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730](주간경향) [표지 이야기]그들은 왜 ‘빨간 약을 먹은 여전사’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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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8-08-23 17:55 조회2,80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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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이야기]그들은 왜 ‘빨간 약을 먹은 여전사’가 됐나
메갈(메갈리아) 또는 웜(워마드)으로 통칭되는 집단은 자신을 ‘빨간 약을 먹은 전사’로 정의한다.
이들에게 빨간 약은 가부장제라는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여성혐오를 인식하는 세계, ‘시온’으로 가는 자각인 셈이다.
워쇼스키 자매의 영화 <매트릭스> 속에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인공두뇌를 가진 컴퓨터가 지배하는 가상현실 공간(매트릭스)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오던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어느 날 매트릭스에 속하지 않은 공간 ‘시온’에서 온 전사들을 만난다. 시온의 수장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는 네오에게 제안한다. 빨간 약을 먹을 것인가, 파란 약을 먹을 것인가. 그는 네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게 마지막 기회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파란 약을 먹으면 너는 침대에서 일어나 네가 믿는 대로 믿으며 살아갈 수 있다. 빨간 약을 먹으면 너는 진실의 세계로 끝까지 가게 된다.” 네오는 고민 없이 빨간 약을 택한다.
메갈(메갈리아) 또는 웜(워마드)으로 통칭되는 집단은 자신을 ‘빨간 약을 먹은 전사’로 정의한다. 이들에게 빨간 약은 가부장제라는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여성혐오를 인식하는 세계, ‘시온’으로 가는 자각인 셈이다. 이들은 가부장제로 공고하게 세워진 남성중심 사회에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일들이 실은 여성혐오(misogyny)에 기반한 것들이었다고 주장한다.
남성혐오의 방식, 넷 페미니즘
여성혐오를 자각한(일명 ‘빨간 약을 먹은’) 여성들이 택한 저항이 남성혐오의 방식으로 이어진 것이 지금의 넷(NET) 페미니즘이다. 최근에 문제로 불거진 워마드의 ‘남아 낙태 시신 훼손’이나 ‘성체 훼손’ 게시물도 이러한 맥락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가깝게는 지난 7일 제3차 혜화역 시위에서 등장한 ‘곰(문재인 대통령의 성 ‘문’을 뒤집은 것)’ 팻말이나 ‘문재인 재기해’ 구호, 나아가 ‘주혁해’ ‘남기해’ ‘종현해’ 등 고인이 된 남성을 이용한 각종 구호들 역시 남성혐오의 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 중심에는 ‘지나치다’는 정도(程度)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전체적인 맥락에는 동의하지만 그 수단(방식)을 전적으로 긍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1·2세대 여성운동가들이 지적하는 지점은 남성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행해지는 표현방식이 대표적인 혐오집단인 ‘일베’와 너무 닮아 있다는 데 있다.
< 주간경향>은 지난 16~17일 워마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20대 여성 2명을 직접 만났다. 이들은 2015년 말 메갈리아 내부에서 성소수자 인권문제로 내부 다툼이 벌어졌을 때 메갈리아 대피소를 거쳐 워마드로 옮겨간 초창기 멤버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던진 질문은 ‘워마드’의 지향점이 무엇인가였다. 대답은 동일했다. 여성이 우월한 사회. A씨는 “여성이 내키면 언제든 남성을 팰 수도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이들만의 논리도 존재했다. 맥락의 중심은 ‘남성우월적 가부장제’였다.
