈어야 됐는데, 주점도 진행해야 되고 해서 계속 넘어가버렸네. 미안. 마음 풀어.” 태희가 울먹이며 말한다. “더 짜증나는 게 뭔지 아세요? 그런 품평에 나도 모르게 날 계속 끼워맞추고 있는 거예요. 매일 살 빼야지 살 빼야지 하면서.” 태영은 태희 옆에 붙어 앉으며 말한다. “나 같은 남자도 많아. 좀 통통하고 귀여운 스타일 좋아하는. 그러니까. 외모만 가지고 말하는 게 아니라 말하거나 행동하는 것들이 다 귀엽다는… 그러니까 바꿀 필요없다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마.” 태희의 표정이 한결 밝아진다.
 

■JTBC ‘힘쎈여자 도봉순’

선천적으로 어마무시한 괴력을 타고난 도봉순(박보영)과 그의 상사 안민혁(박형식), 봉순의 소꿉친구이자 첫사랑 인국두(지수)가 벌이는 힘겨루기 로맨스를 담은 드라마. 민혁의 회사에 비정규직 경호원으로 입사한 봉순은 민혁을 게이로 오해한다. 사생활이 지나치게 깔끔하고 여성을 경호원으로 뽑았다는 게 그 이유다. 봉순은 민혁이 국두에게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고 경계하는데.

4회(2017년 3월4일 방영)

#3. 회식 후 만취한 봉순과 직장 동료들이 봉순의 집 현관문으로 들어선다. 봉순의 엄마 진이(심혜진)가 비틀비틀 집 안으로 걸어들어오는 봉순을 부축하며 민혁을 향해 묻는다. “우리 봉순이 회사 사장님이시죠?” 민혁이 멋쩍게 웃으며 “네” 하고 답한다. 이때 진이의 품에 안겨 있던 봉순이 민혁에게 다가가 양볼을 꼬집는다. “엄마, 이 인간이 이거 진짜 재수없다?” 당황한 진이는 봉순을 민혁에게서 얼른 떼어낸다. “야!” 민혁에게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봉순. 그러곤 속삭이듯 말한다. “얘 게이야” 봉순은 입을 감싸고 낄낄거리며 웃는다. 그러다 문득 “아, 맞다. 쉿쉿!” 하며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댄다. 민혁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돌린다. 봉순의 주정은 이어진다. 민혁을 향해 “야, 너 이제 니가 게이라는 사실을 로그아웃 해버려!” 하고 외친다. 봉순의 대사와 겹쳐 컴퓨터 종료음이 배경으로 깔린다. 진이가 “야, 무슨 로그아웃이야. 로그인이지. 아휴. 창피해. 그만해” 하며 봉순을 말린다. 봉순은 한술 더 떠 민혁의 멱살을 잡는다. “야, 너 이씨. 너 국두한테 자꾸 찝쩍거리면 내가 진짜 죽여버린다.” 놀란 직장 동료가 달려와 말리지만 봉순은 주먹을 민혁의 얼굴 앞으로 들이밀며 한자 한자 힘주어 말한다. “너 국두 엉덩이 만지면 니 엉덩이를 내가 니 몸에서 싹 없애버릴 거야.” 동료에게 이끌려 2층 방으로 올라가는 봉순이 소리친다. “엄마~ 얘 진짜 진짜 재수없단 말이야. 나 이 인간 강냉이 싹 털고. 장렬하게 백수로 돌아갈래~”

◆혼인관계 성차별을 소재로 쓰고 ‘남 = 능동, 여 = 수동’ 편견 드러내
타인 성정체성 조롱·농담거리 취급…소수자 향한 왜곡 관념 만연

젠더 전문가·페미니스트 “나는 이렇게 봤다”

