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328](여성신문) [젠더마이크] 위선과 위악, 그 따위 정치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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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8-04-10 11:49 조회2,817회 댓글0건본문
정 전 의원은 성추행에 대해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이유로 피해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성추행 증언을 보도에 대한 진실 공방의 문제로 호도하고 오히려 프레시안 기자들을 고소함으로써 자신의 혐의 없음을 주장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와 성추행 의혹을 보도한 기자는 정 전 의원의 지지자들로부터 형언하기 힘든 언어폭력과 공격을 당했다.
피해자가 결국 언론 앞에서 선 바로 그 다음날 공교롭게도 정 전 의원은 성추행 장소라고 지목된 곳에서 자신의 카드내역을 확인했다며 프레시안 기자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성추행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
나는 그의 말을 신뢰한다. 구속 수감되기 이틀 전, 그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을 것이며, 수많은 사람들과 만났고 중요한 말들을 준비해야 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젊은 여성을 만났다면, 그녀는 명진스님이 위중한 어머니나 나꼼수 동지들과 다르게 그에게 그리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고, 만약 그가 그녀를 추행했다면 그것은 매우 사소한 일탈에 불과한 일일 것이니 기억나지 않는 것이 놀랍지 않다. 들불같은 미투 운동 이전에는 아가씨들에게 치근덕대는 것이 아저씨들의 미덕이 아니었는가?
그렇다면 그런 치근덕댐, 이제는 바로 말해 성추행이 문제가 안 될까? 정 전 의원의 절친, 조기숙 교수는 “한 여성이 한 번 경험한 성추행이라 여겨지는 행위를 폭로하는 것은 미투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며 그의 성추행 사건을 옹호했다. 그녀의 외로운 주장과 달리 지난 20일 세계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중인 미국에서도 오클라호마주에서는 주 상원의원이 여성 우버 기사에게 강제로 키스하려고 했다는 이유로 사임했고, 미네소타주에서는 주 하원의원이 여성 로비스트에게 성적인 내용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가 사임했다. 즉, 정치계에 던지는 미투 운동의 메시지는 횟수와 폭력 정도의 문제로 평가될 수 없는 한 정치인의 중요한 자질과 덕목의 문제인 것이다.
정봉주 전 의원은 지금까지 쌓아왔던 정치적 명예를 스스로 송두리째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미투운동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정 전 의원은 프레시안 기자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면서도 피해자에게 아직 사과하지 않았다.
2011년 BBK 수사 의혹에 대한 문제제기를 이유로 정봉주 전 의원이 구속 수감되면서 나꼼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멤버들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정치적 저항을 체현하는 독보적 존재가 됐다. 당시 무시무시한 MB의 권력에 도전하면서도, 그들의 결사항전의 자세는 비장함이 아니라 골방에서 히히닥거리며 권력을 성적으로 조롱하고 비하하는, “쫄지마, 씨.바”라는 찌질한 남자들의 농담의 결사체였다.
‘비키니-코피’ 사건에서는 그들의 찌질한 남성성이 하드코어 남성성의 가면이라는 것이 폭로됐다면, 미투 운동 과정에서는 그 하드코어 남성성은 가면이 아니었음을, 그들이 연기하던 위악은 연기가 아니었음을,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실체임을 드러낸다.
나꼼수의 문화 권력이 정치 권력이 되면서, 그들은 그들이 그토록 옹호해왔던 표현의 자유를 오히려 억압한다. 언론인 김어준은 “공작 정치”를 경계하라며, 마치 “일부”의 미투 운동에 배후세력이 있다는 식의 공작을 펼치더니, 급기야 일방적으로 정봉주 전 의원의 행적으로 밝히는데 자신의 방송(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을 헌사했다. 미투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젠더 폭력을 발본색원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을 모시고 있는 탁현민 행정관은 미투 운동의 전신인 “그 여중생”의 기고문을 통해 한국 사회의 강간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대변했던 여성신문사에 대한 손해배상을 여전히 철회하지 않고 있다.
언론의 사유화, 언론사 및 기자들에 대한 명예훼손, 댓글 부대를 동원한 비판 세력에 대한 공격, 그리고 그 뒤에 있는 배후세력에 대한 상상과 그 상상물의 실체화, 그들은 그 적들과 닮아간다. 미투 운동은 위선과 위악의 교차로에 있는 남성지배 권력의 본질을 폭로한다. 나꼼수는 MB를 구속시켰다. 그리고 그들이 점했던 진보적 위상도 끝났다, 완전히.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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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3호 [W오피니언] (2018-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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