B씨의 말이다. “남성은 수십·수백 년 전부터 아내와 딸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 정도로 여기며 살아왔다. 술먹고 들어와 내키는대로 부인과 자식을 패는 남성들에 대해 공권력은 ‘가정의 일’이라며 방관해 왔다. 지금도 남성들은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을 때리고 살해한다. 나는 홍대 누드모델 몰카사건에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유출한 여성이 법의 잣대로 보면 잘못했다고 치자.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몰카를 찍어 유출했다고 유출범을 포토라인에 세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편집자 주: 인터뷰 다음날인 18일 4년간 서초동 일대 숙박업소 3곳에 폐쇄회로(CC)TV 17대를 설치한 몰카범이 검거돼 포토라인에 섰다) 왜 남성 몰카범은 포토라인에 세우지 않으면서 여성은 구속하고 포토라인에 세워 망신을 주는 것일까 생각해봤다. 물론 (지금까지 대부분의 유출범은 남성이었으니까) 특이한 일이었겠지만, 결국은 여성이 남성의 ‘권위’를 훼손하고 망신준 것에 남성 중심의 기득권이 ‘부들부들’거린 것이다. 여성은 태어남과 동시에 피해자로 살아왔다. 남성들도 여성을 무서워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실제 워마드 게시판을 살펴보면 이들의 공격대상은 가부장제를 구성하는 ‘아버지’와 ‘아들’에 있다. 19일 현재 워마드 내에서 ‘애비충’ 또는 ‘앱충’으로 검색되는 글은 4223개에 달한다. ‘애비충(아버지를 비하하는 단어), 한남유충(어린 남아)을 공격하겠다’, ‘이들을 살해했다’ 등의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이 게시물이 보여주고자 하는 대상이다. 현재 언론 등에 보도되고 있는 각종 게시물은 굳이 회원 가입을 하지 않아도 찾을 수 있다. 이들이 워마드라는 집단 내에서 몰래 계획하고, 실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구글 등에서 검색가능한 각종 자료사진을 가져와 외부에 ‘보여주기식’ 조작글을 올리는 것이다. 가장 자극적이고 혐오스러운 게시물을 통해 남성권력을 조롱하고, 공격하는 형태로 이들은 자신들만의 활동을 벌이는 셈이다.
이들의 행태는 과격 환경단체로 분류되는 ‘씨 셰퍼드 컨버제이션 소사이어티(SSCS·이하 ‘씨 셰퍼드’)’의 활동과 비교되기도 한다. 목적이나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씨 셰퍼드는 포경(고래잡이) 저지운동을 주목적으로 하는 국제 비영리조직이다. 이들은 포경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포경선과 선원을 공격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1980년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포경선을 침몰시킨 것을 시작으로 1986년 아이슬란드 포경선 및 고래 해체공장 폭파, 1992년 노르웨이 포경선 침몰, 2010년 일본 포경선 충돌·침몰 등 과격행동을 감행해 왔다. ‘고래는 다치면 안 되지만 사람은 다쳐도 된다’는 것이 이들 활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환경운동단체들도 이들의 과격행동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극적인 ‘보여주기식’ 글
물론 워마드 내 모든 글이 조롱은 아니다. 지난 7월 11일 ‘[홍본좌무죄] 개톨릭 집구석에서 나고 자란 웜년으로서’ 글은 가정에서는 내키는 대로 자식과 아내를 폭행하면서 겉으로는 좋은 가장인 척 위선을 떠는 아버지를 비판한다. 이 글은 조회수 1만건을 넘었다. A씨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글이 올라온다. 여성들의 고민을 담은 글도 많다. 물론 표현하는 언어는 거칠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되는 것들은 현 사회에 대한 비판글이 아니라 한 개인이 올린 자극적인 사진과 글에 국한돼 있다. 워마드를 ‘악마화’하는 게 웜년(자신들을 지칭하는 말)들인가, 언론인가. 우리를 악마화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일베 수준으로 폄훼하는 것은 기득권을 가진 언론(‘기레기’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여성주의 운동가들은 워마드 활동가들을 어떻게 평가할까. 혹은 여성주의 운동의 한 세대로 바라보고 있을까. 기존의 여성주의 운동가들 역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를 탈피하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얻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호주제 폐지운동을 벌여온 1세대 여성주의 운동부터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3세대 여성주의 운동까지 여성운동은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다. 현재도 정치권 내 여성정치인 동수개헌을 주장하며 여성운동가들은 각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남성 중심의 기득권 사회에서 여권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점은 기존 여성주의 활동이나 현재의 넷페미니즘에 차이가 없다. 다만 그 방식이 다르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메갈이나 워마드로 분류되는 일종의 인터넷 문화들이 사회의제를 바꾸겠다는 뜻은 이해한다”면서도 “이들의 활동이 여성운동으로서 대표성을 가지고 의제설정을 하는 조직된 집단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실제 1~3세대를 이어가는 여성주의 운동가들은 과격한 넷페미니즘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경향이 짙다. 4세대로 묶으려 노력하기보다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꼭 이들을 여성주의 운동이라는 틀 속에 위치지을 필요가 있나”라고 반문했다. 