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190318] [TF기획-갈등의 시대①] '젠더 갈등' 부글부글…"문제는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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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9-03-27 10:55 조회3,219회 댓글0건본문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는 한반도 허리만 끊어진 것이 아닌 듯하다. 여러 갈등이 심화하면서 사회가 다방면으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갈등의 시대'로 불려도 어색함이 없다. 왜 우리는 불신과 혐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 볼 때다. 해묵은 여러 갈등은 문재인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문재인 대통령의 '포용국가' 구상은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여러 양극화 문제 해결과도 맥이 닿아 있어서다. 젠더 갈등, 이념 갈등, 지역 갈등의 문제점과 정부의 개선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 주>
남녀 '공정성 침해' 첨예 대립…"양성 분리정책이 갈등 키워"
[더팩트ㅣ신진환 기자] #. 11일 오전 서울시청역 인근에서 만난 한 30대 남성 회사원 A 씨는 우리나라는 요즘 남성이라서 차별받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렵고 힘든 일은 기피하면서 고위 공무원이나 기업 임원 등 사람들이 우러러볼 수 있는 직군에만 자리를 늘려달라고 한다. 능력이 있다면 어떠한 조직에서든 인정받고 올라갈 수 있는 자리를 왜 굳이 여성의 인원을 따로 챙겨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각종 시험에서 순위대로 당락이 결정되듯 가장 공평한 것은 남녀의 동등한 경쟁"이라고 말했다.
#. 이날 광화문역 근처에서 만난 30대 여성 사원 B 씨는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성차별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내 분위기가 여성이 출산하고 육아 휴직이나 출산 휴가를 가더라도 복직하기가 쉽지 않다"며 "일과 가정이 양립하는 제도가 있지만, 보이지 않은 은근한 강요와 눈총이 보인다"고 했다. 또 "다른 부서를 보더라도 직급이 높을수록 여성의 수는 확실히 적다"며 "매년 똑같은 현상이 반복되는데, 결국은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가 강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 한 여성 연예인은 지난 1일 한 방송에서 한 남성 출연자에게 "무인텔을 가봤냐"고 물었다. 이 여성 연예인은 '미래 AI(인공지능)는 인간을 지배할 것이다'라는 주제 안에서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한 예를 든 것인데, 성별에 따라 논란의 소지가 달라진다는 게 일부 남성의 항변이다. 남성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남자가 물었으면 생매장 감"(네이트ID kill****) "남자가 (여성에게) 무인텔에 가봤냐고 물어봤다면 방송 하차 소리가 나올 텐데"(k445****)라는 반응을 보였다.
남녀 간 젠더 갈등이 깊어진다. 비단 양성평등 문제가 최근 대두된 문제는 아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해묵은 갈등으로 남았다. 나아가 남녀 대립을 넘어 성별 간 혐오 현상까지 일어나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 '범죄', 젠더 갈등 기폭제?…남녀 혐오 표출
단적인 예로 '이수역 폭행사건'을 들 수 있다. 지난해 11월 한 포털 사이트에 여성 2명이 서울 동작구 이수역 인근 한 술집에서 남성 2명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글과 사진이 올라오면서 여성 혐오 논란이 불거졌다. 쌍방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청와대 국민청원에 남성을 처벌해달라는 글이 올라왔고, 30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
이후 피해자라고 주장하던 여성 측의 욕설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면서 여론은 다시 반전됐고, 남녀 간 성 대결 양상으로 번졌다. 경찰은 남녀 피의자 5명 모두에게 공동 폭행과 모욕 혐의를 적용해 검찰로 송치하면서 사건이 일단락됐지만, 사고 원인과 책임 소재 등을 두고 남녀 간 대립은 한동안 지속됐다. 실체적 진실과 상관없이 각자 성별에서 바라보는 시각차가 극명히 갈렸다.
실제 범죄율을 보면 여성 피해자가 해마다 느는 추세다. 경찰청이 공개한 '범죄 피해자 및 범죄피해 추세' 통계(2017년 기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대표 피해자의 성별 비율 중 남성 피해자 비율은 증가와 감소를 반복했지만, 여성 피해자는 2016년을 제외하고 점차 늘었다.
특히 여성들이 불안해하는 성범죄 피해자는 여성이 압도적이다. 강간범죄의 대표 피해자 성별 비율을 살펴보면, 남성은 2017년 기준 1.6%, 여성은 97.8%로 나타났다. 강제추행범죄에서는 남성은 7.6%, 여성은 90.6%를 기록했다.
