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623](경향신문) 배려? 결국 배제…6·13도 ‘아재들 잔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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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8-06-25 11:54 조회2,376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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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으로 해야지, 여자가 벼슬이냐.” “가산점도 주는데 경선 못하는 건 능력이 없는 거지.” 지난 4월2일 김상희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6·13 지방선거 광역자치단체장에 여성 후보의 전략공천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위는 해당 기사에 달린 댓글들이다.
당시 박영선 의원(서울시장), 양향자 최고위원(광주시장), 홍미영 전 인천 부평구청장(인천시장)이 광역단체장에 도전했다. 전략공천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여성 후보들은 경선에서 탈락했다. 민주당 광역단체장 후보 17명은 모두 남성이었다.
이번 지방선거는 촛불 이후 미투 운동의 흐름에서 치러졌다. 여성계는 이번 선거가 여성은 과소대표, 남성은 과대대표되는 정치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봤으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선거 기간 여성 후보의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고, 여성 후보가 없는 각종 토론회에서 성평등 의제는 실종됐다. 댓글 반응처럼 여성 정치인들은 능력이 없고, 그래서 선거에 나서지 못하는 걸까.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이 지난 21일 서울 중구에서 연 ‘아재 원팀 정치를 끝낼 페미니스트 정치 모색 6·13 지방선거 결과 토론회’에서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반박이 이어졌다.
■ 기울어진 운동장과 숫자의 함정
“그래도 저희 지역에서는 여성 당선인이 30% 넘게 나왔어요. 공천을 잘했다고 봅니다. 물론 기초단체장은 아쉬운데 그건 여성 후보가 워낙 없어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시·도당 공천심사를 담당했던 한 지역위원장은 선거 결과를 이같이 자평했다. ‘인물이 없어서’ ‘자질이 안돼서’는 여성 후보 공천 문제에 대해 늘 따라오는 답이다. 본선 경쟁력이 관건인데 여성 후보는 당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부대표는 “여성이라 떨어지고 남성이라 당선되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선거는 후보가 어느 정당에 속해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민주당이 호남지역 후보로 나오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당선되고 경북지역에 가면 떨어지잖아요. 권력과 자원을 갖고 있는 정당 후보로 나오면 당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의 경우 특히 그랬습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권향엽 민주당 여성국장은 불투명한 공천 과정에서 작동하는 남성 정치인 카르텔, 여성 정치인 배제 분위기가 오히려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천심사 과정에서 여성 후보, 남성 후보를 일대일로 붙여놓으면 대부분 여성이 이깁니다. 이번 지방선거 공천을 앞두고 치러진 경선에서는 일대일 구도가 나오지 않게 하려고 지역실사, 현지평가, 면접평가할 때 여성들에게 낮은 점수를 줘 경선 대상에 포함이 안되도록 하는 경향성이 보였죠. 그 과정을 극복하고 재심까지 거쳐 살아남아 기회를 얻어 당선된 여성 단체장도 있습니다.”
경선에서 여성 후보에게 부여되는 가산점 25%는 ‘성평등 공천’의 상징처럼 홍보된다. 그러나 실제로 25%가 적용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며 경선에서 가산점이 작용하는 범위도 미미하다. 여성이며 신인인 후보에게는 25% 가산점이 부여되고 신인이 아닌 여성 후보에게는 10%가 적용된다. 권향엽 국장이 언급한 것처럼 25% 적용 대상자는 경선 전 컷오프시키는 사례도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기초단체장 예비후보는 “경선을 통과하더라도 여성 후보 가산점이 경선에서 효력이 없게 하기 위해 일부러 경선 후보 수를 늘리기도 한다”며 “후보가 많을수록 표가 분산돼 가산점 효력이 미미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성 당선인 수는 1070명으로 전체의 26.7%다. 2014년 21.6%에 비하면 5%포인트 넘게, 2010년 18.7%에 비하면 8%포인트 오른 수치다. 이 수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개선되고 있다는 신호일까. 그러나 숫자 이면에는 숨겨진 유리천장이 있다. 지방선거 도입 이후 광역단체장 여성 당선인은 0명이었다. 기초단체장 수는 2014년 4%에서 이번 3.5%로 오히려 감소했다.