김 소장은 “그들이 자신의 행위에 공신력이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성주의 운동에 포함시킬 수는 있겠지만 기존 세대와는 결합할 수 없는 특이성을 갖고 있다면 이것은 이것대로 새로운 사회적 정의를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반면 메갈리아나 워마드 등을 구성해온 넷페미니즘은 기존 운동권의 연장선에 있는 한 세대로 편입되는 것을 거부한다. 기존의 여성주의 운동권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1~3세대 여성주의 운동은 남성이 짜놓은 기득권 안에 들어가려는 형태였다면 자신들은 남성 중심의 기득권을 전복시키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기존의 운동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기성세대와 10·20대로 구성된, 민주화 운동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 사이에서 나타나는 분절이 넷페미니즘 내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세 차례에 걸쳐 혜화역에서 ‘불법촬영 편법수사 규탄시위’를 열고 있는 ‘불편한 용기’ 역시 공개적으로 운동권과 거리를 두고 있다. 불편한 용기는 지난 11일 카페 공지사항을 통해 “우리는 워마드, 운동권 및 그 어떤 단체와도 무관한 익명의 여성 개인의 모임입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각자의 생활을 영위하며 흩어져 있는 개인(여성)이 하나의 목표(불법촬영 편법수사 규탄)를 위해 잠시 모인 것일 뿐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운동권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이는 잘 조직된 집단 내에서 동일하게 움직여온 기존의 사회운동 방식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기존 여성주의 운동권에 편입 거부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불편한 용기를 비롯해 워마드 등 집단의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여성주의 운동이 갖추고 있는 조직력이 없다는 데 있다. 강령도 없다. 사이트를 관리하는 사람은 있지만 주도적으로 의제를 설정하고 이끌어가는 존재는 없다. 이는 넷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여타 사이트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한 페미니스트는 “여성시대, 쭉빵 등 각종 여성 중심 사이트에서 활동하던 여성들이 ‘메갈리아’라는 판이 벌어졌을 때 잠시 모였다가 각자의 지향점에 따라 또다시 흩어졌고, 남성 전체를 혐오 또는 배제하는 방식의 여성 우월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만 따로 떨어져 나와 모인 것이 ‘워마드’라는 판일 뿐 워마드는 조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진옥 대표는 “기존의 여성주의 운동은 ‘상호작용’을 통해 여성들이 ‘소통’하고, 그 소통한 것을 통해 ‘발전’해 나간다는 세 가지 의제가 들어가 있었지만, 현재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활동은 기존의 여성주의 방식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며 “어쩌면 이들을 한 세대를 구성하는 여성주의 운동으로 평가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그 어떤 평가를 유보하더라도 워마드의 활동에 한계점은 존재한다. 핵심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제도를 부정하며 수단으로 끌어온 ‘미러링’이 이미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일베’를 향해 있다는 점이다. (현재는 폐쇄된) 메갈리아나 워마드 등은 일베에서 만들어낸 각종 언어에 대항해 ‘*치(*+김치남·김치녀의 미러링)’, ‘한남충’, ‘한남유충’, ‘느개비(느그 애비·느금마의 미러링)’, 앱충(애비+충·맘충의 미러링) 등 다양한 언어를 만들었다. 혐오표현에 대항해 또 다른 혐오표현을 만들어낸 셈이다. 김은주 소장은 “지금의 워마드가 싸우는 대상은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체제가 아니라 ‘일베 문화’”라며 “한국 사회 남성지배 집단에 대항한다는 목적과 달리 그들이 현재 미러링하는 것은 지배집단의 언어가 아닌 일베의 언어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러링을 하는 목적이 일베와 똑같은 언어, 똑같은 혐오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똑같은 인간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사회, 보다 나은 인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면 여성이 하는 미러링은 달라야 하지 않겠나”라며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방식의 미러링은 어떤 거창한 명분을 들이댄다고 해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이들에게 빨간 약은 가부장제라는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여성혐오를 인식하는 세계, ‘시온’으로 가는 자각인 셈이다.