이처럼 남녀 갈등은 '범죄'로 촉발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살인이나, 성범죄, 몰카 사건에서 남녀 갈등이 일어났다. 여성은 불안감을 호소하는 반면 남성은 잠재적 범죄자로 보느냐며 불쾌감을 나타나는 게 일반적이다. 성 대결 구도가 뿌리내린 하나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범죄 현상을 성별 논리보다는 사회 구조적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연보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더팩트>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배경에는, 여성을 대상화하는 사회전반의 잘못된 성 인식과 이를 통해 이윤을 얻는 자본주의 구조의 문제가 있다"며 "문제를 개인화하기보다는 이러한 구조와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언론이 사회적 논란이 되는 범죄를 젠더 갈등이나 성대결 구도로 몰고 가는 것에도 일침을 가했다. 정 교수는 "일부 언론이 이러한 문제를 젠더갈등이나 성대결로 프레이밍(구조화)하는 것이 더욱 문제"라며 "남녀 대결로 보면 정작 중요한 구조적 문제는 은폐된다"고 비판했다.
◆ "유리천장 깨야" vs "공정 경쟁"
정부의 양성평등 정책도 남녀 인식 차가 극명한 분야다. 문재인 정부는 기업체 채용 등 각종 선발 과정에서 여성을 일정 비율 보장하는 정책을 추진하는데, 일부 남성들은 '여성편중정책'이라고 비난한다. 특히 20·30대 젊은층에서 "공정성을 저해한다"는 이유를 들며 거부감을 나타낸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여성정책 폐지와 관련한 청원 글이 11일 현재 400여 건이 넘는다.
실제 정부는 여성 장관 비율을 30%, 2022년까지 여성 경찰 비율을 15%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4년제 국공립대 여성 교수 비율을 25% 이상으로 확대하라는 권고안이 담긴 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지난해 기준 28.5%인 사립대 여교원 비율보다 낮은 국공립대 여성 교수 비율(16.8%)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젊은 세대 남성은 정부 정책이 불평등하다고 입을 모은다. 기득권을 쥔 기성세대에 책임이 있는 사회 문제에 따른 부담을 왜 2030세대가 짊어져야 하느냐고 울분을 토한다. 문 대통령을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젊은 남성층의 반발은 문 대통령의 지지율에서도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취임 직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70%를 넘었던 문 대통령의 20대 지지율은 지난해 하반기 들어 급락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의 원인을 저성장 시대를 맞은 청년의 경제적 절망감에서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대표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남성이 점점 살기 힘든 세상이 되면서 여성 인권을 불편하게 여기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남성이 차별받고 오히려 여성이 살기 편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거와 다른 저성장시대와 남성성 수행의 실패에서 오는 박탈감과 좌절감 때문"이라고 말했다.
반면 여성단체 등은 우리 사회에 공고화된 남성 위주의 고용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사회적·경제적 진출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이 여전하다는 말이다. 2018년 4월 금융감독원의 감사 결과 남녀 채용비율을 4:1로 미리 정해놓고 선발한 것으로 드러난 '하나은행 채용 비리'가 한 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국내 공기업 현직 여성 임원이 한국토지주택공사 장옥선 상임이사 단 1명에 불과하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8일 발표한 '2019년 유리천장 지수'에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 남녀 '평행선' 달려…정부, 근본적 접근 필요
젠더갈등은 이분법적 논리로 더 악화되고 이해와 타협은 뒷전으로 밀린 형국이다. 출산과 육아, 노동과 공정 경쟁 등에서 합리적인 문제 제기도 '혐오'로 둔갑해 남녀의 다툼으로 격화된다. 심지어 데이트 폭력과 지능적인 디지털 성범죄 등 젠더를 기반으로 한 물리적·정신적인 폭력도 우리 사회의 문제로 대두되면서 남녀 간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이 지속할수록 남녀 분열 양상은 개선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균형과 부당한 대우를 철폐하기 위해 양성의 노력이 필요한 때라는 것이 전문가의 중론이다. 문 대통령 역시 세계여성의 날인 지난 8일 페이스북에 올해 'UN Women'(유엔 우먼)이 발표한 세계 여성의 날의 기조인 '평등하게 생각하고, 스마트하게 만들어가며, 변화를 위해 혁신하자'를 소개하면서 "성평등한 사회는 남성과 여성 구별 없이 더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라고 강조했다.
여성과 남성을 분리하는 정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진옥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더팩트>와 통화에서 "정부는 (젠더)문제 해결 방식을 특화된 정책으로 풀려고 한다. 예컨대 여성전용주차장이라든가 지하철 임신부석 등은 지금의 젠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서 "정부가 가시적 효과를 위해 여성 특화된 정책을 내놓았을 때, 정보가 충분하지 않은 남성은 차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성에게 무엇을 주는 선별적 방식을 취했을 때는 백래시(반격)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젠더 문제는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에서 보듯 노동권과 인권 등 복합적인 문제이며 정부는 근본적인 해법을 내놔야 한다"면서 "예를 들어, 정부가 저출산 문제를 풀려면 '아동수당 10만 원' 지급이 아니라, 출산 이후 여성 경력단절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문제의 핵심 원인 파악과 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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