박한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 <아는 와이프>의 경우 앞서 제시된 시놉시스와 장면을 연결시켰을 때 가장 큰 문제는 혜원과 시부모의 갈등을 주혁이 다시 우진의 존재를 깨닫게 하는 장치로 쓴다는 점이다. 주혁이 과거로 돌아와 혜원과 한 결혼을 후회하게 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묘사법이 있었음에도 ‘내 부모를 모시지 않는 나쁜 며느리’로 혜원을 몰아가는 방식을 썼고 이는 지나치게 시대착오적이다. 드라마에서 주혁이 다시 과거로 돌아가 서우진을 선택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내 부모에게 살갑게 대하는, 자기 가족을 모시는 여자’이기 때문일까? 만일 제작진의 의도가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면 대체 혼인관계에서 여성들이 겪게 되는 성차별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 = 드라마 속 부부 간 계급 구성 자체가 유한계급인 여성과 무한계급인 남성으로 이뤄져 여성은 그 자체로 사회적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로 그려졌다. 더 나아가 여성은 시부모에 대한 어떠한 노동도 수행하지 않는 이기적 존재로 재현된다. 돌봄을 수행하는 입장에서 보면 혜원의 항변은 정당하다. 주혁은 아내와 상의없이 독단적 결정으로 자신의 부모를 집으로 데려왔고, 이에 대한 책임은 모두 아내에게 묻고 있다. 아내를 통해 과시성 효도를 하는 남성이 정당하게 재현되고, 시부모에게 호텔방을 잡아드리려 하는 여성이 자기중심적으로 그려지는 설정은 며느리라는 종속적 역할을 환기시키며, 남편의 아내에 대한 우위적 위상을 강조한다.

이가현 불꽃페미액션 활동가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는 여성에 대한 성별 고정관념이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서빙은 여자가 맡아야 한다’는 말은 ‘술시중은 여자가 들어야 한다’처럼 성희롱성 발언이다. 또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담겨 있다. 여자 후배의 외모를 지적하는 남자 선배는 여성을 남성의 기준에 맞춘 ‘인형’처럼 대하고 있다. 이는 여성의 외모를 마음대로 평가하고 명령할 수 있다는 왜곡된 성관념이다.

이진옥 = 여성들의 외모를 지적하는 선배의 모습 등은 기존의 성별 역할과 관점에 대해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드라마 설정에서 나온 듯하다. 하지만 태희가 살찐 자신의 몸에 대해 태영에게 하소연하고 그가 ‘통통한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말하자 위로받는다는 설정은, 앞서 태희가 남의 품평에 자신을 끼워맞추는 것에 대해 한탄하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여성의 외모 및 자존감이 남성의 관점에 의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성별 역할의 관점에서 문제가 되는 남성의 행동을 대비되는 정의로운 남성의 등장으로 해결하고 있다. 이는 남성은 능동적 주체, 여성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주체라는 이원화된 편견을 재현하는 것이다. 결국 여성은 남성들로부터 품평을 당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이들의 자존감은 남성과의 성애적인 관계에만 종속되어 있고, 이들끼리(여성과 여성) 맺는 관계나 이 문제에 대한 대화 등은 생략되며 문제 해결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가현 = <힘쎈여자 도봉순>에서 만일 봉순이 민혁을 향해 “얘 이성애자야”라고 말했다면 낄낄거리며 웃는 장면이 자연스러웠을까? 타인의 성 정체성을 농담거리로 삼아서는 안된다. 특히 성소수자의 성 정체성을 강제로 커밍아웃하는 일은 때로는 엄청나게 위험하다.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커밍아웃을 너무 가볍게 다루고 있다. ‘국두의 엉덩이를 만지지 말라’는 봉순의 대사도 문제다. 게이는 왜 남의 엉덩이를 함부로 만질 거라고 생각한 걸까. 게이에 대한 왜곡된 고정관념을 강화한 장면이다.

이진옥 = 봉순의 게이에 대한 혐오 감정은 모두 술에 취해 내뱉는 유머 섞인 조롱과 희화화로 농담처럼 취급된다. 더 나아가 민혁은 그 모든 혐오의 언어를 봉순을 좋아하는 감정으로 포용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민혁이 자신은 게이가 아니기 때문에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 묵인하는 태도로 해석되는데, 이는 혐오와 차별의 언어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의 윤리적인 문제를 모두 소거시켜 버린다.

박한희 = 사생활이 깔끔하면 게이라는 편견은 대중들에게도 만연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편견이 소수자들을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보게 한다는 점이다. 게이는 패션에 신경쓰고, 레즈비언은 남자 같고, 이주민은 게으르고, 장애인은 불쌍하고 등 소수자 집단에 대한 이러한 편견은 소수자들 역시 나와 같은 사람들이고 그 안에서도 다양한 개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무시한다. 이러한 편견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경우 해당 집단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근간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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