물론 여성 기초의원 당선인 비율은 30.8%이고 특히 기초의원 중 여성 비례대표 비율은 97%에 달했다. 비례대표 순위 홀수에는 여성을 추천해야 함을 명시한 공직선거법 제47조 3항 때문이다. 그러나 여성의무할당제가 실질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여기까지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지방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여성 할당 30%를 권고조항으로 두고 있다. 이 권고조항을 지키는 정당은 없다. 전혀 지켜지지 않는 권고조항을 강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들이 있었지만 번번이 극렬한 저항에 부딪혔다. 2010년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는 국회의원 지역구별로 기초의원이나 광역의원에 여성 후보 1명을 의무공천하는 합의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법제사법위로 올라간 합의안은 본회의로 넘어가지 못하고 정개특위로 되돌아왔다. 여야가 합의한 내용을 법사위에서 다시 되돌리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이후 농어촌지역이나 각 당의 약세지역에 여성 의무공천을 예외로 두는 규정이 추가됐다.
2012년에는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 한명숙 당시 대표가 공직선거법의 절반 수준인 ‘지역구 여성 15% 의무공천’ 원칙을 내세웠지만, 정청래 전 의원 등 당내 남성 의원들이 ‘한명숙 이대 라인’을 언급하며 당 지도부를 공격해 결국 반영하지 못했다. 비례대표 성별교호순번제는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지역구 할당제를 반대하는 명분으로 작동한다. 권수현 부대표는 “비례대표 50% 할당제도는 여성들이 지역구에 전략공천을 요구하거나 30% 할당을 요구할 때마다 반대의 명분으로 제시된다”고 말했다. “이미 비례에서 50% 할당을 줬는데 더 요구한다는 식이죠. 비례대표는 전체 의석의 10%밖에 안돼요. 10%에서 절반 줬으니 더 이상 전략공천 요구하지 말고 지역구에도 나오지 말라는 겁니다.”
여성 전략공천 하자고 하면
“벼슬이냐” “능력으로 해야지”
민주당도 기초단체장 1명만
본선 경쟁력 이유 내세우지만
성별보다 결과는 정당이 중요
‘성평등 공천’ 상징 내세우는
가산점 25%는 숫자의 함정
지역 실사·면접 때 낮은 점수
경선후보 늘려 표 분산하기도
광역단체장 이번에도 여성 ‘0’
숨겨진 유리천장 깨기 또 실패
제도권 안과 밖 여성연대 ‘절실’
“여성 과반제 녹색당 모범사례”
■ 여성 중견정치인의 부재
이러한 환경에서 여성 신인정치인이 중견정치인으로 성장하기는 어렵다. 그나마 있던 제도도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초의원이 다음에 광역의원에 도전할 경우 여성 가산점이 25% 부여됩니다. 그러나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장 했던 여성 후보가 광역단체장에 도전하면 경선에서 가산점을 10%만 줍니다. 이 경우도 25%를 줘야 한다고 봅니다. 예컨대 서울 중구 지역위원장이 광역단체장에 출마하면 48개 지역위원회를 포괄하게 됩니다. 25%의 가산점을 주는 게 일관성 있습니다.”(권향엽 국장) 기초에서 광역으로 올라가는 진입로는 열어두어도 지역위원장에서 광역단체장으로 가는 진입로는 막았다. 여성이 올라올 수 있는 선을 미리 그어놓은 셈이다.
