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17] (경향) 미투의 완성은 젠더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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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8-04-10 11:35 조회2,570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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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의 완성은 젠더정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제34회 한국여성대회 축사’라는 제목으로 젠더 정치를 지지하는 글을 게시했다. 문 대통령은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를 성평등과 여성인권이 실현되는 사회, 나아가 모두가 존엄한 사회로 이끌어나가고 있다”면서 “촛불시민의 한 사람이자 대통령으로서 사명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이어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들의 역량이 충분히 발휘될 수 있도록 법·제도 개선은 물론 사회 전반의 문화와 의식 변화를 위해 시민들과 함께 노력할 것”이라며 “내 삶을 바꾸는 시작이 성평등”이라고 밝혔다.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성추행 폭로를 기점으로 폭발된 미투 운동이 젠더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지고 있다. 독재에 항거하는 87년식 민주주의에서 벗어나 이제는 완전한 성평등을 이루는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제10차 개헌에 대한 요구에서도 나타난다.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한국여성정치연구소, 헌법개정여성연대 등 여성단체들은 줄곧 제10차 개정헌법에 ‘양성평등 조항’을 독립된 조항으로 신설해 실질적 성평등 실현을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또 현존하는 성별에 따른 차별과 폭력을 실질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고용, 노동, 가족, 복지, 재정 등 모든 영역에서 여성의 활동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선출직·임명직 공직 진출에 있어 남녀의 동등한 참여를 촉진해야 한다는 문구도 포함돼 있다. 그동안 정치에 소외돼 온 여성의 목소리를 헌법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여성단체들이 요구하는 개정안의 골자다.
개헌안 작성작업에 참여한 하승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산하 국민헌법자문특위 부위원장은 “성차별·성폭력이 없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정신이고, 어떤 형태로든 헌법에 반영돼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성평등 관련 조항은 복수안으로 만들어졌는데 성평등의 원칙만 선언한 1안과 선출·임명직 공직 진출에 있어 남녀 동등참여 등이 구체적으로 열거된 2안 모두 지난 13일 청와대에 제출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결국 어떤 형태로든 새롭게 개정될 헌법 안에는 성평등조항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어떤 형태로든 헌법에 시대정신 담아야
정치권도 여성유권자들에게 눈을 돌리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정치권은 특히 지난 20대 총선과 19대 대선에서 보여준 20~40대 여성유권자의 힘에 주목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해 9월 공개한 19대 대선(2017년 5월) 투표율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6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여성의 투표율이 남성보다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과 남성의 성별 투표율을 보면 19세에서 여성이 80.9%로 남성(74.8%)보다 6.1%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전반, 20대 후반에서도 남성보다 각각 3.7%포인트, 7.9%포인트씩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30대 전반 5.4%포인트(여성 77.1%, 남성 71.7%), 30대 후반 5.6%포인트(여성 77.0%, 남성 71.4%), 40대 4.1%포인트(여성 77.0%, 남성 72.9%), 50대 1.4%포인트(여성 79.3%, 남성 77.9%)로 남성보다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제20대 총선(2016년 5월)에서도 여성유권자의 투표율이 남성보다 고루 높게 나온 것으로 집계됐다. 19세 여성투표율(55.5%)은 남성(51.8%)보다 3.7%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전반(여성 54.2%, 남성 56.4%)을 제외하고 20대 후반(여성 52.6%, 남성 47.3%)~40대(여성 54.5%, 남성 54.1%)까지는 모두 여성이 남성보다 높은 투표 참여율을 보였다. 이는 결국 여성유권자의 표심에 따라 당락이 결정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각 정당은 여성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을 수 있는 각종 공약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의당 나경채 광주시장 예비후보는 공약으로 성평등지수 1위 달성을 목표로 내세우기도 했다. 또 성평등위원회 권한 강화, 슈퍼우먼 방지, 여성 정책결정권자 비율 확대 등을 공약으로 냈다.
출산·육아 등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도 단체를 구성해 정부 정책 시행과정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영리단체 ‘정치하는 엄마들(공동대표 장하나·이고은·조성실)’은 지난해부터 보육, 여성노동 등의 문제에서 엄마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여성이 더 이상 정책의 일방적 수혜자가 아닌 정치참여자로서의 역할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60대 이하 연령층 여성 투표율이 더 높아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2014년 ‘여성유권자의 정치성향과 투표행태 추이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에서 이 같은 현상을 ‘정치적 효능감(political efficacy)’으로 분석했다. 정치적 효능감이란 내가 참여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일종의 자신감(confidence)을 말한다. 그동안 여성들은 정치는 남성의 영역이고, 여성은 부수적인 존재로 인식해 왔다. 이는 <82년생 김지영>으로 대변되는 여성들의 역할 갈등에서 비롯된다. 남성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학업면에서 남성보다 높은 성취를 해온 여성들이 취업 및 결혼·육아를 기점으로 남성보다 우위를 점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겪는 사회적 갈등을 말한다. 그 결과 여성 스스로 정치참여에 무관심해진다는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은 2009년을 기점으로 남학생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2012년 여학생의 대학진학률은 74.3%로 남학생(68.6%)보다 5.7%포인트 앞질렀다. 그런데 대졸 이상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63.9%로, 대졸 이상 남성의 경제활동 참가율(89.5%)보다 25.6%포인트 뒤처진다. 취업을 앞둔 여대생들에게서 ‘남성이라는 성(性)도 스펙’이라는 자조섞인 말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수치에서 비롯된다. 여기에 결혼, 임신·출산, 육아로 경력단절까지 생기면서 여성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 역시 줄어든다는 분석이다. 실제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상반기 지역별 고용조사 현황에 따르면 경력단절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은 30대로, 전체 30대 기혼여성 274만6000명 가운데 92만8000명(33.8%)이 경력단절 여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여성유권자의 표심에 따라 특정 후보의 당락이 결정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최근 촉발된 미투 운동은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살아온 많은 여성들에게 ‘목소리를 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자각을 일깨워줬다는 분석이다. 이는 젠더 정치로 명명(命名)되는 정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여성들 스스로 정치적 효능감을 느꼈다는 의미다.