워쇼스키 자매의 영화 <매트릭스> 속에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 인공두뇌를 가진 컴퓨터가 지배하는 가상현실 공간(매트릭스) 속에서 평범하게 살아오던 주인공 네오(키아누 리브스)는 어느 날 매트릭스에 속하지 않은 공간 ‘시온’에서 온 전사들을 만난다. 시온의 수장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는 네오에게 제안한다. 빨간 약을 먹을 것인가, 파란 약을 먹을 것인가. 그는 네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게 마지막 기회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 파란 약을 먹으면 너는 침대에서 일어나 네가 믿는 대로 믿으며 살아갈 수 있다. 빨간 약을 먹으면 너는 진실의 세계로 끝까지 가게 된다.” 네오는 고민 없이 빨간 약을 택한다.
홍익대 누드 크로키 수업 몰카 사건 편파수사를 항의하는 시위대가 7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에서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메갈(메갈리아) 또는 웜(워마드)으로 통칭되는 집단은 자신을 ‘빨간 약을 먹은 전사’로 정의한다. 이들에게 빨간 약은 가부장제라는 ‘매트릭스’에서 벗어나 여성혐오를 인식하는 세계, ‘시온’으로 가는 자각인 셈이다. 이들은 가부장제로 공고하게 세워진 남성중심 사회에서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일들이 실은 여성혐오(misogyny)에 기반한 것들이었다고 주장한다.
남성혐오의 방식, 넷 페미니즘
여성혐오를 자각한(일명 ‘빨간 약을 먹은’) 여성들이 택한 저항이 남성혐오의 방식으로 이어진 것이 지금의 넷(NET) 페미니즘이다. 최근에 문제로 불거진 워마드의 ‘남아 낙태 시신 훼손’이나 ‘성체 훼손’ 게시물도 이러한 맥락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가깝게는 지난 7일 제3차 혜화역 시위에서 등장한 ‘곰(문재인 대통령의 성 ‘문’을 뒤집은 것)’ 팻말이나 ‘문재인 재기해’ 구호, 나아가 ‘주혁해’ ‘남기해’ ‘종현해’ 등 고인이 된 남성을 이용한 각종 구호들 역시 남성혐오의 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 중심에는 ‘지나치다’는 정도(程度)의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 ‘전체적인 맥락에는 동의하지만 그 수단(방식)을 전적으로 긍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1·2세대 여성운동가들이 지적하는 지점은 남성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행해지는 표현방식이 대표적인 혐오집단인 ‘일베’와 너무 닮아 있다는 데 있다.
< 주간경향>은 지난 16~17일 워마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20대 여성 2명을 직접 만났다. 이들은 2015년 말 메갈리아 내부에서 성소수자 인권문제로 내부 다툼이 벌어졌을 때 메갈리아 대피소를 거쳐 워마드로 옮겨간 초창기 멤버다. 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던진 질문은 ‘워마드’의 지향점이 무엇인가였다. 대답은 동일했다. 여성이 우월한 사회. A씨는 “여성이 내키면 언제든 남성을 팰 수도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는 이들만의 논리도 존재했다. 맥락의 중심은 ‘남성우월적 가부장제’였다.