1991년 인천에서 기초의원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한 홍미영 전 인천시장 예비후보는 이후 국회의원, 부평구청장 등 역량을 키워가며 올라갔다. 2010년 부평구청장에 출마하면서 전략공천을 받았는데 해당 지역위원장이 ‘여성 후보 전략공천 안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격렬한 반발이 이어졌다. 이번 인천시장 전략공천을 요구하는 과정에서도 비슷한 반발에 직면했다. “경선에서 지역위원장 권한이 커요. 기득권 남성에게 유리하게 경선 방법을 정하고 성평등에 위배되는 행동을 서슴없이 하기도 하죠. 지역위원장은 지방정치를 잘할 사람보다는 2년 후 총선에서 자기 권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사람을 밀어줘요.”
홍 전 후보는 “많은 여성 후보가 본선보다 경선이 어렵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6번의 본선에서는 떨어진 적이 없지만 경선에서는 3번 밀려났다. “당내 경선은 돈과 조직이 기본이 되는 정치적 충성싸움인데 많은 여성 후보들이 돈과 조직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226명의 지역위원장 중 여성 숫자는 현저히 적다. 당원 명단 관리처럼 현장과 맞닿아 있는 일을 하는 사무국장의 여성 수도 적다. 이런 상황에서 전략공천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이나마 교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기초단체장 전략공천을 29곳까지 할 수 있었으나 여성은 1명뿐이었다.
■ 제도 안팎 여성의 연대
정치권에 진입한 여성 정치인들과 제도권 바깥 ‘여성연대’의 현실적 간극은 크다. 이 간극을 어떻게 좁히느냐가 여성 정치세력화의 관건인 셈이다. 권향엽 국장은 “여성 정치세력화를 위해 전략적으로 여성 우선 공천지역을 지정해 여성들끼리 파이를 확보한 후 자체 내부경쟁을 하면 좋겠다고 했던 지역이 있었다. 물론 남성 정치인들이 용인하지 않는다. 그걸 각오하고 연대해 여성들의 파이를 키우는 데 힘을 쏟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일단 공천을 받아야 하는데 어차피 남자들이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들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홍미영 전 후보는 “여성 정치인이 연대해야 하는데 일단 들어가면 버텨야 하기 때문에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반면에 여성 정치인이 연대를 하면 비주류로 가게 되고 그럼 지역구를 받지 못하게 되고 악순환이다”라고 말했다.
여성 정치인의 절박한 마음은 당을 넘어서 이어지기도 한다. 조선희 정의당 인천시의원 비례 당선인은 민주당 추미애 대표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인천 여성계는 광역단체장 전략공천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추미애 대표를 찾아갔습니다. 지역성평등지수가 중하위인 인천, 여성정책이 몇 년째 제자리걸음인 인천이 확 달라지기 위해서는 여성 시장 당선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어쩌면 시민사회계, 여성계의 요구가 귀에 안 들어왔을 것입니다.”
주요 선진국은 일찌감치 여성 대표성을 강화했다. 스웨덴은 별도의 법 제정 없이 각 정당이 자발적으로 당헌·당규를 통해 여성 공천 비율을 꾸준히 높였다. 프랑스는 2001년 남녀동수법 시행으로 여성 의원 비율이 점차 향상됐다. 공직선거법 권고사항이 무력화되는 상황에서 한국 사회 또한 남녀 동수의 정치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방안을 추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토론회에 참석한 신지예 녹색당 전 서울시장 후보는 녹색당의 사례를 언급했다. “녹색당은 여성과반제를 실시해요. 위원회를 구성하고 대표자를 선출할 때 여성이 과반이 되도록 하죠. 또 녹색당은 공천제도가 없어요. 후보 선출 시 전 당원이 투표를 합니다. 이번 광역단체장 후보 2명 모두 여성이었고 여성 후보자 비율이 78%였어요.”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대표는 “정치가 갖고 있는 속성이 나 때만 아니면 된다면서 버틸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제도개혁을 위한 모멘텀을 위해 여성들이 모여야 한다. 지금까지 할당제 운동은 여성단체들이 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집권여당인 민주당의 힘이 세진 만큼 민주당 여성 정치인들이 이를 만들어내는 힘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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