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_에정뉴스] 반짝반짝 빛나는_초록발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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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여세연 작성일14-01-04 12:20 조회1,932회 댓글0건본문
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이슬을 먹고 살며 스스로 몸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는 반딧불이. 고향산골의 애틋함이 느껴지는 정겨운 상상을 만들어내는 예쁜 녀석들이다. 낳고 자라길 내내 서울사람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막연한 환상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환경오염 탓에 거의 사라져 이 땅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천연기념물이 되어버렸다. 있다 한들 서울처럼 불빛 밝은 밤에는 보이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우리는 누구나 삶이 행복하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조용한 시골 저녁 반딧불이의 낭만 같은 한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지금 누구랄 것 없이 너무나 전쟁 같은 일상을 감내하며 살아내고 있다. 사람들은 언제까지 치열하게 경쟁하며 나만은 성공하고 보자는 욕망을 불태워야 할까. 앞만 보고 달리며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이어지는 벅찬 하루하루, 현실의 불만쯤은 어떻게든 받아들이고 스스로 이겨내려 애쓴다. 멈춰 서 정신 차리고 각박한 현실에 저항을 해볼래도 혼자 힘으로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고, 사람들은 옆을 돌아보며 이웃을 챙길 여유 따위는 없는게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한다. 개인과 사회의 공존에 관해 이야기 해 온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이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The Corrosion of Character)』에서 말했던 ‘인간성의 부식’이 지금 우리 일상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세넷의 경고가 아니라도 “우리가 왜 인간적으로 서로를 보살피며 살아야 하는지 그 소중한 이유를 제시해주지 못하는 체제라면” 과연 그 사회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거대한 76만5천볼트 초고압송전탑에 저항해 맨몸으로 공권력과 자본에 맞서 싸우고 있는 밀양 어르신들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한다. 저 분들과 함께 손잡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공존의 미래란 없지 않겠나!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나의 삶 자체를 위해 정말 뭐라도 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미뤄둔 숙제를 하듯 책 한권을 소개하려고 사설이 길었다.
『초록발광_태양의 시대, 녹색사회로 가는 정의로운 전환의 길』은 ‘에정연’이란 말랑말랑한 애칭을 가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2009년부터 2013년까지 21명의 필자들이 참여해 기후변화와 기후정의, 핵 발전과 에너지 문제에 관해 꾸준히 발언해 온 글들을 묶어낸 책이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책을 엮은 에정연이 왠지 내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이름 탓도 있다. 뭔가 전문적이고도 어려워 보이는 게 보통사람들과는 거리가 있을 것 같은 딱딱한 문패를 달고 나선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명박정부 출범과 맞물려 [에너지정치센터]로 출발했고, 정칙 명칭은 심지어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란다. 내가 10년을 일해 온 단체는 사람들이 보통 ‘여세연’이라 편하게 줄여 부르곤 하지만, 정식 명칭은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로 ‘여성+정치+세력(화)+민주(주의)+연대’라는 어느 하나 쉽지 않은 개념의 조합이다. 창립회원으로 참여했던 회원들조차 정확한 단체이름을 말하기 어려워 하는지라 창립 직후부터 이름을 바꿔야 하는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면서도 어느 하나를 포기하지 못하고 단체이름에 모든 걸 끌어안고 가고 있는지라, 에정연에 참여한 분들이 연구소를 만들면서 하고자 했던 목표를 이름에 온전히 담고 싶었을 마음이 느껴져 동병상련의 미소가 지어진다(^^;;).
깔끔한 바탕에 초록발광이라 적힌 책표지의 첫 느낌은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득 할 것 같지만, 실상 내용은 정말 ‘발광(發狂)’이라도 해야 하는 절박함이 가득하다. 통상 지난 컬럼을 정리해 묶어낸 책들이 주는 담담함이 아닌 우리가 맞닥뜨린 오늘 그리고 내일에 관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내가 오늘 죽어야 문제가 해결되겠다.”라며 이치우 어르신이 분신을 하셨어도 여전히 폭력적으로 강행되고 있는 지금 밀양의 이야기를 포함해 79개의 글들은 서로 맞물려가며 한 목소리로 탈핵 에너지 전환과 정의로운 기후전환의 길로 안내해준다.
얼마 전 가을이 한창인 동네축제마당 한쪽에서 밀양소식을 알리기 위한 홍보사진전을 열었는데, 사진 속 어르신들의 모습에 공감하던 어느 분께 읽어보시라고 나눔문화에서 제작한 소책자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를 전해 드린 적이 있었다. 가만히 서서 소책자를 읽고 난 후 그 분은 이렇게 말했다. “밀양의 상황이 안타깝고 경찰이 저런 식으로 대응하는 게 잘못된 일이지만 성장을 멈추라는 게, 탈핵을 해서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90% 이상 전환한다는 게 실현가능해 보이지 않으니 누가 쉽사리 공감을 하겠나”라고. 대부분의 시민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밀양을 들여다보면 이 일은 단지 송전탑공사 반대가 아니라 그 끝에서 원전 문제와 탈핵이라는 출구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
『초록발광』은 핵 발전이 가장 효율적이고 경제성이 높은 에너지원이라는 말은 ‘만들어진 신’이라고 일갈한다. 이미 세계 유수의 연구 기관들이 핵 발전의 경제성이 화력 발전보다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쏟아낸 바 있고, 핵 발전이 녹색 에너지라는 말도 허구라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믿고 있던 잘못된 신화에 균열을 내 보자. 급진적인 전환의 계기가 되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도 결국은 미약한 사람들의 작고 사소한 시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지 않나. “당신 주변을 둘러보라. 당신 주변이 도무지 움직일 것 같지 않은 무자비한 공간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약간만 힘을 실어준다―힘을 실어주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그곳은 점화될 수 있다.”
그저 그대로 살아가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으로 밀양의 할매할배들이 스스로를 태워 내는 빛이 반딧불이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그분들이 외롭지 않게, 할매할배들의 몸부림이 그대로 사그라들지 않고 탈핵과 정의가 실현되는 사회로 가는 계기가 되도록 우리가 함께 손잡고 힘을 보태면 찬바람 부는 겨울에도 사람들의 온기로 발광하는 빛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으리라. 누가 이기고 지는 승패를 가르는 싸움일까 싶기도 하지만 “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밀양대책회의 이계삼 님의 단단한 말을 믿고 뭐라도 해보자. 멀리 밀양까지 가는게 어렵다면 매주 화요일 저녁 열리는 대한문 앞 집회에라도 나가고, 『초록발광』책이라도 사서 주변에 나눠보자.
2013. 11. 12.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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