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07] [젠더마이크] 안희정 충격과 페미니스트 공작 정치의 반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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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8-03-12 15:52 조회2,626회 댓글0건본문
안 전 지사는 자신이 저지르는 범죄를 알고 있었다. 그는 수행비서에 대한 성폭행이 권력형 성범죄임을 알고 있었고, 피해자의 입막음을 기획했다. 방송 인터뷰가 가져올 삶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안 전 지사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얼굴을 드러내고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해야 했던, 그 피해자의 증언은 그간의 안 전 지사의 행태를 짐작케 한다.
내게 있어 안희정 충격의 실체는 내 안의 복잡한 감정들이 격렬하게 일며 충돌하는 혼란 그 자체다. 안희정, 난 그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페미니스트 서적을 트위터에 소개했다고 페미니스트 명함이 주어지지 않는다. 대신 나는 그의 사유하는 자세와 유보적인 태도에서 페미니즘을 수용할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모르겠다”고 답했고 자신의 인간주의가 “반쪽”임을 깨달았다고 답했다. 페미니즘이 요청하는 것은 페미니스트 선언을 통해 페미니스트라는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자신에 대한 열린 성찰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며 깨달음을 실천하겠다는 도전적인 자세이므로.
마찬가지로 나는 그가 지난 대선에서 보여준 여러 말들과 행보에서 보여준 어긋남을 그의 시도와 도전으로 관용했고 인내했다. 또한 그가 민주당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유일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다림과 기대치에는 나름의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안 전 지사는 열성적인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의 대화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서, 충남인권조례 폐지안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비판의 의견을 피력한 유일한 유력 정치인이었다. 이제 더불어민주당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치인이 없다는 절망감은 두려움으로 옮겨간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기이한 짜릿한 흥분과 교차한다. 그토록 고대해왔던 페미니스트 사회 변혁이, 아직 너무 멀게만 느껴졌던 그 페미니스트 혁명이, 우리 발 앞에 이미 우뚝 서 있는 형상으로 다가와 있다는 것은, 이런 식으로 최후의 보루가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자각하는 순간에야 보인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젠더 불평등의 결과이자 이를 유지하는 도구였다. 여성에 대한 폭력은 여성을 학교에서 일터에서 정치 영역에서 배제하고 소외시키고 도태시키는 메커니즘이었다. 미투운동은 그런 시대의 종언이다. 용감한 피해자의 폭로를 통해, 미투운동은 남성의 일상화된 성적 관행이 표준적이고 규범적인 것으로 용인돼온, 남성이 지배하는 정치영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그런 정치는 끝났다는 것을 알린다. 지방선거와 10차 개헌을 앞둔 지금, 드디어 여성정치세력화의 염원이었던 새판짜기의 정치적 환경이 조성됐다.
새판을 짜기 위해서는 “공작”의 정치가 필요하다. 공작은 “어떤 목적을 위하여 미리 일을 꾸밈”의 뜻을 지녔다. 김어준의 예언대로 미투 운동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나 같은 페미니스트들은 10차 개헌안에는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를 보장하는 동수의 가치가 명백하게 담겨야 하며,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교육감, 광역의회와 기초의회 등 모든 수준의 지방선거에서 각 정당이 최소한 30% 여성 공천 할당을 의무화할 것을 주장한다. 여성 정치의 핵심은 일차적으로 남성지배의 정치에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강화되는 남성성을 희석하기 위한 견제 수단이다.
안희정 충격은 남성지배의 정치가 이젠 끝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에 대한 전율로 남는다. 여성정치의 새판짜기, 페미니스트 공작 정치로 이 충격을 반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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