B씨의 말이다. “남성은 수십·수백 년 전부터 아내와 딸을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소유물 정도로 여기며 살아왔다. 술먹고 들어와 내키는대로 부인과 자식을 패는 남성들에 대해 공권력은 ‘가정의 일’이라며 방관해 왔다. 지금도 남성들은 단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성을 때리고 살해한다. 나는 홍대 누드모델 몰카사건에서 너무 큰 충격을 받았다. 유출한 여성이 법의 잣대로 보면 잘못했다고 치자.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몰카를 찍어 유출했다고 유출범을 포토라인에 세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편집자 주: 인터뷰 다음날인 18일 4년간 서초동 일대 숙박업소 3곳에 폐쇄회로(CC)TV 17대를 설치한 몰카범이 검거돼 포토라인에 섰다) 왜 남성 몰카범은 포토라인에 세우지 않으면서 여성은 구속하고 포토라인에 세워 망신을 주는 것일까 생각해봤다. 물론 (지금까지 대부분의 유출범은 남성이었으니까) 특이한 일이었겠지만, 결국은 여성이 남성의 ‘권위’를 훼손하고 망신준 것에 남성 중심의 기득권이 ‘부들부들’거린 것이다. 여성은 태어남과 동시에 피해자로 살아왔다. 남성들도 여성을 무서워하는 세상을 만들어야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실제 워마드 게시판을 살펴보면 이들의 공격대상은 가부장제를 구성하는 ‘아버지’와 ‘아들’에 있다. 19일 현재 워마드 내에서 ‘애비충’ 또는 ‘앱충’으로 검색되는 글은 4223개에 달한다. ‘애비충(아버지를 비하하는 단어), 한남유충(어린 남아)을 공격하겠다’, ‘이들을 살해했다’ 등의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주목할 점은 이 게시물이 보여주고자 하는 대상이다. 현재 언론 등에 보도되고 있는 각종 게시물은 굳이 회원 가입을 하지 않아도 찾을 수 있다. 이들이 워마드라는 집단 내에서 몰래 계획하고, 실제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구글 등에서 검색가능한 각종 자료사진을 가져와 외부에 ‘보여주기식’ 조작글을 올리는 것이다. 가장 자극적이고 혐오스러운 게시물을 통해 남성권력을 조롱하고, 공격하는 형태로 이들은 자신들만의 활동을 벌이는 셈이다.
이들의 행태는 과격 환경단체로 분류되는 ‘씨 셰퍼드 컨버제이션 소사이어티(SSCS·이하 ‘씨 셰퍼드’)’의 활동과 비교되기도 한다. 목적이나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방식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씨 셰퍼드는 포경(고래잡이) 저지운동을 주목적으로 하는 국제 비영리조직이다. 이들은 포경활동을 저지하기 위해 포경선과 선원을 공격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1980년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포경선을 침몰시킨 것을 시작으로 1986년 아이슬란드 포경선 및 고래 해체공장 폭파, 1992년 노르웨이 포경선 침몰, 2010년 일본 포경선 충돌·침몰 등 과격행동을 감행해 왔다. ‘고래는 다치면 안 되지만 사람은 다쳐도 된다’는 것이 이들 활동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환경운동단체들도 이들의 과격행동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극적인 ‘보여주기식’ 글
물론 워마드 내 모든 글이 조롱은 아니다. 지난 7월 11일 ‘[홍본좌무죄] 개톨릭 집구석에서 나고 자란 웜년으로서’ 글은 가정에서는 내키는 대로 자식과 아내를 폭행하면서 겉으로는 좋은 가장인 척 위선을 떠는 아버지를 비판한다. 이 글은 조회수 1만건을 넘었다. A씨는 “하루에도 수십 건의 글이 올라온다. 여성들의 고민을 담은 글도 많다. 물론 표현하는 언어는 거칠다. 그런데 언론에 보도되는 것들은 현 사회에 대한 비판글이 아니라 한 개인이 올린 자극적인 사진과 글에 국한돼 있다. 워마드를 ‘악마화’하는 게 웜년(자신들을 지칭하는 말)들인가, 언론인가. 우리를 악마화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일베 수준으로 폄훼하는 것은 기득권을 가진 언론(‘기레기’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우월주의를 표방하는 사이트 <워마드> 대문사진. 20세기 여성참정권 운동(서프러제트) 자료를 사용했다. / 워마드 화면캡쳐