각 정당 역시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미투 운동 흐름에 맞춰 적극 대응에 나서고 있다. 특히 정치권 내에서 묵인돼 왔던 각종 성희롱이나 성추행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의 성추행 폭로가 나온 지 이틀 뒤인 지난 1월 31일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 본회의 교섭단체 연설에서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고발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뒤이어 젠더폭력대책TF(위원장 남인순 의원)를 조직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대한 성폭행 폭로가 터지자 민주당은 논란이 불거진 지 2시간 만에 안 전 지사를 출당·제명조치했다. 또 젠터폭력대책TF를 특별위원회로 격상했다. 지난 7일에는 전국윤리심판원 공직선거후보자 검증위원회 연석회의를 거쳐 권력형 성폭력 대응방안을 확정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 공천에 후보의 성폭력 범죄 전력 등을 엄격하게 검증하고, 성범죄에 연루된 후보자는 정치적 유·불리에 관계없이 원천배제하는 ‘미투 검증’을 할 것을 약속했다. 권력형 성폭력에 대해서는 당 자체적으로 ▲피해자 보호주의 ▲불관용 ▲근본적 해결을 3대 원칙으로 정했다. 유력한 충남도지사 후보였던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은 진실 여부와 별개로 자진사퇴했다.
야당도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성폭력근절대책특별위원회를 열고 성범죄 피해자 예방·보호, 가해자 처벌을 위한 대안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바른미래당은 ‘미투’와 ‘위드유’를 당론으로 채택하고, 성폭력 방지 매뉴얼을 배포했다. 민주평화당 역시 공직사회에서의 갑질 성폭력에 ‘원스트라이크아웃 제도’ 도입과 함께 성희롱 가해자는 공직에서 배제하는 수준의 징계가 내려지도록 하는 내용의 권력형 성폭력 근절법 발의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또 미투 운동에 대한 8개 항목의 당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가이드라인에는 외모에 대한 언급이나 성차별적 언행을 사용하지 않고, 성적인 농담을 삼가며,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하지 않고 상대방이 거부할 경우 즉시 중단하고 사과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여성의원 늘어야 여성관련 법안도 늘어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정치인들은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고, 주민과 유권자의 절반이 여성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후보자의 성도덕을 후보자 공천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은 여성계가 선거 때마다 해온 말이었지만 정치권은 그동안 여성계의 목소리를 무시해 왔다”면서 “미투 운동이 확산된 지금부터라도 정치권이 후보 공천의 제1 기준을 도덕성으로 잡아야 하고, 정당 차원에서 공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이와 함께 여성의 의회 진출 등을 통한 적극적 정치참여가 젠더 정치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남성과 여성에게 동등한 권력을 부여하고, 각자의 대표 성(性)에 따라 정책을 만들면 여성의원이 전체의 17%인 지금보다 50%일 때 더욱 여성, 사회적 약자, 가정 중심의 법안이 생성될 수밖에 없다”면서 “일각에서는 여성의원이 많아진다고 젠더정치가 실현되느냐고 비판하지만 여성의원이 확대되면서 여성 관련 법률이 늘어난 것은 역사적으로 인정된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학 법학과 교수(학생처장)도 “결국 정치권에서 젠더 정치가 실현되려면 여성의원 수가 절대적으로 늘어나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녀 구분 없이 의원들의 성인지적 감수성도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검찰은 오는 6월 지방선거 예비후보자의 성비위 의혹 관련 고소·고발사건이 발생할 경우 사안에 따라 즉각 검찰 내 선거담당부서 또는 성폭력전담부서가 맡거나 경찰에 사건을 보내 수사지휘할 방침을 세웠다. 미투가 각 후보들을 평가하는 중요한 검증대가 되는 한편, 정치공작으로 잘못 이용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다. 검찰은 선거관련자에 대한 미투 폭로가 사실로 인정되고, 공소시효 완료 전이라면 가해자에 대한 자체 인지수사를 통해 기소할 방침이다. 반면 성폭력사건 공소시효가 완료됐거나 가해자로 지목된 당사자가 상대방을 무고로 맞고소할 경우 선거담당부서인 공안부가 사건을 우선 맡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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