그렇다면 기존의 여성주의 운동가들은 워마드 활동가들을 어떻게 평가할까. 혹은 여성주의 운동의 한 세대로 바라보고 있을까. 기존의 여성주의 운동가들 역시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를 탈피하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얻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호주제 폐지운동을 벌여온 1세대 여성주의 운동부터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하는 3세대 여성주의 운동까지 여성운동은 지속적으로 진행돼 왔다. 현재도 정치권 내 여성정치인 동수개헌을 주장하며 여성운동가들은 각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남성 중심의 기득권 사회에서 여권신장을 위해 노력하는 점은 기존 여성주의 활동이나 현재의 넷페미니즘에 차이가 없다. 다만 그 방식이 다르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메갈이나 워마드로 분류되는 일종의 인터넷 문화들이 사회의제를 바꾸겠다는 뜻은 이해한다”면서도 “이들의 활동이 여성운동으로서 대표성을 가지고 의제설정을 하는 조직된 집단으로 보기는 어렵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실제 1~3세대를 이어가는 여성주의 운동가들은 과격한 넷페미니즘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경향이 짙다. 4세대로 묶으려 노력하기보다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소장은 “꼭 이들을 여성주의 운동이라는 틀 속에 위치지을 필요가 있나”라고 반문했다. 김 소장은 “그들이 자신의 행위에 공신력이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성주의 운동에 포함시킬 수는 있겠지만 기존 세대와는 결합할 수 없는 특이성을 갖고 있다면 이것은 이것대로 새로운 사회적 정의를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반면 메갈리아나 워마드 등을 구성해온 넷페미니즘은 기존 운동권의 연장선에 있는 한 세대로 편입되는 것을 거부한다. 기존의 여성주의 운동권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1~3세대 여성주의 운동은 남성이 짜놓은 기득권 안에 들어가려는 형태였다면 자신들은 남성 중심의 기득권을 전복시키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기존의 운동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기성세대와 10·20대로 구성된, 민주화 운동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 사이에서 나타나는 분절이 넷페미니즘 내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세 차례에 걸쳐 혜화역에서 ‘불법촬영 편법수사 규탄시위’를 열고 있는 ‘불편한 용기’ 역시 공개적으로 운동권과 거리를 두고 있다. 불편한 용기는 지난 11일 카페 공지사항을 통해 “우리는 워마드, 운동권 및 그 어떤 단체와도 무관한 익명의 여성 개인의 모임입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각자의 생활을 영위하며 흩어져 있는 개인(여성)이 하나의 목표(불법촬영 편법수사 규탄)를 위해 잠시 모인 것일 뿐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운동권과는 별개라는 것이다. 이는 잘 조직된 집단 내에서 동일하게 움직여온 기존의 사회운동 방식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기존 여성주의 운동권에 편입 거부
그러나 그 어떤 평가를 유보하더라도 워마드의 활동에 한계점은 존재한다. 핵심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제도를 부정하며 수단으로 끌어온 ‘미러링’이 이미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한 ‘일베’를 향해 있다는 점이다. (현재는 폐쇄된) 메갈리아나 워마드 등은 일베에서 만들어낸 각종 언어에 대항해 ‘*치(*+김치남·김치녀의 미러링)’, ‘한남충’, ‘한남유충’, ‘느개비(느그 애비·느금마의 미러링)’, 앱충(애비+충·맘충의 미러링) 등 다양한 언어를 만들었다. 혐오표현에 대항해 또 다른 혐오표현을 만들어낸 셈이다. 김은주 소장은 “지금의 워마드가 싸우는 대상은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체제가 아니라 ‘일베 문화’”라며 “한국 사회 남성지배 집단에 대항한다는 목적과 달리 그들이 현재 미러링하는 것은 지배집단의 언어가 아닌 일베의 언어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러링을 하는 목적이 일베와 똑같은 언어, 똑같은 혐오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똑같은 인간이 되겠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사회, 보다 나은 인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면 여성이 하는 미러링은 달라야 하지 않겠나”라며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방식의 미러링은 어떤 거창한 명분을 들이댄다고 해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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